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장벽을 넘어서”

장애인 여행프로그램 기획자 오소도 마사코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5/10/25 [03:22]

“여행의 장벽을 넘어서”

장애인 여행프로그램 기획자 오소도 마사코

김이정민 | 입력 : 2005/10/25 [03:22]
지난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또하나의문화 주최로 ‘여성과 여행, 관광작품화를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성들의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지난 10년간 장애인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오소도 마사코씨의 발표는 그야말로 경계를 넘어, 장벽을 넘어 여행하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발표 후 못다한 이야기는 인터뷰로 나누었다.

여행 디자이너 오소도 마사코씨의 여행과의 인연은 3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20대에 여성들의 ‘홀로 여행’을 추진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여성들이 자유롭게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온 일이었다. 마사코씨는 ‘지구는 좁다’라는 출판사를 만들고 가이드북을 출판하며 여성들이 자유롭게 혼자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취재를 위해 그 또한 배낭을 메고 수없이 ‘혼자 길 떠나는 여성’이 되기도 했다.

30대에 그의 고민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역시나 그 당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는데, 아이가 있기 때문에 여행하지 못하는 것이 ‘억울’해서 아이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여행을 떠났다. 그는 오히려 “여행을 하면서 아이에게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전달하고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휠체어는 여권이다”

그리고 한편 40대 장애인, 고령층과 함께 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여성이 혼자 하는 여행을 테마로 해서 많이 다녔는데, 여성이 이전보다 자유롭게 여행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다른 테마로 여행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행 중 우연히 런던의 한 서점에서 114인의 장애를 가진 영국인들의 세계 체험기 ‘nothing ventured’를 만났다.

이 책에는 중국 대륙을 의족으로 여행한 이, 사하라 사막을 수동으로 조절하는 차로 횡단한 이, 하반신 마비에 걸린 남편과 아내가 아마존을 여행한 이야기 등 도전적인 사례가 가득했다고 말한다. 마사코씨는 이 책을 <휠체어는 여권이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어판으로 번역, 출판했다. 그의 설명으로는 휠체어가 장애의 상징이 아니라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여권’같은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맹도견(시각 장애인 안내견)은 비행기 값이 안 든다는 것이었다. 마사코씨가 장애인들의 여행을 기획하게 된 한편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비행기 값이 공짜인 개를 데리고 함께 여행을 하면 무척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개와 함께 비행기를 타는 장면을 상상하니 반드시 이 투어를 성사시키고 싶어졌다. 그래서 처음 기획한 것이 “좋은 맹인견을 데려가는 해외 투어 시리즈1”로 파리와 니스로 떠났다. 그 여행은 당시 일본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졌고 참가하고 싶다는 장애인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그리고 10년 동안 장애인 여행 투어는 계속 되었다. 원래는 1번만 할 계획으로 시작된 여행이 벌써 45번을 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모두 포함해 900명 이상이 투어에 함께 다녀왔다. 83마리의 맹인견도 함께였다.

“처음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안 보이는 사람들끼리, ‘장애별’로 여행을 했는데 그게 좀 이상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어떤 장애든 상관없이 다양한 이들이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눈이 안 보이는 사람과 휠체어를 탄 사람이 함께 여행하면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휠체어를 밀고, 대신 눈이 되어 주는 방식으로 서로 도와준다. “몸이 건강한 사람들은 눈이 안보이면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눈이 안보일 뿐이다, 다리가 불편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장애인이라는 범주로 묶지 않고 서로 도와주면서 여행을 하는 겁니다.”

오감으로 즐기는 여행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좋은 구경을 할 수 없으니까 여행을 할 수 없다고, 휠체어를 타고 사막을 지날 수 없다고,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환자는 여행을 할 수 없다고.

오소도 마사코씨와 함께 여행한 이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여행은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향기가 가득 차다, 천국 같다, 돈을 던져 떨어지면 행복이 온다, 손대다, 소리를 듣는다, 맛보다.” 이것이 모두 여행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이다. 그 때 비로소 여행은 오감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즐기는 여행이 된다. 여행 참가자들은 전동휠체어로 사막을 횡단하고, 오로라를 보러 간 북극권에서 신장 투석을 받았다. 일정만 조금 조정한다면 병원에서 투석을 하고 합류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비용은 귀국 후, 건강 보험으로 조달했다.

발표 중 마사코씨는 여행 중에 촬영한 사진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꽃이 가득 핀 들판에서 활짝 웃고 있는 눈이 보이지 않는 이, 반신이 마비되어 한쪽 손을 못 쓰면서 가족과 함께 낙타를 타는 이, 모두 오감으로 즐기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중증마비를 가지고 아이스 스위밍(특수복을 입고 얼음 위에 떠있는 수영)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의 사진에서는 “우리 모두 같이 아이스 스위밍을 즐기는 사람일 뿐 누가 장애가 있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할 수 없었다.”

누구나 장애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누구나 장애가 없기도 하다. 더 많은 이들이 더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장벽 넘기(barrier-free)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일 것이다. 마사코씨는 짧은 당부로 말을 끝맺었다. "평생 즐겁게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각 나라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환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가 없도록’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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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요르 2005/10/25 [23:52] 수정 | 삭제
  • 배리어프리!.. 혼자여행할 떄면 비장애인이라해도 아직 장벽을 많이 느끼지요..홀로임 그리고 여성임이 마치 어떤 구분에 묶일 수 있는 장애처럼 파고들어요. 특히 국내를 여행하면. 말거리, 구경거리가 되기도하고 위험 요소를 늘 경계해야 하고... 그래도 모든 이들에게 열려진 자기만의 방에 온 모순처럼 . 그 공간과 함께 자기와 세상을 연결하는 이야기가 저장되는 것 같아 또 가게 되더군요..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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