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배우러 왔어요.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제가 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제가 ‘엄마’, ‘아저씨’ 같은 기본적인 한국어는 할 수가 있었대요. 잊어버린 한국어를 다시 찾고 싶어요.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싶고요.”
한국계 입양인 크리스 달링(22). 그의 정체성은 맞추기 힘든 퍼즐과도 같았다. 스스로 한국인이면서도 미국인이라고 했다. 아직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은 여느 입양인들과 비슷한 것 같다. 크리스와 함께 보내진 서류에는 ‘이아희’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 오기 전까지 그 이름을 부른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입양기관에서 지어준 이름일 뿐 실제 이름은 모른다. 그의 생일은 1월 24일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입양 부모가 준 날짜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새해가 되면 흔히 보는 토정비결을 본다고 해도, 타인의 운수가 펼쳐질 뿐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 그러나 크리스는 씩씩하고 스스럼없는 아이였던 것 같다. 끼가 보통이 아니었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남과 다른’ 자신을 표현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켜왔다. 아마 크리스와의 첫 대면에서는 그의 숨겨진 끼를 눈치채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말도 별로 없는 크리스가 사귀기 힘든 상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더 친해지면 은근히 ‘재미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혹시나 무료하고 심심할 때, 어딘가 허전하다고 느껴질 때, 크리스가 방안에서 이리 저리 춤추고 다니며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의 몸에서는 많은 노래가 흘러 나온다. 한국에 있는 동안도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합창단에 들어간다면 참 좋을 텐데, 크리스는 아직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 유명한 사고뭉치였어요” 크리스는 농담 삼아 백인남자는 멍청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제일 멍청한 백인남자는 바로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란다. 국민들 생각은 안 하고 자신에게 정치자금을 대주는 기업 걱정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뼈 있는 농담 속에는 그의 깊은 상처가 숨어 있다.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의 여자, 그것도 입양인으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제가 사고를 쳐서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 가신 적도 많아요. 학교에서도 유명한 사고뭉치였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입양된 동양인 여자 애가 공부를 하지 많으면,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앞으로의 삶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갔어요.” 크리스는 지금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해하는 듯싶었다. “나의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고 싶어요.” 경제강국에서 ‘싱글맘’ 살아갈 수 없다니 그가 한국에 온지 5개월째다. 겨우 초급 반을 마쳤으니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사실 그 동안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한국 문화에 적응하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크리스는 한국 음식과 정이 많은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많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한국의 여성문제와 입양문제에 관심이 많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의 여성들을 대단해요. 희생적인 엄마, 가정적인 부인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명성을 얻어야 성공한 여성으로 인정 받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슈퍼우먼’으로 살기는 힘들지 않나요?” 한국 사회의 가부장성을 꼬집는 얘기다. 크리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당히 높아져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싱글맘’들을 보세요. 한국에서 여성 혼자서 자녀를 키우기는 불가능해 보여요. 그래서 자꾸 해외로 입양을 보내게 되는 거겠죠? 세계 제 11위의 경제강국치고는 복지제도가 부족한 것 같아요. 다행히 2010년부터 해외 입양이 없어진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이제부터라도 한국 정부는 고아원과 같은 사회복지 쪽에 더 많이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복지에 대한 크리스의 우려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소수자의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입양될 당시 크리스는 뇌가 부어서 눈에서 진물이 흘러 나올 정도로 병든 상태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는 최악의 입양가정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교도소에 가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또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키워졌다고 한다. ‘게이학교’서 만난 정말 좋은 친구들 특이할 만한 점은, 항상 그의 곁에는 동성애자나 트렌스 젠더와 같은 성적소수자들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크리스는 성적소수자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여태껏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말했다. “저의 미국인 어머니는 레즈비언이었어요. 한동안 어머니의 여자친구와 같은 집에서 지냈죠. 사실 저도 레즈비언이에요. 그래서 주위에서 눈총도 많이 받았죠.”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엔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솔직히 어머니의 여자친구 얘긴 뜻밖이었다. 역시 성적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한국 사회와는 많이 다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크리스는 “성적소수자들은 미국에서도 인정 받기가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게이라는 게 밝혀져서 집에서 쫓겨 나는 경우도 있고요. 회사에서도 싫어하죠. 저는 미국에서 게이학교라고 불리는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그 때 만난 친구들 중에는 정말 좋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사회에서 받아 온 상처가 비슷하니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가 봐요.” 어쩌면 내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크리스의 정체성 퍼즐을 맞춰 ‘쿨한 한국계 미국인 입양인’이라는 그림을 완성하게 된 이유는, 크리스의 시종일관 유쾌한 말투와 게이학교라고 불리는 고등학교에 다녔던 시절 이야기들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때 만난 친구들 중에는 정말 좋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사회에서 받아 온 상처가 비슷하니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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