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명희님은 현재 대안가정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나는 두 자녀를 입양으로 얻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은 1996년 7월, 생후 4개월 때부터 위탁양육 하다가 4년 후인 2001년 7월에 입양절차를 거쳤다. 아들은 올해 3월에 생후 9개월인 때에 입양했다. 영구위탁 중인 14세의 또 다른 딸을 포함한 우리 가족 다섯 명은 모두 혈연이 아닌 계약에 의해 가족이 됐다. 남편과 나는 결혼으로, 세 아이는 입양과 위탁으로 한 가족이 됐다. 계약으로 맺어진 가족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여느 가정과 달리 조금 특별하게 보는 이유는 혈연에 의해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는 것 때문일 게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어떻게 보는가와 상관없이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히 그저 한 가족일 뿐이다. 이렇게 입양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든지, 세인의 궁금증에 답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우리는 입양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곤 한다. 가끔 입양을 고민하면서 상담을 해오는 분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걱정스럽게 보태준 조언들로 인해 오히려 두려움에 빠진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곧잘 “남의 아이 데려다 키워봤자 소용없다. 다 크면 지 부모 찾아간다더라” 하고, “어떤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는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야”라는 둥, “배 아파 낳은 내 아이하고는 아무래도 다를 텐데” 등 입양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들을 하곤 한다. 입양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우려 입양을 앞두고 가까운 이들로부터 이런 부정적인 피드백만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면 입양이 회의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걱정들은 대부분 입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막연한 예측이거나 그들 역시 누군가를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들로 검증되지 못한 정보인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혈연을 통한 가정만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정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지난 50여 년 동안 공식적으로 6만 명이 넘는 아동이 입양되었음에도 우리 주변에서 입양이 되어 성장한 사람들을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부정적인 사회적 편견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가 비밀입양을 지속시켜 왔고, 어쩌면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입양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입양은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입양 후 모든 연락을 끊고 이사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입양 이후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다. 또 비밀입양이라 해도 입양사실을 아는 소수의 직계가족들이 있는 경우 우연찮게 입양사실이 알려지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아닌 제3자를 통해 어두운 뉘앙스와 함께 접하는 자신의 입양사실은 엄청난 충격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입양인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입양되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입양인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종종 접할 수 있다. 합법적 절차 따르는 공개입양 가정 늘어 또 다른 문제는 비밀입양의 경우 합법적인 입양절차를 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신 허위출생신고를 통해 아이를 호적에 올리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현행법에 저촉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입양가정들이 합법적인 입양절차 대신 허위 출생신고를 통해 자녀를 호적에 올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있다는 점이다. 50년 입양역사가 이렇게 흘러오기까지는 입양기관이 큰 몫을 했다. 입양기관들은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고려하여 비밀입양을 권장했고, 합법적인 양자입양절차에 대한 안내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어느 시기부터는 그들 스스로 합법적인 양자입양절차를 완전히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부부는 두 아이를 다 양자입양절차를 거쳐 입양했다. 2001년 딸아이를 입양한 기관에서도 합법적 절차를 따른 공개입양은 우리가 처음이었고, 4년이 지난 2005년 아들을 입양한 기관에서도 처음이었다. 두 경우 모두 입양기관으로부터 입양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받는데 3~4개월이 걸렸고, 구청 호적계에 입양신고 서류를 접수하는 데 3일이 소요됐다. 그리고 행정적인 모든 절차가 끝난 이후 양자입양절차가 무색하게도 호적에 아이의 성이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등재되었다가 항의를 받고서야 다시 정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똑같이 겪었다. 이런 어려움은 우리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들어 공개입양 가정 중 합법적인 입양절차를 따르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그들 모두 우리 가정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입양기관과 행정기관이 양자입양절차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동안 입양부모들이 거꾸로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가르쳐줘야 하는 이상한 형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슴으로 산고를 치러 얻은 자녀 어떤 이는 굳이 양자입양절차를 따를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허위출생신고가 비록 불법이긴 하지만 이미 통상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호적에 ‘양자’라는 흔적이 남지 않아 아이가 사회적 편견이나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없으니 오히려 더 좋은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입양이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사회 입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반문해볼 수 있다. 자녀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권리가 있다면 나를 선택했을 거라고 자신할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부당한 제도의 개선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나는 남편보다 딸을 먼저 가족으로 만났다. 결혼하기 전 조그만 공동체를 꾸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후 4개월이 된 조그만 아기를 품에 안았다. 자신의 생존을 오로지 내게 의탁한 작은 아기가 나를 엄마로 만들었고, 내 안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무한한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배 아파 낳지 않아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확신을 내게 주었고, 그래서 남편과 결혼한 후에 정식으로 입양절차를 거쳐 법적인 부모가 되었다. 인생의 많은 변수 중 하나인 ‘입양’ 아기가 자라서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딸아이의 눈망울을 마주하면 빨려 들어가고 만다. 맑고 착하게 자라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나 더없이 성실하고 착한 딸이지만 사춘기를 맞이할 것이고, 어쩌면 엄마 아빠를 거슬러 반항하는 시기도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입양을 두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생부모와 관련해서 상실의 아픔에 깊게 빠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닥쳐올지도 모를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우리는 그 강을 함께 건널 것이다. 아이의 고통을 제거해주기 보다는 아이의 아픔을 인정하고 함께 아파할 것이다. 딸아이가 아직 말도 제대로 하기 전부터 수없이 속삭였던 말을 다시 들려줄 것이다. “너는 엄마 아빠의 소중한 아이야!” 라고.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정에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다. 인생에는 입양이 아니어도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잘 살아낼 것이다. 입양은 우리 아이들의 삶의 질이나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인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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