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물어봐도 돼?”

장 여사와 친구들

이옥임 | 기사입력 2005/09/12 [16:44]

“이런 거 물어봐도 돼?”

장 여사와 친구들

이옥임 | 입력 : 2005/09/12 [16:44]
“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뭐든 물어 봐. 속 시원하게 대답해줄게. 물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중년여성들의 ‘성’에 관한 이야기로 발전하여 이번 여행 내내 같은 맥락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졌다. 그와의 대화는 웃음과 해학과 기분 전환은 물론, 우리나라 중년여성들의 성적 갈등과 위기에까지 파고들어 자신들의 사고와 행동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3박 4일 간 남도여행을 함께 한 우리 일행의 인원구성은 인터넷 띠방 모임 여자친구 다섯 명. 몇 년 전에 명예 퇴직한 교사퇴물인 나, 이 여사와, 음식점 경영 11년에 피시방 경영 4년의 장 여사, 결혼 초부터 남편의 사업을 도와 전국 각지를 누비고 다니던 함 여사, 얼마간의 교사 경력을 갖고 있긴 하나 주부가 본업인 조 여사, 그리고 여행이 끝났을 때까지 뭘 하는 여자인지, 사생활이 어떤지 도통 알 길이 없는 지 여사(인터넷상의 닉네임을 따서).

소위 ‘여행 번개’란 이름으로 나 이 여사가 올린 글에 선뜻 ‘OK!' 하고 따라붙은 네 명의 중년 여성들은 만나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묻고 대답하기 식의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턴 누군가 궁금증을 제시하면 말하기 좋아하는 장 여사가 주로 나서서 대답하다 보니 자연 이야기는 장 여사의 일대기로 엮어가게 되었다.

: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 뭐든 물어봐.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테니까.
: 자기들은 어떻게 3박 4일씩이나 외박을 할 수가 있어?
: 그러는 자기는?
: 나는 여태 울타리 속에 갇혀 살다가 이제야 겨우 허가 받고 나온 거여.
: 우리들? 우리들은 홀엄씨거나 그 비슷한 여자들이지. 그러니까 누구도 우리들의 여행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사람이 없는… (함 여사는 몇 년 전 우연히 일본 여행을 함께 해 친구가 된 사이고, 장 여사와 조 여사는 함 여사 권유로 인터넷 띠방에 들어갔다 알게 되어 자주 만나는 친구 사이인데 지 여사만 띠방 들어온 지 며칠 안 되었다.)
: 정말이여?
: 정말이다마다. 우리가 이 나이에 숨기고 자시고 할 것이 뭐겠어? 여기 함 여사랑 조 여사는 정말 홀엄씨고 이 여사랑 나는 그 비슷한 신세라니까.
: 그 비슷한 신세가 뭘까?
: 여행하다 보면 이야기들이 술술 나올 것이여.

첫날 목적지인 진도 가는 길에 점심은 전주 덕진 공원 연꽃 구경도 하고 같은 띠방 친구인 꽃님(닉네임)이도 만나 볼 겸 전주에 들어가서 먹기로 하였다. 핸드폰으로 꽃님이와 통화하여 만날 장소를 정하는 사이,

: 꽃님이 본 일 있어?
: 으응. 언젠가 선운사 모임에 이 곳 친구들이 음식 준비 해가지고 나왔거든. 소탈하고 글도 좀 쓰고. 아마도 혼자 사는 것 같아 그 친구도.
: 맞아 그런 것 같았어. 혼자서 여행 다니는 걸 보면…

여자가 혼자 여행을 다닌다면 미혼이거나 과부거나 이혼녀거나 뭐 그럴 거라는 거다. 꽃님이와의 반가운 해후, 그리고 덕진공원의 연꽃을 구경하고 맛있는 전주 한식으로 점심도 해결하고, 꽃님이와 함께 고창 읍성에 들렸다가 다시 우리들끼리 진도로 향하며…

