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남한 사회로 유입되는 탈북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현재 약 7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또 중국에서 현지 조사를 벌인 민간단체들에 의하면 중국 내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의 수가 몇만 명에서 수십만 명까지 얘기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남한 사회 내에서는 탈북자들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는 것부터,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 내 머물고 있는 ‘탈북자’의 존재나 남한사회 정착한 탈북자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때마다 남한 사회는 난감해하며 이념적인 갈등이 재현되곤 했다. 남한사회에서 탈북자들의 존재는 남남갈등에서 대명사처럼 등장하곤 했다.
반대로 그간 우리 사회는 탈북자 그들 스스로가 어떻게 이름 붙여지고, 자신들을 규정하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남한 사회가 탈북자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들의 경험을 어떻게 듣고 해석해야 할지 진지하게 논의해본 적 또한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들은 남한 사회 발을 딛는 순간 이미 ‘정치화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들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한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딱지가 붙여지는 것이다. 탈북자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인 시선은 그들이 증언하는 경험과 정보들을 듣는 사람에 의해 왜곡되게 만드는 소지가 있고, 실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해결 방법을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간담회에서는 지금껏 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통해 탈북자 문제에 대해 접근을 다시 하고, 실천방안을 찾는 데 그 의의를 두고, 내용을 제시하고자 했다. 조이여울: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WAW) 활동을 통해서였다. 9.11 직후 만들어진 단체인데, 미국이 아프간을 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WAW 내에선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들이 생겨났고, 탈북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고자 했다. 10여명의 탈북여성들에게 북한에서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일다에서도 탈북여성의 인권실태에 대한 기사를 보도해왔는데, 한국의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불리는 쪽에선 탈북자의 증언을 기록한 ‘좋은벗들’의 자료조차 믿어주지 않았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다는 태도와 마주하게 됐다. 박정은: 특히 ‘좋은벗들’이 조사 발표했던 1990년 중반 당시 식량난으로 인해 발생한 아사자 수가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그것은 해외 북 인권 연구자들과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된 부분이기 때문에 진보진영만의 문제제기로 보기 어렵다. 지난해 참여연대와 인권운동사랑방, 좋은벗들, 평화네트워크가 북 인권에 관한 논의 틀을 구성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시도들이 분명 서로에게 학습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2년간의 변화라면, 많은 인권, 평화단체 활동가들의 논의가 “북한인권문제 있다 없다 얘기 더 이상 하지 말고, 실질적 개선을 위한 접근방안을 얘기하자” 쪽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남남갈등은 완화시키고 실질적인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활동가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2년간 변화라면 변화이다. 탈북자 증언의 신뢰성 조이여울: 탈북자의 증언이 현재 남북교류를 통해 만나는 북한사람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보다 훨씬 신뢰성이 있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논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WAW에서 북한여성들과 만났을 때 우리가 던진 질문은 어떤 정치적 입장이나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들이었다. 몇 시에 일어나 무엇을 하는지, 학교 생활은 어땠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연애는 어떻게 했는지, 부모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그런 것들을 물어봤다. 만나본 사람들은 본인이 원치 않았는데 남편 때문에 거의 끌려 나와서 북한을 그리워하는 이도 있었고, 김정일 타도를 외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를 떠나 탈북여성들에게 일상의 얘기들을 듣다 보면 공통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북한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 수 있다. 내가 그리는 밑그림과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사람이 그리는 밑그림이 비슷하다면 그것은 신뢰성 있는 이야기라는 증거다. 이혜영: 탈북자들의 증언의 신뢰도에 대한 지나친 의심이나 부정은 근거도 없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증언이 사용될 때, 결코 한 두 사람의 증언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거나 아무런 검증 절차나 원칙 없이 진행되지 않는다. 많은 증언들을 접하면서, 어떤 내용은 과장된 것인지, 그럴 듯 하지 않은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한 말인지, 구분을 하고 걸러낼 수 있는 기준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탈북자들의 증언들은 주요 국제 인권 단체들, 유엔 내 전문가들에 의해 꾸준히 기록되고 비교, 분석되고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이 가진 동의할 만한 ‘일관성’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아 살해, 강제 낙태, 공개 처형 등 일부에서는 언급조차 꺼리는 문제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끔찍한 인권 유린에 대한 보고와 관련해서는, 그것의 사실 여부를 밝혀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북한 측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특정 조처가 내려지게 하는 데 문제제기가 도움이 된다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검증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어떻게 해석해낼 건가 김요한: 오랫동안 북한의 식량난을 지켜보았고 북한을 떠난 사람들을 만나왔다. 인민(People)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비정치적으로 접근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해석해내야 하는지의 문제다. 북한 인민의 목소리가 한반도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진행자: 1997년 이후 많은 수의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로 유입되었다. 우리에게 탈북자들은 누구이고, 남한 사회에서는 탈북자들은 어떠한 존재이고 역할을 하는지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간 우리는 각자 정치적 입장에 따라 탈북자의 존재를 규정지어 오지 않았나. 김요한: 남남갈등은 통일의 과정 상에서 생기는 당연한 문제다. 북을 떠난 사람이 남쪽에 정착하는 숫자가 많아지고, 남북교류가 더욱 확대되면 될수록 앞으로 더 확산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통일의 다른 단계, 좀더 객관화된 단계로 진입했다고 생각한다. 전엔 우리에겐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가끔씩 남쪽에 와서 만세를 불러주는 북한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100% 정치적인 이유에서 정치권력이 만들어낸 쇼였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식량을 통한 남한인민과 북한정부의 직접적 교류, 남북 정부간의 교류, 남한인민과 탈북자들간의 교류와 탈북자들의 남한정착은 그 동안 남쪽사회의 어둠의 영역으로 남았던 부분들이 벗겨지고 북한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의 유통을 가져왔다. 이는 추측의 수준 혹은 허상의 수준에 머물렀던 정보들이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 1980년대 이전에는 남한권력과 북한권력의 목소리만 있었다면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남한민중 즉 남한인민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인민 목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1990년 북한식량난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북한인민의 목소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그들의 극도의 폐쇄된 사회에서의 경험이 우리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주관적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작은 수 이지만 자기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남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지만 아주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한반도 내에서 숨은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이들의 목소리를 해석해내는 해석자들의 역할이다. 해석자들은 이들 4개의 주체가 극렬한 폭력적 충돌 없이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지식과 실천의 기반들을 제안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주민 모두 인권교육 필요 김은강: 1980년대, 1990년대까지는 탈북자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탈북자 이용한 극우단체들의 목소리였고, 극우단체에 의해 극단적인 주관화가 진행되었다. 지금은 탈북자들의 목소리가 달라졌고, 탈북자들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이는 북 체제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북에 대한 애환을 가지고 있는 이도 있다.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7천명이지만, 이제는 북한 주민의 목소리를 수집할 수 있는 샘플화된 단계로 진입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혜영: 북한과 남한 사회의 차이를 인정하고,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 사람 모두가 인권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한국에 입국한 탈북여성들에게 세계인권선언문을 사용해서 간단한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탈북자들이 인권에 대해 무엇을 알겠느냐’는 반응을 보였고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서방 중심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봤다. 두 분 다 탈북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탈북자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주변화되고 매몰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부터가 제대로 인권 교육을 받고 탈북자들을 포함한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북한인권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국경너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