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어머니’를 양산하는 사회

아이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

윤정은 | 기사입력 2005/10/18 [04:44]

‘비정한 어머니’를 양산하는 사회

아이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

윤정은 | 입력 : 2005/10/18 [04:44]
출생신고 관련한 취재를 하느라 ‘출생신고’를 비롯하여 ‘영아 살해’, ‘아동 유기’, ‘유괴’ 등의 단어들을 입에 올리며 관공서에 전화를 걸기도 하고, 형사를 만나 묻기도 하고, 검색사이트에서 이런 범죄들을 키워드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포털 사이트에 올려진 질문들을 보게 됐다. 아직 혼인신고를 안 한 상황에서 아이가 태어나는데 출생신고를 어떻게 하는지, 미혼인데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한 질문이었다. 두 질문 모두 여성의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 남성이 답해놓기를 “대부분 미혼모인 경우 아기 아버지인 남성들은 나타나지 않으니” 혼인 외 출생자들의 출생신고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당시 질문을 했던 그 여성은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 후 그 여성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다. 결혼 안 한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를 낳더라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연애나 스포츠를 기사를 주로 다루는 신문에서 ‘영아 살해’를 한 미혼모가 구속됐다는 기사가 가끔 나오기도 한다. 예전에 언젠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휴지통에 버려 뒤늦게 경찰에 의해 구속됐다는 얘기도 들은 적도 있다. 아이를 살해한 나이 어린 여성들은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인’ 혹은 ‘인륜을 저버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악녀로 얘기 되곤 한다.

이번에 취재차 만난 형사에게서도 ‘인륜을 저버린 부모’ 얘기를 들었다. 장애아동을 전철 안에 버리고 내린 어머니 얘기였다. 이 어머니는 “아이를 잃어버렸다”며 허위실종신고를 냈다가 경찰청 장기미아추적전담반 수사에 의해 발각이 되어 얼마 전 유기죄로 형사 입건되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는 이 ‘비정한 어머니’에 대해 사회적 시선과는 다르게 되려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의 말의 요지는 이 어머니가 “장애아동을 낳았다고 시부모가 구박하고, 남편도 외면하고, 이혼 당해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해 식당종업원, 술집 등 안 해 본 게 없더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장애를 가진 자식과 함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동안 아이 아버지는 친권행사도 포기하고 나 몰라라 했다 한다.

그러다가 아이 어머니가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어 한 장애인시설에 맡겼는데 올해 1월에 장애인시설에서 “아이를 맡을 수 없다”고 통보해와 시설에 가서 사정을 해보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돌아오던 길에 아이를 전동차 안에 두고 내렸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머니 손을 떠난 후에야 아버지는 “아이를 보고 싶다”며 전화했고, 겁이 난 어머니가 허위 실종신고를 했지만 아이를 버려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도, 양육하는 것도, 낳은 아이를 죽이는 것도, 아이를 버리는 것도, 여성들이다. 물론 허위출생신고 되고,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의 인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아이의 인권을 저버린 ‘비정한 어머니’들에 대한 처벌 또한 어쩔 도리가 없다. ‘아이를 버리고 죽이는 여자들’이 법에 의해 처벌 받아야 한다면 태어난 자기 아이 앞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이미 생명을 유기한 아버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저출산 대책이 시급하다며 떠들지만 정작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없는 사회 전반의 노동ㆍ복지 문제와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한 아동인권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없어 보인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 그리고 모든 아동들이 인권을 보호 받는 가운데 자랄 수 없는 사회. 이것이 저출산 보다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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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코초코 2005/10/23 [15:50] 수정 | 삭제
  • 어느 정도는 교육이 필요한 문제.
    입양기관에 맡겨야지, 주위 시선이 두려워 아이를 버리면 되나.
    위탁이란 것도 있고,
    반드시 낳은 여성이 애를 옆에 붙여놓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들 버려야 한다.
    그런 생각 때문에 오히려 버려지는 애들이 더 많은 것이다.
    전남편이 책임행사를 다 저버렸는데도,
    애 보고 싶다고 뻔뻔스럽게 연락해오는 것도 짜증나네.
  • 날개달님 2005/10/21 [10:58] 수정 | 삭제
  • 어떤 부모를 두었던 간에 아이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권리이고 아동의 인권이다. 그런데 그 부모가 아이를 적절히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가와 사회가, 그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 옳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특정한 부모-이른바 ‘정상가족’을 꾸리고 있는 부모-만 지원하는 것은 복지도 아니고, 아동의 인권에 위배된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낳은 사람이 아이를 잘 키울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겨울 2005/10/20 [15:10] 수정 | 삭제
  • 애 낳고 도저히 키울 수가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출산률만 높이려고 하다니...
  • yeoja 2005/10/19 [23:51] 수정 | 삭제
  • - "'아이를 버리고 죽이는 여자들’이 법에 의해 처벌 받아야 한다면 태어난 자기 아이 앞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이미 생명을 유기한 아버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이 글에 등장하는 대상은 버려진 아이, 아이 엄마, 아이 아빠 입니다 피해자는 버려진 아이고 가해자는 버린 엄마죠 물론 아이 아빠도 공범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엄마(가해자)가 처벌 받는 것과 또다른 가해자(아빠)가 처벌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의 죄를 참작해서 심판할 수는 없습니다
  • 휴무 2005/10/19 [12:56] 수정 | 삭제
  • 가장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다 포기한 사람이 가장 크게 벌받는 꼴이지요.

    모성은 본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물 엄마들이라고 해도 상황이 극한에 달하면
    새끼를 물어 죽인다고요..

    끔찍한 상황에까지 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한 사람이 감당 못 하는 아기는 모두가 도와서 같이 키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란 2005/10/18 [18:34] 수정 | 삭제
  • 돈 잘 버는 남편이 있거나, 사회적인 도움이 뻗치지 않으면, 정말 키우기 힘들죠. 장애아에겐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제가 아는 분도 자기 인생에 벼락이 내렸나 하고 산다고 얘기하는데 안타까웠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버리고, 복지시설에서도 내놓았는데, 아이를 버렸다는 이유로 저 어머니를 어떻게 단죄할 수 있을까 싶어요.
  • girl 2005/10/18 [10:25] 수정 | 삭제
  •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현실에 처한 여성들 얘기가 너무 비참하네요. 저출산보다 훨씬 시급한 문제죠. 우리나라는 태어난 아이에 대한 복지정책도 제대로 안돼있으면서 애만 낳으라고 하는 게 밉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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