: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해도 돼?
: 뭔 얘기?
: 그러니까 홀엄씨 비슷한 신세가 뭔지 궁금해서.
: 이 여사는 남편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거. 왜 있잖아. 큰 수술하고 나서는 우울증 비슷한 증세로 감성이 이상해져 버린.
: 그래. 뇌수술을 했는데 그 후론 마누라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 있지. 벌써 7년이 넘었네. 각방 쓰는 거. 뿐만 아니라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악마라도 보는 것처럼 험악해져 버리니까 남편 스스로 나랑 마주치는 걸 꺼려해요. 그러니 자연 부부랄 것도 없는 명목상의 부부가 되어버린 거지 뭐.
: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거 있잖아. 딱 그거야.
: 그러는 자기는?
: 나? 내 얘기 하자면 길어. 우리 부부는 서류상으론 이미 남남이거든.

자, 이 대목부터는 주로 장 여사의 일대기라 할 수 있으면서 우리나라 중년 부부들의 성적 갈등과 성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 내 남편은 누가 봐도 호인이며 내게도 엄청 잘했어. 한 가지, 금전문제에서 내 속을 썩인 걸 빼면. 지금 어느 여자가 내 남편과 연애에 빠졌다면 절대로 헤어지지 못할 거야. 오죽하면 내가 음식점을 경영하고 피시 방을 다 운영했을까.
: 너는 그래도 춤이라도 추러 다니며 스트레스를 해소하잖아.
: 그건 그래. 난 춤추기 시작하면 모든 걸 잊고 춤에 빠져들거든.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내 몸은 음악과 하나가 되는 것 같아.
: 그런데 남편과는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 남편이 사고를 쳤어요. 남 빚 보증 서가지고. 할 수 없이 나도 내 자식들하고 살 구멍을 찾아야겠기에 서류상의 이혼이란 방법을 택한 거지. 전에도 남편과는 직장 관계로 떨어져 살았거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그런데 이 작자가 얼마 전부터 오는 횟수가 적어지더니 생활비 보내주는 것도 거르는 거야. 여자의 육감이란 거 있잖아. 냄새가 나거든.

: 그렇담 그렇다고 이실직고하면 사실로도 이혼 할 건가?
: 사실 이 작자가 남자로선 그만이야.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런 남자 어디서 구하기 힘들 거야.
: 어떤 점에서?
: 살갑고 일도 잘 도와주고 매너도 좋고. 성 생활 면에서도 끝내주거든.
: 어떻게?
: 여자 몸을 살살 녹여줘요. 체위도 내게 맞도록 바꿔가면서.
: 자기 마누라한테 그렇게 잘하는 남자도 다 있네. 이 집은.
: 그러니 애인으로서는 그만이라니까. 같이 붙어살지 않아서 그런지. 남편으로서는 허점투성이지만.
: 그런데 어떻게 헤어져?
: 이미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줄 알면서 잡고 늘어진다는 건 내 체질상 맞질 않아 솔직히. 그렇다고 딱 갈라서자니 내가 요즘 백수잖아. 죄 없는 아들한테 생활비 타 쓰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고.
: 장 여사는 장사 수완이 있으니까 또 뭘 좀 시작해보면 되잖아.
: 그것도 당분간은 쉬려고. 일 시작하면 꼼짝 못하잖아. 옛날에 했던 고전 무용 좀 하면서 여행도 좀 다니고 그러고 싶어.

