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스무 살 여성들의 고민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어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가 신선했던 이유 중 하나는 실업계 고교를 나온 아이들의 고민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학생’이라고 하면 ‘인문계 학생’만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십대들의 고민을 담아낸다는 드라마에도, 교육현실을 진단한다고 하는 뉴스와 시사프로에서도 ‘실업계 학생’들의 고민과 현실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지난 주에는 십대 성장드라마를 표방하는 한 TV 드라마에서 공고생과 기술자들을 비하하는 장면을 내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너희들은 인생의 낙오자다” ![]()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너희들이 뭘 하겠어”라는 투의 무시와 폭력이다. “선생님들 때문에 진짜 학교 가기가 싫어요. 선생님이 하는 ‘너희들은 인생의 낙오자다’ 라는 말에 충격 먹었고요, 전산회계 공부하구 있으면 수학도 못하는 게 꼴값 떨고 있다고 하고요. 바로 옆 반이 인문계라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 물 흐리게 하니까 친구랑 놀지 말라고 해서 친구 사이도 나빠졌어요.” 10대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아이두넷(idoo.net)의 실업고 학생들을 위한 게시판의 한 여학생의 말이다. 공부를 안 한다고? 다른 공부를 할 뿐이다 실업계 고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사농공상의 유교적 직업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실업계 고교생들이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물론 실업계 고교를 나와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다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실업계 고교는 실질적인 ‘직업교육’과 ‘졸업 후 바로 취업’을 위한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국, 영, 수 같은, 소위 주요과목 위주의 능력만을 뜻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대학, 특히 명문대 진학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학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실업계 고교생들은 명문대를 중심으로 한 학력서열에서 하위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청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5월 25일자 <레이버 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전북도 교육청이 최근 학력증진비를 책정하면서 인문계 고교에는 한 학급당 연간 100만원을 책정한 반면, 실업계 고교에는 한 학교당 연간 800만원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도내 고교 평균 학급수가 24학급임을 감안하면 실업계와 인문계 간 지원 액수 차이가 3배에 달하는 것이다. 실업계 고교와 인문계 고교의 ‘학력증진비’가 3배씩 차이가 나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청에서조차,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만을 ‘배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학력증진비’에 실업계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실습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아서 오히려 학생들의 충분한 실습기회를 갖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실업계 고교생들은 전부 양아치나 날라리로 매도하는 시선도 그들이 전부 문제 학생이거나, 공부와 담을 쌓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소위 국, 영, 수 주요과목에 매진하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업고 학생들은 “실업계 고교에서도 상위권에 들기 위해서는 인문계 고교 못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실업계 고교에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은 “담배를 피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문제학생’들은 인문계 고교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유독 실업계 고교만 싸잡아 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한다. 단지 성적이 안 돼서 실업계 고교를 택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시작하기 위해 단호한 선택으로 실업계 고교를 택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또래 인문계 학생들이 수능준비를 하는 동안, 여러 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학교의 직업교육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이것은 공부가 아니란 말인가. 아니라고 한다면 실업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실업계 고교 효과적인 지원책 뒤따라야 지난 해 실업계 고교의 지원자가 서울 지역에서 7년 만에 정원을 초과했다고 한다. 졸업 후 취업이 잘되고, 대학진학 시 정원 외(外)로 입학 정원의 3%를 실업고 졸업생으로 뽑는 대입 특별전형의 혜택이 주어지며 내신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 등이 이유로 거론됐다. 혹자는 조심스럽게 실업계 고교를 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라는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업계 고교를 ‘똥통학교’ 라고 거리낌없이 얘기하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공고하다. 최근 교육혁신위원회와 교육부는 실업계 고교를 특성화 고교와 일반 실업고로 재편하는 직업교육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낙후된 일반 실업계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특성화된 학교로 실업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혁신방안에 포함된 실업계 고교의 특성화 고교 전환 방안 등이 모두 예산을 지자체 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점 또한 불안해 보인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에서도 불구하고 실업교육을 개선하고 지원하기 위한 교육부의 노력은 환영할만하다. 이러한 시도가 단순히 전시 행정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력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교육부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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