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세요?”
누군가 이렇게 물어왔을 때 지금까지는 “아뇨, 아직은.” 이라고 대답해왔다. 해야만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는 상태, 곧 운동은 의무로 다가올 뿐 나의 욕구는 아니었다. 헬스장에서 벌어지는 인위적인 운동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수영이나 조깅, 배드민턴도 잠깐씩 해보았으나 게으름 탓에 오래가진 못했다. ![]() 일단,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은 사절이다. 하체비만형 몸을 갖고 있긴 하지만 몸짱 대열에 동참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음으로, 시골에서 자란 터라 어렸을 때는 산과 들판을 헤집고 다니며 자연스레 체력단련을 했었는데, 그런 재미를 다시 맛보는 방법은 모른다. 또한 청소년 체조, 윗몸 일으키기, 뜀틀 등으로 점철된 중고교 시절 무미건조한 체육시간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법 역시도. 이처럼 사실상 운동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 2박 3일의 호신캠프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아무 운동이라도 해야겠다, 살이 빠지든 말든 상관말고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보자,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여자들끼리 눈밭을 뒹굴고 소리를 지르고, 마구 승부욕에 불타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기는 것 아니면 지는 것으로 판가름 나는 스포츠의 이분법적 세계, 그 단순함이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 둘 쌓인 몸의 자신감이 곧 마음의 자신감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자본주의. 마초세상에서 온갖 성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운동은 곧 호신”이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게 됐다. 몸을 움직이면 뛰게 되고, 뛰다 보면 소리 지르게 되며, 그러다가 겨루게도 되니까.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이 몸이라서, 리듬을 주면 팔딱거리게 되고 그 팔딱거림이 곧 내 안의 공포를 몰아낸다. 내 안에 형성된 자신감은 결국 밤길 치한에 대한 공포도 몰아내겠지. ![]() 상대가 어떻게 공격해 올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뒷덜미를 잡혔는데 뿌리치는 방법은 뭘까, 상대의 손목을 거머쥘까, 발을 걸어볼까, 다들 보고 있는데 지면 자존심 상할 거야, 이기고 싶어, 정말로 이기고 싶어, 등등 겨우 1분 동안 머리를 스쳐 가는 온갖 생각들. 한 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A, 다들 A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B는 체격도 작은 데다가 너무나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A는 마치 불독이나 셰퍼드 같았다. 그런데 A는 B에게 연속으로 제압당했다. 마치 영화 <와호장룡>의 장쯔이와 양자경을 연상시키는 대결이었다. 호신의 기본은 자신감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일단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각종 운동을 통해 나의 물리적인 힘을 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보니 되네, 별로 어렵지 않네, 와 같은 것. ‘난 생물학적 여성이므로 선천적으로 남성들보다 몸이 약해’ 라는 무시무시한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 말이다. 하지만 호신강의를 진행했던 분의 말대로 “맞아봐야 때리는 법도 알게 된다”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싶다. 몸의 크기와 마음의 크기는 결국 함께 가는 것이라서 우선은 몸을 여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만,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과 당당하게 맞서는 일이야말로 호신의 진짜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소수지만 권투, 택견, 무에타이 등을 배우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나도 다음 달부터는 합기도를 배워볼까 생각 중이다. 깨지고 일어서고, 또 깨지고 또 일어서고, 그러다 보면 나의 두려움들도 하나 둘 사라져가겠지. 여성들이 조만간 서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멋질 것 같다. “무슨 운동하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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