: 그건 그런다 치고 남편이 찾질 않으면 성적 욕구는 어떻게 처리해?
: 그러니까 춤에 취해 사는 거지. 하루에 두어 시간 춤추고 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싸악 가신다니까. 남들은 춤바람이 나네 어쩌네 하지만 그런 건 다 초보 때 외간 남자와 처음 살을 가까이 하니까 가슴이 떨리고 조금만 툭 건드려도 푸욱 빠지고 마는 거지. 나야 내 남편과 사이 좋을 때 춤을 시작했고, 또 그 때야 내 남편이 최고인데 누구한테 눈을 돌리겠어? 이제는 남자들이 다 그렇고 그런 것만 같아 시들해. 여자가 바람이 나는 건 자기 남편에게서 충족되지 못했던 성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봐. 남자들이 자기 마누라한테는 아무렇게나 하면서 다른 여자한테는 얼마나 잘 해주는데. 알잖아, 그러는 거!
: 자기 마누라도 다른 남자들한테는 다른 여잔데 말이야.
: 누가 아니래? 자기 아내 간수도 못 하는 인간들이 다른 여자 넘보는 건 더 잘해요. 암만 점잖을 빼는 남자도 속을 들여다보면 다 똑같다니까.

: 맘에 드는 남자가 생기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혼할 생각은 있어?
: 재혼? 무슨 그런 끔찍한 얘기를. 함 여사처럼 슬슬 즐기면서 사는 거지 뭐.
: 함 여사는 그런 사람 있어?
: 으응. 나는 남편 보내고 2년 여는 맘 적으로 힘들게 살았어.
: 그러다가 학교 다닐 때 얘 좋아하던 남자가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거 아니냐! 거기도 마누라 먼저 보내고 독수공방 하다가 함 여사 혼자 된 걸 알고 딱 만난 거야. 지금 깨가 쏟아지잖아. 저 쪽에서는 재혼하자고 안달이지만 뒤늦게 재혼해서 누구 뒤치다꺼리나 하고 살게?
: 나도 남편 보내고 나니 정말 힘들더라야.
: 샌님(조 여사 애인)이랑은 여전히 잘 지내지?
: 그냥 그렇지 뭐. 어려워. 미안하고. 마누라 있는 남자와 사귄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늘 눈치 보이고, 밤이면 외로운 건 마찬가지고.
: 늘 그게 문제야. 짝이 없는 남자는 들러붙어 결혼하자 그러고, 짝이 있는 남자랑은 눈치 보이고, 남들한테도 쉬쉬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 진도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다음 저녁을 먹고 마을회관에서 진도 문화의 진수 ‘다시래기’ 등 소리도 듣고 강강술래도 함께 하고 한 판 춤이 벌어졌는데, 말로만 듣던 장 여사의 끼가 여실히 들어나는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소리와 몸이 하나가 되어 휘휘 감고 도는 느낌이라니…

저런 여자를 홀로 두고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남정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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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미니 2005/09/16 [20:09] 수정 | 삭제
  • 읽으면서, 중년여성들의 여행은 영화가 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영화장면처럼 스쳐지나갔거든요.
  • miro 2005/09/16 [12:08] 수정 | 삭제
  • 혹여라도 재혼해서 남자 뒤치다꺼리하지 말고 싱글로 사세요.
  • 공숙 2005/09/15 [15:36] 수정 | 삭제
  • 대화에 끼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가면서 말이지여.
    시원한 여행이 되셨겠군요.
    여자들은 어깨와 등에 짐 지우지 않고 가는 여행 참 어렵습니다.
  • 모 여사 2005/09/13 [19:22] 수정 | 삭제
  • 여자가 자유로우려면 남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 러버 2005/09/13 [12:51] 수정 | 삭제
  • 아직 연배는 안되지만 벌써부터 많이 공감. ^^ 장여사님 멋지네요. 대화들이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한참 웃었어요.
  • star 2005/09/13 [00:11] 수정 | 삭제
  • 중년여성들의 속 션한 얘기 재밌네요.
  • 2005/09/12 [21:24] 수정 | 삭제
  •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자신을 위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 그 이름 여성이다.

    여사님들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맞장구를 치고 말았습니다.
  • 선형 2005/09/12 [20:02] 수정 | 삭제
  • 넘 재밌는 인터뷰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