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네 나이 때는 이성이나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아, 둘 중에 뭐지?”
요즘 이런 저런 생각으로 퍽 웃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담임선생님은 무턱대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나는 조금 더 마음이 우울해졌다. 적어도 이 질문을 받기 전보다. 수많은 학생과 상담을 해보셨을 선생님도 나에겐 제대로 된 질문조차 던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질문에 대답했다. “고민이 없는데요.” 선생님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보이시더니 날 교실로 보내셨다. 하지만 정작 실망한 건 나였다. 이성이나, 시험성적에 관해선 아무 고민이 없었다. 단지 문제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다른 친구들이라면 이미 타고났다고 생각하고 고민조차 하지 않겠지만, 난 수없이 생각해 봐야 할 내 안의 정체성.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하고 틈만 나면 같이 문자를 보내던 학교선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그 선배는 내게 특별했다. 중학생이 되고 남자친구들에게나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나는 모조리 그 선배에게 느꼈기 때문이다. 한 학기가 끝날 쯤 우린 오래된 친구 사이보다도 친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전화를 해도 매번 받지 않거나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의아해하며 몇 일간 연락을 기다리던 중에, 선배의 친구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걔가 알아버린 것 같아.” 그 말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너무 놀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꽉 채웠다. 수많은 방법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지만, 결국은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한편으론 내 비밀이 그렇게 친했던 사이를 멀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실망스러운 건가 하고 많이 우울해졌다. 한동안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아 정신 없이 보냈다. 하지만 곧 전화 한 통으로 침착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일에 익숙한 내 친구의 전화였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항상 유익했다. 학생인 내가 보기에 정말 많은 글자들이 적혀있는 교과서나, 게시 글 하나면 해답이 줄줄 이어지는 인터넷 지식검색에서도 찾아낼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난 지금 내 친구에게서 배우고 있다. 내 딴엔 꽤 오래 학교에서나 집에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만 누가 이런 상황에 대처해야 할 방법을 내게 가르쳐 준 적이 있었던가? 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 언급이나 했던가? 얼마 전 퀴어문화축체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그 밑에 달린 수많은 악성 리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이 난무하고, 이해 못하겠다는 둥 기사 속 주인공들을 비하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보는 내내 나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래도 거기까진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지네 딴엔 사랑이라고.” 정말 화가 났다. 그럼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말 그대로 난 ‘성소수자’였다. 아직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만약 그들이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니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풀고 정확히 알아만 준다면 기사 속 주인공들의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을까? 언제쯤 다시 그 선배에게서 연락이 올 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계속 연락을 기다려왔고 또 한편으로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선배에게 원망을 쏟아내고도 싶지만, 이젠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새롭게 배우고 있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아주 조금씩 천천히 그 선배도 이 사회도 새로 배울 수 있다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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