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나?’
‘교장 선생님이 너를 예뻐해 주었느냐?’ ‘아빠에게 당한 것이 처음 남자와의 성관계를 맺은 것이냐?’ ‘하얀 액이 나왔느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해 온 십대여성이 변호인 신문 과정에서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 가해자 측 변호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기각됐다. 법원이 법정에서 일어나는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눈감아준 것이나 다를 바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변호인의 반대신문권의 범위 넘어선 불법행위" 해당 사건에서 성폭행가해자인 유씨의 아버지는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에서도 기각돼 형이 확정된 바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폭행에서 벗어나고 법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피해자 유씨(17)는,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충격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유씨 측이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가해자 측 변호사는 원고인 유씨에 대해 약 1시간 가까이 반대신문을 하던 중 원고의 키와 몸무게를 반복적으로 묻고, “선생님이 너를 예뻐하였느냐” 식의 질문을 통해 학교 선생님들이 원고와 무슨 이상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신문사항에 끌어들였다. 변호인은 유씨에게 부모님의 성관계와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물었고, "여자친구들 중에 황진이 미인촌과 같은 윤락업소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냐"는 질문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중학교 3학년인 유씨에게 “월경은 언제 했나”,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은 적은 없냐”는 질문을 반복했으며, 성폭행 당할 당시의 자세 등 성행위에 대해서도 너무 구체적인 질문을 해 원고를 당혹스럽게 했다. “깊이 삽입되었느냐?”, “하얀 액이 나왔느냐”, “피가 나왔느냐?”, “당할 때 소리 지르고 반항을 했느냐?” 등의 질문을 받고 유씨는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죽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이에 대해 유씨의 소송대리인인 강지원 변호사는 “이것은 사건과 관련이 없는 신문내용으로, 변호인으로서의 반대신문권의 범위를 넘었다”며, “원고가 피고의 변호인으로부터 이런 모욕과 억압을 당하는 부분까지 감수할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유씨 측은 피고의 변호인으로부터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 2천만원 등을 요구하는 손배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오늘 기각됐다. 수사지침에도 ‘성경험’등 묻지 않게 돼있어 서울남부지법 민사34단독 윤태호 판사는 피고인이 첫 성관계 시기 등을 신문한 것은 검찰 조서에도 나와있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변호사의 신문내용이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막상 경찰과 검찰에 하달된 수사지침에는 성폭력피해자에게 월경이나 첫 성경험 등에 대해 묻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지원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이 수사지침을 잘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질책을 해야 할 법원이, 오히려 검찰조서에도 나와있는 내용이니 변호사도 그렇게 물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성차별적 발상이다”라고 반박했다. 이번 판결은 우리 법원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격모독과 사생활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주의 진영은 수년 간 성폭력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요구를 해왔다. 특히 성폭력 판단 여부와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몰아가려 하거나 성적인 모욕감이 들게 만드는 고의적인 신문에 대해선 일절 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강 변호사는 “잘못된 법조계 관행에 대해 처음으로 소송을 해서 고쳐보고자 했는데, 당시 가해자 측 변호인의 신문 과정에서 이를 제지하지 않은 판사나 이번 손배 소송에 기각 판결을 한 판사나 인권의식 수준이 똑 같다”며 비판했다. 원고인 유씨 측은 즉각 항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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