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는 몸

“사람은 세월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명희 | 기사입력 2005/06/27 [22:03]

나이 들어가는 몸

“사람은 세월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명희 | 입력 : 2005/06/27 [22:03]
얼마 전 소피 마르소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영화 <라붐>을 통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그녀가 이제 마흔이 된다. <라붐>에서 십대 중반의 귀엽고 천진한 미소를 보여줬던 소피 마르소도 이제 중년여성이 되었다고 하니, 내 나이가 더욱 실감이 났다.

배우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소피 마르소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청순하고 산뜻한 표정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성숙한 분위기가 아름답게 느껴지고 당당한 매력마저 풍긴다. 배우들은 평소 외모 관리를 철저히 하겠지만, 그래도 마흔 가까이 된 서양여자라면 수술을 하지 않는 한 주름도 많고 피부도 이십 대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기사에서 소피 마르소를 인터뷰한 기자가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물었는데, 그녀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나는 늙어가는 것을 사랑한다. 사람은 세월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서 상당히 놀랐다. 그녀는 성형수술에 대해서도 “수술을 해도 속에서 풍겨 나오는 것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수술은 몸을 불편하게 할 뿐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부쩍 늙어가는 나의 몸을 바라볼 때가 많아졌다. 어렸을 땐 오히려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내 몸이 젊고, 피부가 탱탱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쳐지지 않고, 얼굴에 주름이나 기미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부터 내가 나이 들었다고 느꼈던가를 기억해보면, 펑퍼짐한 엉덩이를 한 몸을 발견했을 때였던 것 같다.

이제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많이 늙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잘 먹지도 않는데 살이 계속 찌는 게 너무 화가 난다는 친구도 있고, 뱃살은 이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도 그렇다. 주름을 펴는 수술을 누가 했다 하는 정보도 돈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친구들의 나이 든 모습이 어색하고 싫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나버린 젊음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할머니가 된 것도 아니고 앞으로 적어도 20년 정도는 계속 중년여성으로 살게 될 텐데, 나이든 몸에 적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이 들었다는 것, 젊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잔주름이 잡히고 잡티가 낀 얼굴은 지저분하다고 생각되고, 쳐진 살은 게으르고 망가진 것으로 느껴진다.

얼마 전 오랜만에 올라오신 어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생만 한 어머니의 이마와 목엔 깊은 주름이 패어있고, 얼굴 가득 잔주름과 기미가 가득하다. 이젠 화장을 해도 잘 받지를 않는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슬픔이 밀려왔다. 젊을 때 참 고우셨는데.

그런데 문득 소피 마르소가 한 말을 보고서, 내가 세월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건 거짓일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일 같다. 지금 이 나이에 젊은 남자와 데이트를 할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젊은 여성의 몸을 가지려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얼굴 자체에 세월이 묻어있고, 어머니의 고생이 묻어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나의 자라온 모습까지 스며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주름살 하나 하나와 기미조차 다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을 받아들인다는 건 나이 들어가는 몸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걸 뜻하는 것 같다.

프랑스의 한 여배우의 말이 나에게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해주었다는 것이 뜻밖이지만, 이제는 나의 몸을 바라보는 것이 좀 편해질 것 같다. 나의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안타깝다기 보다 아름답다고 얘기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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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 2005/07/02 [01:29] 수정 | 삭제
  • 배우들 중에 남자배우들은 나이 들어서 더 멋있고 매력적이라고 얘기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여자배우들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중후한 멋이란 게 여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걸까?
    여자들도 나이들어가는 것이 더 멋있고 젊었을 때 없었던 아름다움을 갖게 된다고 인식된다면 좋겠다.
  • dear 2005/06/30 [20:42] 수정 | 삭제
  • 나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쓸데없는 일 같단 생각이 드네요...
    삼십대만 되어도 늙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요..
  • 초록 2005/06/29 [09:00] 수정 | 삭제
  • 나이 많이 들었더군요. 본 바탕이야 어디가겠습니까만. 배우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더 공포스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당한 얘기가 듣기 좋네요. 수술은 몸을 불편하게 할 뿐이라는 얘기도 동감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