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공공성’ 확보 못해

여성노동자 이제는 말한다-6

정희선 | 기사입력 2005/06/07 [05:36]

노동운동 ‘공공성’ 확보 못해

여성노동자 이제는 말한다-6

정희선 | 입력 : 2005/06/07 [05:36]
불교환경연대 등 환경단체들과 지역시민들의 반대로 경남 통영시 미륵산 케이블카 건설사업은 8년째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그런데 최근 공무원노조 통영시지부가 공개적으로 케이블카 공사를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혀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되고 있다.

환경파괴 정책에 노조가 손들어 줘

미륵산 케이블카 공사는 173억 원을 들여 산 아래와 정상 1천975m를 케이블로 연결하고 케이블카 왕복운행에 필요한 정류장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한려수도에 인접한 다른 도시들은 모두 이 사업을 거부했다. 환경이 파괴될 뿐 아니라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 체험을 선호하는 최근 관광추세에도 역행하기 때문에 관광객 유치에도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통영시는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사업추진 배경에 대해 모 환경단체 관계자는 “시장이 3번 바뀌었는데도 추진중인 사업이다. 시장 공약이 아니라 지역 건설업자와 토호들의 입장을 대변한 시 공무원들의 의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밝혔다.

공무원노조 통영시지부는 공사 찬성 기자회견 후 시청 내 천막농성을 24시간 순번제로 실시하고 있다. 반면 불교환경연대와 지역의 환경단체들은 서로 연대하여 케이블카 사업의 문제점을 주민들에게 홍보할 계획이다.

이 사건과 비슷한 사례로 농업기반공사노조가 새만금 갯벌 매립공사를 찬성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새만금 매립 사업을 반대하는 여론이 셌을 때도 농업기반공사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연맹 중앙위원회에서 새만금 공사를 홍보하는 농업기반공사 측 홍보물을 직접 나눠주었다. 또한 공사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성명서가 나오자 항의 전화까지 했다.

현재 한국노총 전국공공연맹으로 상급단체를 바꾼 농업기반공사 노조는 민주노동당의 환경공약을 비판하는 노조 성명서(2004년 4월 14일자)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새만금 사업은 사업추진 10여 년이 지난 1999년부터 환경단체와 일부 종교인들이 끈질기게 반대운동을 해 오고 있음은 이미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새만금 사업은 전문가 및 각계의 의견수렴과정을 통해 친환경적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이미 결론이 난 상태다.”

이처럼 환경분야에서 노동조합의 입장이 타 운동이나 사회 공익성에 역행하는 사례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에 대해, 불교환경연대 박정민 생태보전팀장은 “발전주의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기업, 정부 정책과 노동운동의 입장이 일치한다”고 비판하며, “노동조합이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민 팀장은 노동운동과 마찬가지로 산업사회의 출현 때문에 환경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환경문제는 먹고 살만한 다음에 해결할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노조에서 조합원들의 환경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주민증 등 시민인권침해에 불감

노동자가 종사하는 일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노동조합의 정책은 개별 노조원들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 공공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환경이나 인권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사회공공성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회공공성 영역은 모든 국민이 반드시 영위해야 하는 공공서비스를 생산한다. 공공서비스는 모든 사회활동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에 시장에서 구입자의 ‘능력’에 따라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맞추어 공급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이 서비스를 향유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 (민주노총 2003년 정책보고서)

그러나 민주노총의 주장과는 달리 많은 노동조합들은 자신의 노동이 가지는 ‘공공성’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노동조합이 방관하는 분야 중 하나로 전자주민증 등 주민등록증 제도를 들 수 있다. 몇 년 전 정부는 전자주민증 제도 추진 반대에 부딪혀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그러나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찍는 지문이 전산화된다는 점에서 아직 문제는 남아 있다. 그런데도 이 업무의 주요 당사자인 공무원노조는 전자주민증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윤현식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재일교포 지문날인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것이 일본 공무원들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에는 행정인권이나 국민기본권보다 업무효율성을 중시하고, 상황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등 행정편의적인 태도가 만연해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법원 등 일부 중앙행정기관에서 전자공무원증을 시범 실시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에선 지문감식으로 출입하고 직원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외부 반대 목소리에 무산되었던 정책이 내부의 무관심 속에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동조합이 지금이라도 이 문제가 단순한 관리 시스템이라 아니라 조합원의 사생활 침해와 직장 내 감시, 나아가서 노동조합 활동 감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을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현식 연구원은 “노동운동이 외부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지적하면서도 정작 노동자들 자신의 노동이 당사자나 외부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인감제도, 지문날인, 주민등록증 강제 발부, 무분별한 감시카메라 설치 등이 그 결과다. 이런 무관심은 결국 자기자신을 옥죄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교조, 교원평가제엔 항의 교사폭력엔 무심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조합이 당장 이익이 되는 근무환경이나 임금 외에 다른 문제들에 대한 감수성이 무디다는 것이다. 환경, 인권에 대해 추상적인 입바른 소리는 늘어놓지만 실제로 노조들은 주장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경우도 교원평가제에 대해선 교원 통제와 구조 조정의 음모라며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서 교사들의 폭력을 비롯한 심각한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대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박승옥(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전 대표)씨는 당대비평 2004년 가을호에서 “노동운동은 경제발전, 성장의 모델을 폐기해야 되며 그 과실을 향유하는 데서 벗어나 생태적 대안 모색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더 많은 임금, 더 많은 여가, 더 많은 권력을 지향하는 ‘성장의 노동운동’은 결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이제 노동운동은 삶의 양을 따지는 욕망의 운동에서 삶의 질을 따지는 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노동하는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필요로 한다”며 노동운동계에 자성과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

노동운동은 개별 노조의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자신들이 하는 노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섬세하게 바라보고 노조의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가령, 미래 에너지 고갈과 환경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대안에너지 문제나, 공해산업과 도박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전환도 생각해야 할 때다. 개별 기업을 상대로 얻어내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소속 조합원들에게만 해당하지만, 조합원들이 하는 일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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