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한 소녀를 만났다. 그 아이는 17번, 나는 18번. 그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말 한번 섞어보지 못했을 거고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지도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면 운명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보다. 운명이 정말 있을까? 적어도 그 아이가 뜬금없이 연극을 하겠다며 열의를 불살랐을 때 난 운명의 존재를 확신했었다.
그를 보면 ‘운명’이라는 말은 낭만적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 마법 같은 운명 속을 거닐고 있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무대 아래 환호성을 지르던 아이 어린 시절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쯤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로 연기를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고 나서라고 한다. 학교에서 뮤지컬 <그리스>를 공연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문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게 될 기회가 있었고, 이미 자신이 했던 뮤지컬이라서 익숙한 동작과 노래에 관람을 하는 내내 따라 부르고 어깨춤을 추며 무대 위 배우들과 같이 뛰고 노래 부르고 싶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이것이 미라가 연극을 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언젠가 그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간 기억이 생각났다. 가뜩이나 굼뜬 내 반응과는 달리 그는 무대 위에 오른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지르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면서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관객도 연극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존재다”라고 말했던 그의 말이 실감이 났다. 연극을 하면서 “창작의 기쁨을 느낄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걸음걸이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단원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직접 해보면서 극을 구성해 갈 때가 정말 재미있고 기뻐. 이런 기쁨을 관객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 되고. 아마 창작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자신의 생각과 고민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것이 무대 위에 오르는 매력일거야. 가끔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다가 관객과 시선이 마주칠 때가 있어. 연기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이 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황홀감. 그 강렬함이 연극을 하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거지.” “여성캐릭터의 폭이 다양해”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가 함께하고 있는 ‘명랑씨어터 수박’은 사무실도 연습실도 없는 극단이다. 작품에서 사용한 물품들을 다른 연습실 창고에 보관해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갖는 회의도 단원 누구의 자취방이나 찻집에서 한다. 신생극단은 다들 그렇게 힘들단다. 하지만 ‘수박’ 극단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아직은 이런 불편까지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단다. 수박이라. 얼마나 깜찍한 이름인가! 한 덩이를 쪼개 모두가 나누어먹을 수 있는 과일, 수박처럼 나누고 싶다는 욕구, 무대 위를 활보하게 하는 뜨거운 열정이 느껴져서 참 좋은 이름 같다. 이 극단엔 여성들이 많다. 작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연출자 2명, 작가 1명, 배우 3명이 모두 여성이다. 다른 극단과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수박에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자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도 다른 배우들처럼 역할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데, 다른 극단에 들어간다면 과연 지금의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돼. 기존 여성 인물들은 ‘창녀’, ‘성녀’ 유형으로 고정돼 있잖아. 여기선 글 쓰는 사람과 연출이 여성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여성캐릭터의 폭이 다양해. 배우로서 느끼는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본 몇 안 되는 연극들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정말 “창녀”였거나 아니면 남자주인공의 주변인으로 등장한 게 대부분이었다. 창의성이 중요한 연극에 있어서도 여성들의 역할은 고리타분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소통’이라는 메시지 얼마 전 그가 출연한 연극 <열혈녀자 빙허각>을 보고서 다음 공연을 위해 서둘러 인사만 하고 헤어지느라 나누지 못했던 공연 얘길 꺼냈다. 수박의 연극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 작품도 세상 비틀기를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져줬다. 빙허각을 직접 연기한 배우는 그 인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미라는 ‘소통’에 대해 말했다. 빙허각은 남편이 죽자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당시 세태에선 열녀로 추앙 받았지만, 연극에선 그의 죽음이 실제론 평생 ‘글 친구’였던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200년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과연 얼마큼 이렇게 소중한 ‘글 친구’를 가졌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우리의 대화들은 진심이 담겨있다기보다는 단순한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들 즉 공허한 말들 뿐이잖아? 친구건 부부건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이 연극은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내게 던진 것 같아.” 미라의 말처럼 진정한 소통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 누군가와 마음을 맞댄다는 것은 무지개 너머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무대 위의 상황에 몰입해 있는 관객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느끼는 희열, 무대 위를 활보하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느끼는 감동이 미라를 계속 무대 위에 오르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보면, 빙허각이 추구했던 ‘소통’은 미라의 것이기도 한 것 같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다는 미라.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모습을 펼쳐가며 사람들과 나누고 어울리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부단한 그의 노력 속에서 꽃 피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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