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노조”라는 말에 담긴 편견

울산 경비노조에 대한 언론보도

정희선 | 기사입력 2005/07/04 [21:13]

“할아버지 노조”라는 말에 담긴 편견

울산 경비노조에 대한 언론보도

정희선 | 입력 : 2005/07/04 [21:13]
“평균연령 65세 ‘할아버지 노조’ 떴다!” (문화일보 6월 15일자)
“울산 ‘할아버지 경비노조’ 28일 파업 찬반투표” (한국일보 6월 28일자)
“‘할아버지 노조’파업추진 울산 초,중,고 경비원, 찬반투표 실시키로” (조선일보 6월 2일자)

울산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경비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울산경비노조에 대한 일간지들의 기사 제목이다. 전체 조합원이 73명인 작은 노조에 대해 예외적으로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는 조합원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점 때문이다.

울산경비노조를 보도한 기사들은 ‘울산경비노조’라는 공식 명칭대신 “할아버지 노조”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기사 내용에서도 노동조합의 요구나 학교경비 고용체계와 관련한 것보다는 평균연령이 65세이고, 최고령자가 79세, 최연소자가 61세라는 것을 강조해서 보도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소위 진보매체들은 어떻게 다루었을까.

“최고령, 할아버지 노조 떴다” (레이버투데이 6월 14일자)
“울산 학교 '경비 할아버지들' 노조결성 화제” (노동과세계 6월 16일자)
“‘평균 65세 최고령 79세, 울산경비노조 파업 깃발” (미디어 참세상 6월 28일자)

이들 매체들의 기사를 보면, 제도언론에 비해 조합원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석이 들어가 있지만 “할아버지” 혹은 고령의 사람들이 노조를 결성했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또한 조합원 개개인 인터뷰 대상자의 나이를 잊지 않고 기재했다.

노동자를 “할아버지”라고 칭하는 언론 보도의 이면에는 노동조합 활동을 ‘젊고 건장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간주하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경비 일을 공적인 노동이라기 보다 은퇴해서 할 일이 없는 “할아버지”가 맡는 일로 보는 편견 어린 시선이 은근히 깔려있다. 평균 연령 65세의 교수노조라면 조합원 개개인의 연령대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등의 호칭을 사용했을 리도 만무하다.

노동조합의 명칭은 조합원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고, 그 노조의 조합원 구성이나 조직 전망을 담는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현대자동차라는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이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전국에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결정한 산별노조다. 직종뿐 아니라 전국여성노조처럼 여성의 정체성을 노동조합의 발전 방향으로 결정한 곳도 있다.

울산경비노조는 “할아버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울산지역 내 경비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모인 조직이다. 매체에서 공식 명칭을 불러주는 것은 곧 취재원들을 존중해주는 것이며, 그렇지 않았을 때 조합원들을 대상화시키거나 희화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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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족 2010/02/14 [10:57]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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