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극적 자유였다”

감정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제나링크 | 기사입력 2005/06/13 [21:28]

[기고] “소극적 자유였다”

감정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제나링크 | 입력 : 2005/06/13 [21:28]
오늘은 여중에 다니던 시절이 절실하게 생각났다.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고 내 친구들과 선배 사이에서도 전혀 거리낌 없었던, 남녀공학으로 전학 온 이후로는 느껴본 적 없는 적극적 자유를 누리던 시절.

남녀공학에서의 생활에 이제 막 적응을 할 무렵 오늘 수업시간은 나의 적응을 원점으로 날려버렸다. 도덕선생님은 평소의 따분한 수업과는 달리 토론 수업이 되면 날카로운 질문으로 내 머리에 식은 땀이 뻘뻘 나게 한다. 오늘 1 교시였다. 평소 신경도 쓰지 않던 토론주제가 마치 나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여기 저기 뻔한 대답들이 나왔다. 난 아직 말할 기미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표정은 긴장되어 있었다. 한참 동안 뻔한 대답을 듣고 있다가 아! 이제 내 차례다 싶어, 드디어 손을 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이요. 감정은 소극적 자유이거나 적극적 자유일 수 있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성애와 동성애를 들어본다면 이성애자들의 사랑은 진취적이고 모두가 인정해주는 적극적 자유이지만, 아직까지 많은 선입견에 쌓인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성애자들의 감정은 힘들고 숨겨야만 하는 소극적 자유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에서 많이 도와야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처음으로 내 생각을 학교라는 공적인 곳에서 밝혔다. 하지만 난 거침없이 말했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이 모두 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했다. 그저 토론일 뿐인데 굳이 동성애를 예로 들어서 이상한 모양이었다. 난 빨리 입 모양으로 “책-에-서-봤-어”하고 크게 웃어 보였다. 수습이 빨라서 다행히 더 의심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계속 진지하게 오늘 토론주제인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내 모습에 나조차 놀랐다. 자유라는 건 사회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 존중 받는 것이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학교라는 곳도 그러하다. 여학교와 남녀공학을 사회로 본다면, 내 감정은 여중에서는 존중 받을 수 있는 적극적인 자유를 누렸는데 공학에서는 어디까지나 감춰야만 하는 소극적 자유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그 범위가 너무 넓고 다양해서 뭐라고 딱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오늘에서야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었다. 적어도 사람의 감정에 있어서는 절대로 자유가 제한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을 좋아하든, 이성을 좋아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적극적 자유로 존중 받아야 한다.

많은 날을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겪고 있는 사회는 눈깜짝할 사이에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내 감정, 동성애라는 자유에 대해서 사회는 답답할 정도로 아주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로 바뀌어야 한다. 그 동안 동성애자들이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을 속에서만 숨겨왔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동성애자들의 감정이 사회 구성원의 하나 하나에게 존중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의 감정은 소극적 자유였다.
과거 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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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닐 2005/06/17 [17:36] 수정 | 삭제
  • 격려의 박수를.
    짝짝짝~
  • .. 2005/06/15 [20:55] 수정 | 삭제
  • 제가 같은 교실에 있었다면..

    진심으로 동감하는 마음이 드는 반면, 아웃팅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들면서
    동시에 당당한 님의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마무리가 야무지세요.ㅎㅎ
  • A 2005/06/14 [15:17] 수정 | 삭제
  • 제가 그 교실에 있었다면 님의 발표를 듣고 박수를 치고 싶었을 거예요. ^^
  • 은- 2005/06/14 [10:51] 수정 | 삭제
  • 좋아요, 좋아.
    실례일지 모르지만 너무 귀여우신 것 같네요.
  • dreamer 2005/06/14 [06:11] 수정 | 삭제
  •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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