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 뒤로하는 여성단체, 왜?

‘난자윤리’문제 가장 늦게 입장 표명해 빈축

윤정은 | 기사입력 2006/01/10 [02:52]

여성인권 뒤로하는 여성단체, 왜?

‘난자윤리’문제 가장 늦게 입장 표명해 빈축

윤정은 | 입력 : 2006/01/10 [02:52]
지난 4일, 모 인터넷 매체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화 걸려온 시점을 보아 이 기자는 당일 여성단체들이 황우석 교수팀 난자 관련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다녀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기사작성을 끝마친 뒤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었던가 보다. 전화를 걸어 “난자 관련해서 여성단체들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다. 기자들이 의아하게 느낄 정도로 ‘황우석 사태’에서 여성단체들의 대응은 뒷북 중 뒷북이었다. “뒤늦은 감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또 대답했다.

“여성단체들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순 없습니다. 여성단체들을 가려서 얘기할 필요가 있죠. 한국여성민우회 경우에는 이미 5년 전부터 여성의 몸과 관련해 ‘생명공학과 여성의 인권’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의 논리와 자료가 축적되어 있었고, 또한 2000년부터 이 사안을 가지고 활동을 해온 걸로 압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단체들은 왜 이렇게 큰 이슈에 대해 그 동안 침묵하고 있었는지 기자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은 나 또한 하고 싶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미즈메디 노성일원장의 ‘난자매매’ 사실 시인 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채취 과정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들은 잠자코 있었다. 물론 여성, 환경, 시민, 사회단체 연대체인 ‘생명공학감시연대’에서 입장표명이 있긴 했다. 그러나 난자윤리와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제기되진 않았다. 문제는 ‘소극적이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황 교수팀의 난자채취 과정과 윤리 문제를 방영했던 MBC가 곤혹을 치르고, 연구에 대한 치열한 진위 공방 와중에 있을 때, 심지어 모 여성단체는 ‘생명공학감시연대’에서 이름을 빼줄 것을 요청했었다. 이슈에 대해 단순히 뒤늦게 대응한 ‘시간차’ 문제도, ‘소극적인 처사’도 아니라는 말이다. 여성단체가 ‘여성인권’을 뒤로 하고, 뒷걸음쳤다는 것이다.

한 여성단체가 보여준 비겁한 처사라고 치부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왜냐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한 이 여성단체는 소위 ‘진보적 여성들의 연합체’를 표방하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여성인권’에 대한 상식 이하의 인식수준을 보았다. 그런데 스스로가 ‘남녀평등사회를 만들어가는 한국의 대표적 여성운동 단체’를 표방하고 있는 여성단체가 이 사안 앞에서 보여준 행동은 크나큰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해당 단체가 “우리 단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던 시기인 지난해 11월 말~12월 초는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과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던 소수 매체들의 기자와 단체활동가에겐 긴장감의 연속인 시절이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PD수첩의 난자출처 보도가 나간 후, MBC 한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서 <일다>로 전화를 해 “일다에서 기사화 한 ‘난자출처의 출처를 묻는 이유’(2005년 6월 14일자) 기사가 한국 매체로서는 가장 처음으로 제기된 것”이라며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초유의 MBC 광고중단 사태로 이어지면서, 이 프로그램은 제작되지 못했다.

인터뷰를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배아줄기세포연구에서 여성인권과 목소리는 사장될 위기로 느껴졌기 때문에 우려가 됐다. 거대한 ‘국익론’ 앞에서 한 방송국이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였고, ‘여성인권’이나 ‘난자 출처의 진실’을 묻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계란에 바위치기라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또한, 난자윤리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마치 ‘국익론’에 반하고, 난치병환자와 장애인 인권에 반하는 구도로 비쳐지는가 한편, 그간 공정하지 않은 보도를 해 온 언론들은 ‘난자기증 붐’까지 조장했다. 이런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고발하고 이성을 잃은 한국 사회를 향해 “난자 모으기 운동 문제 있다”까지 제동을 걸며 둘러보았지만, 여성계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때 생명의료기술 쪽으로 유일하게 여성 취재원이었던 한 연구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한국 사회”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목소리를 내야 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없음을 느꼈던지 이 연구자는 나에게 “여성단체들은 뭐 하는 거에요?”라는 질문을 했다. 대답은, 그 때 그 시점에서 “한국의 대표적 여성운동”을 내걸고 있는 단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대답해야 할 듯 하다. 최근에 “왜 여성단체가 침묵했느냐”고 <일다>에 전화를 걸어 물었던 기자는 기사의 부제로 “왜 중요한 시점에 침묵했는지 반성 있어야”라고 달았다.

