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 짜내는 ‘서비스’

노동시장의 여성 몸에 대한 통제

정희선 | 기사입력 2005/07/18 [22:06]

미소를 짜내는 ‘서비스’

노동시장의 여성 몸에 대한 통제

정희선 | 입력 : 2005/07/18 [22:06]
철도공사가 ‘서비스 모니터링’이라는 이름으로 철도청 직원들의 외모와 태도를 몰래 감시해서 평가한 결과를 대상자의 실명까지 포함해서 공개, 비난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철도공사 부산지역본부는 지난 6월 외부 모니터링 요원을 이용해 역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근무태도 등을 개인별로 체크해 실명이 포함된 ‘서비스모니터링 결과 보고’를 사내통신망에 공개했다.

각 실명 옆에 서술된 평가를 보면 “손톱이 길다”, “화장이 짙어 불쾌감을 준다”, “머리모양이 단정하지 못하다(파마머리)”, “상의 단추 2개 풀어헤침” 등 외모에 대한 평가가 들어있다. 또 “색깔 있는 안경을 쓰고 있어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음”, “사투리 심함” 등도 평가 내용으로 포함됐다. 철도공사는 보고서에서 이 평가결과를 근무 평점에 반영하고, 악질적인 미흡직원이나 저득점자에 대해 비연고지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모니터링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긴 공사 측에 항의하면서 적극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색조화장품 상품번호까지 ‘맞춰’

여성의 외모와 태도에 대한 통제는 비단 철도공사뿐 아니라 서비스 업종 전분야에 걸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모 항공사의 경우 승무원 입사지원부터 키 등 신체조건 제한 규정이 있고, 면접 때 체격과 외모를 심사한다. 그리고 입사 후 규격화된 철저한 외모관리가 시작된다. 색조 화장품 상품번호까지 지침으로 내려올 정도다. 머리는 쪽을 지거나 짧은 단발커트 등으로 제한된다. 사측은 상시적으로 개인의 외모를 체크하고, A에서 D까지 등급을 매기고, D등급일 경우 개별 면담을 실시하고,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기내근무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지상 근무의 경우도 여성들은 반드시 화장할 것을 지시 받는다.

은행 등 금융권도 과거 이런 경영방식 때문에 여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심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이강선 부위원장에 따르면 예전엔 철도공사와 같이 항목별 모니터링이 있어서 외모뿐 아니라 인사하는 법, 말하는 법까지 규격화됐다고 한다. 심한 경우 고객들에게 서서 인사하게 하려고 창구 여직원들의 의자를 모두 없애도록 한 지점장도 있었다. 노조와 개인의 문제제기로 이제는 노골적인 강제 규정은 없으나, 자발성과 포상제도를 결합한 ‘서비스 리더 제도’ 등을 도입해 지점별로 알아서 관리하는 추세다.

서비스 리더란 각 지점별로 모범 서비스 직원을 지정하여 은행 안에 사진과 이름을 게시하고, 선정된 직원이 지점에서 주도적으로 친절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교육을 수행한다. 이런 친절교육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은행들의 과도한 경쟁체제 속에서 직원들 또한 감원의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보니 직원들은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통제는 서비스가 아니다

과연 이런 서비스의 방식이 업무 수행에 꼭 필요한가. 외국항공사의 경우 한국처럼 여승무원들의 외모가 획일적인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의견이다. 경력이 오래된 승무원들이 노련한 태도로 승객들을 대하고 비행기 구조나 시설의 첨단화로 여행이 좀더 편안했다는 것이다. 똑같은 화장과 머리모양에 가식적으로 보이는 태도 때문에 민망했다고 이야기하는 국내 항공기 이용자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직원들의 미소를 쥐어 짜내서 경영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서비스 질 향상에 들이는 돈을 아끼는 효과를 노리고, 안으로는 직원들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안내 데스크에 짧은 치마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성들을 배치한 것은 오래 전이고, 고객에게 친절하거나 불친절한 직원의 이름을 써달라며 쥐어주는 카드도 있다.

은행직원들이 일어서서 하는 인사를 받는 것보다는 소액대출이 손쉬운, 문턱 낮은 은행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 고객들에게는 더 중요하고, 좁은 비행기 안에서 몸이 불편할 때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능숙히 처리해주는 승무원들이 반가운 법이다. 서비스의 질을 직원들의 몸과 언어를 통제하는 것으로 확보하려는 기업들은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운영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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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후 2005/07/30 [18:58] 수정 | 삭제
  • 미국 가서 국내선 비행기 타고 이동할 때,
    뭔가 편한 차림의 남자승무원과 여자승무원..
    정말.. "서비스"를 받는 게 아니라
    손님으로서의 맞이를 받는 거 같아서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다..ㅎㅎ

    편안함과 친절함은 규격화에서만 오는 건 아닌 거 같다만..ㅎㅎ
  • 하나지어 2005/07/23 [16:13] 수정 | 삭제
  •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주차요원의 예를 들어보면, 젊은 사람이 유니폼 단정하게 입고 주차안내 하는 거 보단
    나이 어느정도 지긋한 분이 주차해주는 거랑 차이가 있더군요..
    일단, 나이 드신 분의 서비스는 편안합니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지고요,
    하지만, 젊은 여자나, 젊은(젊다 못해 어려보이는) 남자의 서비스를 받을 경우
    왠지 편안치는 않더군요..
    유니폼을 입을 경우에는 더 그런거 같아요...
    여승무원을 볼때도, 그들의 날씬한 몸매와 타이트하게 꼭끼는 유니폼을 입고
    통로를 지나칠때면, 편한 느낌보다는 왠지 긴장된 그들과 나 자신을 만나게
    되거든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일단 고객을
    최대한 편안하게 느낄수 있도록 중점을 두는게 좋다는 겁니다.
  • 맞아 2005/07/23 [08:57] 수정 | 삭제
  • 맞아.... 난 남자지만 우리나라 유별나. 젊은 여자만 쓰는것도 심하고.. 우리나라도 어서 할머니 승무원을 봤으면 좋겠네. 비꼬는 것 아님.
  • m 2005/07/21 [23:29] 수정 | 삭제
  • 면접이 미인대회 비슷한 곳도 여전히 많다.
  • 녹색얼음 2005/07/19 [14:26] 수정 | 삭제
  •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문화
    유니폼 입히는 데서 만족을 못하고
    심하네요
    싫어요ㅠㅠ
  • 킹덤 2005/07/19 [01:17] 수정 | 삭제
  • 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유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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