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님은 우리 장애인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십니다.”
한 인터넷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이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간 한국사회에서 황우석 교수는 장애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통했다. 정부와 언론들이 합세해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연구를 ‘장애, 희귀, 난치병 치료를 위한 것’이라고 국가적으로 홍보해왔고, 황 교수는 “아픈 사람들을 일어나게 해주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선한 사람”의 이미지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언론 통해 ‘난자기증 촉구하는 장애인 모습’ 부각돼 “그 동안 (장애인들에게) 장미빛 환상을 심어준 것이 문제다. 그 기술에 목매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당연하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 활동가는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했던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조작된 것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황당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줄기세포연구에 기대를 걸고 있는 장애인들이 많이 있다”고 전했다. 현재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마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에 따르면, “황우석 교수 지지”를 천명했던 장애단체와 강원래씨 등은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황우석 교수 연구의 최전선에는 장애인들의 얼굴이 내세워져 있다. ‘연구치료 목적 난자기증 지원재단’(이하 난자기증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하균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회장은 “황우석 박사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것은 사실”이라며, “연구를 위한 난자기증 활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황우석 교수와는 2년 전부터 연구 모니터링을 하며 알고 있었다”며, “(황교수가) 일부 연구과정에서 부분적인 잘못은 시인했지만, 연구가 후퇴되거나 포기되어선 안 된다”고 지지를 보냈다. 연구성과 과대포장에 ‘이용’했다 지적도 그러나 모든 장애인 단체들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지지입장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계 내부에서는 정하균 회장의 입장과는 다른 견해들도 존재한다. 오히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등의 ‘황우석 지지’ 입장이 “언론에 의해 장애계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여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장애인 부문위원장 박인용씨는 16일 장애인 인터넷신문 ‘위드뉴스’에 “배아줄기세포, 장애인과 난치병환자의 희망인가”라는 제목으로 기고하며, 자신을 “장애아동을 둔 부모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박씨는 “공인이라 할 수 있는 한 연예인이 보여준 행동은 대단히 부적절했다”며, “황우석 교수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해도 난자 제공 여성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MBC에 대한 항의시위에 참여하고, 마치 황우석 교수가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황교수를 비롯한 그 신화의 주인공들은 난치병 치료라는 박애주의까지 동원하여” 연구성과를 과대 포장했다고 비판했다. 한국DPI(한국장애인연맹) 여성위원회 김효진 부위원장은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하고, “설사 20년 후에 연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백이면 백 수술해서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고, 모든 장애인들이 그 기회를 제공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개개인이 장애가 극복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 장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황우석 교수 연구가 ‘장애인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얘기는 환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김효진씨는 황우석 교수 연구가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장애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며, 정하균 회장이 제기한 ‘황우석 연구에 정부가 더욱 지원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아주 위험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 모든 부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노동권 등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 의지하는 것보다 시급하지 않으냐는 제언이다. 장애인 ‘평등권’과 여성 ‘건강권’ 확보 위해 이에 앞서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의 재생산 권리 보장 및 인공생식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촉구하며 “치료와 연구라는 목적으로 난자의 원활한 공급만을 주장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난자관리 시스템의 부재를 난자기증재단으로 해소하려는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맹신에서 오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여성과 장애인은 생명공학 기술의 잠재적 수혜자이며 대상자이기도 하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특정 계층 사람들의 권익이 보장되기 위해, 사회적으로 취약한 또 다른 계층의 잠재적인 건강과 인권이 도외시되어선 안 될 일이다. 생명공학 연구를 위해선 연구대상자가 될 집단의 인권과 건강, 복지가 일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관련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에 나설 때다. ‘장애, 희귀,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으로 부각됐던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의혹은 연구팀 내부 제보를 통해 하나 둘 연구윤리 위반과 인권침해 실태가 드러나더니, 급기야 전세계를 상대로 한 거대한 ‘사기극’으로 그 전말의 윤곽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황우석 교수는 ‘앞으로는 장애, 난치, 희귀병 환자들을 앞세우고, 뒤로는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볼모로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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