당시 나 또한 취재를 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인데, 나에게 “왜”라고 묻길래 이렇게 대답했다. “왜인지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있긴 하지만, 여성단체들이 내부적으로 더 잘 알겠죠. 지난 2005년 한 해 여성단체들의 이슈를 생각해보세요. 걱정해야 할 건 황우석 사안뿐만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줄곧 여성단체들의 현 주소에 대해 질문을 받아온 기자로서, 나 또한 묻고 싶다. 여성단체들, 어디에 서있는가. 여성정치인들보다도 더 늦게 움직이는 여성단체가 누구의 눈치를 보며 있는 건지, 어느 줄에 설 지를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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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4/20 [18:16] 수정 | 삭제
  • 여성단체들도 이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서 제대로 문제인식이 덜된 것 아닌가요.
    문제라는 점은 아는데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 모르거나..
    줄기세포 없다고 밝혀졌으니까 개입하는 것 같구. 여성의 몸이나 건강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같습니다.
  • ....... 2006/03/22 [14:48] 수정 | 삭제
  • 여성단체들마저도 그랬군요.
    여성들에게서 불법으로 난자를 매매해서 실험했다는 거 알았을 때 정말 무서웠습니다. 여자들은 후유증도 많다고 하는데, 황우석과 노성일이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 아닌가요?
    아직도 황우석 노성일이 법원에서 판결을 안 받고 있다는게 이해할 수 없다는.

    그리고 아래 한혜규씨의 말에 동의할 수 없네요.
    사람들은 아직도 황우석 사건 얘기하면 줄기세포 얘기만 하는데, 줄기세포가 여성에게서 난자를 가져와서 실험한 것인데 황우석 사태에서 난자 문제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나요?

    지금도 난자 이용한 실험에 대해 사람들이 별로 관심도 없고, 여성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아요.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 한혜규 2006/03/08 [00:50] 수정 | 삭제
  • 이 문제에서 난자문제는 여성의 눈으로 보아야할 사안입니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 자체에서 난자 문제는 부분입니다. 지금 국익 논리에 진실이 묻혀버린 사건으로 보고 계신데, 그리고 황 지지자들을 애국주의자로 몰고 가는 것이 진보단체및 일다의 의견으로 보는데 이는 진보 세력들이 얼마나 대중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황우석 사건의 본질이 의사소통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피디수첩의 문제제기가 방식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후 보인 엠비씨의 편파왜곡은 정말 도를 넘어섰다고 봅니다. 진보세력들은 자신의 주장이전에 대중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중들 꼴통 아니거든요. 진보세력은 자신들이 대중을 선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태도야 말로 보수적 작태이지요.
  • 인경 2006/01/14 [15:28] 수정 | 삭제
  • 절망입니다.
  • 배정인 2006/01/11 [22:00] 수정 | 삭제
  • 난자 관련한 기사를 통해 일다를 처음 알았습니다.
    PD수첩도 일다에서 난자 윤리성 문제 다룬 것을 보고 MBC에서도 더 용기를 내어 첫 방송을 보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일다에 인터뷰 요청도 왔었군요?
    난자 문제가 묻혀버릴까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PD수첩 보도와 그 다음에 진실된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소수의 매체들 덕분에 다시 떠오르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일다와 몇 개 매체들은 확실히 인권성향이나 진실보도 면에서 다른 곳들하고 비교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판가름이 났다고 할까요? 결과적으로는 잘 된 것 같아요.
    여성계의 뒷북은 너무 뻔뻔스러운 광경이었는데 여기 저기 사진으로 보게되더군요. 쩝..
  • 램브란트 2006/01/11 [14:41] 수정 | 삭제
  • 이번에 여성계에서는 진짜 하나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성단체들이 많은데도 PD수첩 방송 후에도 가만히 있었다는게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난자 기증운동 재단이 생기고 그랬을 때 정말 답답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일다에서 기증운동 문제있다고 했을 때 그 기사 많이 퍼날랐었습니다.
    여성단체라고 해서 다 여성주의적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 독자 2006/01/10 [22:49] 수정 | 삭제
  • 걱정해야 할 건 황우석 사안뿐만 아니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군요.
    모 여성단체 정말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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