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문가는 여성이다”

동북여성민우회 지역정치 참여 10년

윤정은 | 기사입력 2005/08/16 [02:11]

“지역전문가는 여성이다”

동북여성민우회 지역정치 참여 10년

윤정은 | 입력 : 2005/08/16 [02:11]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후, 지난 10여 년간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방의회 예산감시, 조례제정 운동 등을 전개하는 한편 지자체 선거에 직접 참여하는 실험을 병행했다. 1995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도 여성후보를 의회에 진출시키면서 지역에서 여성정치세력화 노력을 기울였다. 일다는 그간 축적해온 풀뿌리 지역운동 현황과, 여성들의 지역정치 참여활동을 되돌아보고, 현재 지역 현안엔 어떤 것이 있으며,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여성의 의정참여와 지역운동을 살펴봄으로써 지역정치의 전망을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1993년, 그때는 지방의회 정치에 관심이 없던 때였죠. 동북여성민우회에서 당시 부천시 의원이었던 최순영씨를 초청해 강의를 들었어요. 그때 부천YMCA의 담배자판기추방조례제정과 같은 생활과제가 지방의회에서 정치의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지방의회와 주민참여의 중요성에 대해 자각하게 됐어요. 여성들이 생활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여성단체 차원에서 지방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전 동북여성민우회 대표였던 김연순(현 민우회 생협 부이사장)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지역활동가들에게 지방의회는 돈 있는 지역 유지가 출마하는 정도로 이해되고 있었다. 또 1993년엔 시민들의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거니와 지방의회 의원들은 각 기업들과의 이권에 연루되거나 개입해 물의를 빚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함량미달 남성의원들 보며 충격 받아

동북여성민우회(전 민우회 노원도봉지부)는 여성단체로선 처음으로 여성후보를 발굴해 지방의회 의원으로 배출했다. 1995년, 1998년, 2002년 세 차례에 걸쳐 노원구, 도봉구에서 직접 후보를 내고 당선시켰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지역여성단체가 10여 년에 걸쳐 여성정치세력화를 고민하게 된 계기는 “대다수 함량미달인 지방의원들과 무사안일주의의 지방자치단체를 보면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1993년,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지역정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여성민우회 노원도봉구지부 활동가들은 ‘바른 의정을 위한 여성모임’을 결성하고, 주 1회 학습모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8월에 도봉구 지방의회 방청을 시작했다. 당시 참여했던 활동가들에 따르면 도봉구와 강북구로 분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50여명의 지방의원들이 보여준 지방의회 회의모습은 말 그대로 “코미디 수준”이었다. 당시 방청한 기록들을 남겨 이를 토대로 <지역살림은 우리 손으로>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방청석 뒤에서 함량미달인 의원들의 활동을 보면 답답하고, 참담했어요.”

의회방청을 한 지역 여성활동가들은 지방자치의 현 주소를 목격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서로 울분을 토로했다.” 의원석에서 잠자는 의원은 물론이고, 지방단체들이 주민계도지 등을 명목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었고, 의원들은 해외연수일정이나 자신의 이권과 관련 있는 사례들에만 관심을 보였다. 정작 중요한 의제인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이나 환경문제 등은 예산부족을 근거로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의원석 뒤에 앉아 방청기록지에 기록하고 방청보고서를 내는 것에 대한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김연순씨는 동북여성민우회가 후보를 발굴, 배출해 지방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더 이상 그런 의원들을 믿고 방청석에서만 앉아있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전국적 관심 모은 생활쓰레기 퇴비화 운동

주민들의 요구안과 생활 의제를 가지고 출마한 여성후보자들이 의회에 진출하면서 지역에서 생태, 여성 이슈가 떠올랐다. 대표적 예가 ‘생활쓰레기 퇴비화 운동’이다.

1996년 노원구, 도봉구에 진출한 여성의원들이 지역 주민과 함께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생태적 순환방식으로 제도화한 일은, 이후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의원들은 행정 담당자와 단체장을 설득하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차량, 수거함 명목의 예산을 따냈다. 동북여성민우회는 지역주민들에게 홍보하고 교육하는 한편, 민우회생협운동의 유기농 농가에 음식물을 보내 퇴비로 전환시키는 전반적인 과정을 진행했다.

이 운동은 의원과 자치단체의 협조 아래 진행돼 성공을 거둔 사례다. 동참한 지역주민의 수는 노원구에 소재한 아파트 13개 단지 2200세대와 도봉구 600세대에 이르렀다. 김연순씨는 당시 지역주민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에 대해 뿌듯한 심정을 드러냈다. “폭발적인 반응이었어요. 의원들은 구청 공무원들을 설득해 예산을 책정했고, 아파트 한 단지 한 단지 넓혀가기 위해 부녀회장과 단지 주민들을 교육했죠. 여기엔 우리가 배출한 의원들의 힘이 컸습니다.”

또, 하나 성공적인 사례는 초안산 골프연습장 반대운동을 들 수 있다. 초안산은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을 잇는 도심 속 작은 녹지다. 초안산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동북여성민우회는 간사단체 역할을 자임하며 인근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려 지자체에 압력을 가했다. 그 결과 골프장 계획은 백지화되고, 서울시가 토지매입비를 책정했으며, 초안산은 앞으로 생태공원과 생태학습장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이외에도 의원 발의 영유아보육조례 제정과 실시, 초등학교 통학로를 위한 예산확보, 어린이집 시설 확충과 지원 예산 확대 등 성과를 들 수 있다.

10년 간 동북여성민우회가 의정참여를 하면서 이룬 성과가 컸다면, 그 한계도 있었다. 동북여성민우회 김인숙 대표는 “의원의 활동영역과 시민단체의 활동영역은 다르다”며, “어렵게 후보를 당선시켰지만 의원과 단체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평했다. 김 대표는 지역사안에 대해 한 단체가 아니라 여러 단체들이 함께 고민하고, 수적으로 열세인 단체 출신 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고 지역정치를 바꾸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의 정치가 지역을 바꿀 것

이러한 고민을 토대로 최근에는 도봉구 내에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여성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무지개’ 모임을 꾸렸다. 이 모임은 2006년 지자체 선거에 어떻게 개입하고 대응할 것인지 고민을 담아, ‘도봉구 비전 만들기’ 정책과제들을 함께 작성하고, 최근엔 ‘도봉구 지방자치 학교’를 열어 현재 30~40명의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무지개’는 다음달인 9월에 ‘도봉구 시민정치NGO’라는 정식기구 창립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동북여성민우회가 여성후보를 선거에 내보내면서 내건 슬로건은 “지역 살림은 참신한 여성의 손으로”였다. 지난 10년 동안 지역정치에 참여하면서 “지역전문가는 24시간 지역에 거주하며 생활을 담당하는 여성들”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한다. 지역의 현안인 교육문제, 보육, 안전한 먹거리 확보, 환경보존과 생태환경 조성, 지역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 등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이 고민하는 사람들, 살림을 사는 여성들이 지역주체로 나서 지역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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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 2005/08/16 [21:52] 수정 | 삭제
  • 여성들이 직접 의회감시하고 좋은 사람 발굴해서 의원으로 만들면 지역은 많이 바뀔 거란 생각이 듭니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담장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뜻을 모으면 그 힘은 상당히 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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