[논평] 삶의 선택의 기회를 달라

나이주의가 제한한 노동권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5/05/24 [11:28]

[논평] 삶의 선택의 기회를 달라

나이주의가 제한한 노동권

조이여울 | 입력 : 2005/05/24 [11:28]
일다 기사 중에서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던 것 중에 “나이에 적응 못하겠다”(문이정민, 2003년 10월 20일자) 제하의 기사가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인터뷰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각 연령대 별 삶이 실제 여성들의 경험과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 분석한 기사였죠. 나이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따라가는 것만도 버거워 “열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독자 개개인에게 공감을 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 기사에서 가장 독자들의 가슴에 많이 박힌 문장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유효기간이 지나면 개인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있어서 ‘유효기간’이란 넓게 잡아도 만 18세 이상~30세 미만 정도일 것입니다. 여성의 젊음과 능력을 상징하는 이 연령대를 지나면, 더 이상 인생의 선택은 없
고 보수유지 혹은 탈락 내지는 체념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니까요. 만약 욕심을 내 새로운 ‘선택’을 하고자 할 때, 사회는 당장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처럼 연령대에 따라 사회가 개인의 삶을 규정해버리는 것은 ‘나이주의’도 한 몫 합니다. 우리 사회는 나이 한 살 가지고 목숨을 걸 정도로 심각한 나이주의 사회죠. 장유유서라는 한자어가 현실에선 깡패와 다름없는 문화로 표출되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나이주의는 형제자매간, 선후배간, 직장동료간 수직적인 위계를 형성하는 원인이기도 한데, 동갑이 아니고는 웬만해선 친구도 되기 어려운 삭막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잔인한 일은 ‘노동권’을 빼앗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하면 20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30대 이상의 사람들은 신입사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삼성그룹은 대졸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대상을 아예 ‘8월 졸업자와 내년 2월 졸업예정자’로 못박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학교 졸업한 지 1년만 지나도 몇몇 기업에선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게 되는 황당한 현실, 이러한 배경엔 바로 나이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인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군대를 닮아 있는 위계적인 직장문화에서 나이 순서대로 서열을 매겨 ‘질서’를 잡기 때문입니다. 나이 순으로 입사해서 나이 순으로 승진하고 나이 순으로 퇴직해야 마땅한데, 낮은 직책의 직원이 높은 직책의 직원보다 나이가 많으면 ‘질서’가 무너져서 직장 업무 자체에 차질이 생길 정도라고 합니다.

‘사회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이미 관행으로 자리잡은 ‘나이주의’를 어떻게 해볼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이주의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포기하는 것에 반해, 보다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로 개편을 해보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차별연구회’(사회 전반의 차별 사례들을 발굴하고 분석하기 위해 여성학, 사회학 전공 연구자들로 구성된 모임)는 중앙인사위원회가 공무원 시험 응시 자격에서 나이제한을 둔 것에 대해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습니다.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자격에 나이제한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차별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문제지, 입사 자격에서 나이제한을 두는 것은 거의 다 나이서열에 따른 위계를 지키고자 하는 ‘통념’과 ‘인습’의 소산일 뿐 합당한 근거는 없습니다. 차별연구회 측은 국가 공무원 임용시험에 문제 제기함으로써 민간영역에서의 연령차별을 없애는 발판으로 삼으려 한 것 같습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개인이 노동권을 보장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겠죠.

이러한 시기에 해선 안 될 말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하는 얘기일 것입니다. 직장 시스템이 이렇게 생겼는데 이 질서를 깨뜨리면 나중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이주의에 기반해 굴러가는 사회 시스템 속에선 개인의 ‘의지’가 심각하게 제한 받게 됩니다. 특히 여성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연령차별을 폐지함으로써 우리가 잃을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기존의 관행을 바꾸면 불편하게 될까봐 걱정하기보단 많은 사회적 가능성이 열리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이 우리에게 요청되는 자세일 것입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 늘푸른 2005/06/01 [07:09] 수정 | 삭제
  • 기사에서 노인여성의 죽음의 과정으로 가는 권리라는 것을 보았는데 잠시 멍하니 충격이.나이먹는 것에 대한 왜곡이 세상에는 너무 심한 것 같다는 거.죽음에 가깝지 않은 나이에서도 여자들은 중년이라는 애매한 나이 대를 왜곡된 시선 속에서 오래 거치게되는 것 같고.기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취업도 어렵고요.그게 악순환으로 가지 않게 다른 사회에서 체계적으로 나은 방법을 배울건 배우면 좋겠네요.
  • J 2005/05/27 [10:40] 수정 | 삭제
  • 나이먹는 걸 왜 이렇게 싫어해야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여자는요.
    십대는 이십대도 늙은 거라고 생각하고,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안 넘어가려고 발버둥치잖아요.

    소피마르소가 나이드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 보면서 부러웠습니다. 외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계속 인기있는 배우고 자기실현을 하면서 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 2005/05/26 [06:27] 수정 | 삭제
  • 재벌이나 기득권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유지되어야 하겠죠?
    왜냐면 걔네들은 그저 자기 말 잘듣고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원하니까..

    조직에 적응못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의 낙오자로 만들어버리는거죠.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나이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울나라가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은 나라죠.
    나이따지고, 성별 따지고, 외모따지고..성격따지고.. ㅎㅎ
    너무 많이 따지죠.
    그 범주에 애초에 들지 않으면 영영 애초에 낙오자?가 되기 쉽죠.

    인간의 기계화로 가는 자본주의의 폐해이지요.
    크게, 길게 보면 엄청나게 울나라의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죠.
    퇴직자나 경력자를 적재 적소에 활용을 못하고
    폐기용도 시켜버리는..
    그러니까 인간을 아주 물질화 시켜버리는
    자본주의의 폐해인것이죠.

    그리고 결혼한여자에게 아줌마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을 너무나 쉽게 갖다 부치고
    그들을 그룹핑화 시켜서 무능한집단으로 비하시키는거죠.
  • 2005/05/25 [11:30] 수정 | 삭제
  • 엄마랑 그런 거 얘기해본 적이 있어요.
    어리면 못하게 하는 게 너무 많고. ((나는 불만에 대해서))
    나이들면 못하게 하는 게 너무 많고. ((엄마는 갱년기 얘기하다가))
    쪼금 슬퍼졌어요. 변변한 게 없어서
    엄마처럼 살기 싫은데. ((엄마도 외할머니처럼))
    요즘은
    결혼할거냐고 묻는 나이도 정해져있다고 협박 비슷한 거 받았을 때..
    에.. 그러네요.
  • 루디 2005/05/24 [17:05] 수정 | 삭제
  •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나이들어가는 내 몸을 마음껏 사랑해주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시선에서 저 자신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겠죠. 취직과 결혼이라는 제도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에요. 그런 세상에선 나이주의도 없겠죠.
  • 후시딘 2005/05/24 [13:37] 수정 | 삭제
  • 그러면 지원자가 더 많아지긴 하겠지만 경쟁력이 세지는 것이니까 전체 나라로 봐선 좋은 거죠?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니까 전보다 나이 대가 더 어려지는 것 같아요.
    이십대에만 취직할 수 있는 현실이 슬픕니다.
    그래서 요즘 대학생들은 휴학도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