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 BASPIA의 경우 아시아 여성과 아동의 인권개선을 위한 방법론으로 ‘인권에 기반을 둔 개발’이라는 개념을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북한인권 문제에서는 어떤가?
이혜영(BASPIA 공동대표): 인권에 기반을 둔 개발(Human rights-based approach to development)의 방식은 가난의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아시아 지역의 경우, 이 방식이 특히 유효하다. 어쩌면 북한은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에, 인권이라는 부분이 잘 쓰여야 한다고 본다. 인권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발 논의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5~6년 동안, UNDP나 개발 단체들에서는 ‘인권과 개발의 결합’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해오고 있다. 개발 원조가 원칙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데 인권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논의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그 동안 북한인권 개선운동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북한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인도적 지원단체들과 인권을 논하는 단체들이 만나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데, 전혀 접촉이나 정보교류가 없었다. 양 진영 사이에 깊은 골이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단체들 중에는 탈북자나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조차 껄끄러워 하는 것을 봤다. 북한 내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들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언급하거나 아예 그 문제 자체의 심각성을 부인하기까지 한다. 물론 인권단체들도 접근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통한 수치주기(naming and shaming) 방식에서 좀더 건설적이고 설득력 있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발지원단체들의 경우, 단지 북한에 대한 접근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 만족하지 말고, 자신들의 프로젝트들을 정직하게 평가할 수 있는 원칙과 내부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때, 바로 ‘인권에 기반을 둔 개발’ 혹은 인권과 개발의 결합이 필요한 것이다. 작년부터 북한 측은 ‘긴급구호 아니라 개발협력 원한다’고 말하면서,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해온 외국단체들을 추방하고 있다. 그 동안의 인도적 지원활동이 무엇을 남겼으며,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자문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국내 대표적 대북 지원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도 최근 이 ‘개발협력 쪽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의가 있을 수는 없지만, 과연 ‘개발’을 어떤 의미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나 합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러한 논의 없이 막연히 ‘개발’이라는 목표만을 좇다가는 인권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의 경험 역시 무척 다양하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고,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다 온 사람들도 있다. 그 동안 시민적, 정치적 권리 침해에 대한 증언과 자료가 쌓이고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경제, 사회적 권리에 관한 정보를 체계화 하기 위한 모니터링이 이루어져야 한다. 식량난 이후 특히 여성과 아동들의 생존 여건이 어려워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식량문제뿐 아니라 보건과 의료, 교육 등 사회, 경제 분야에서도 극심한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접근 가능한 모든 자료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UNDP에서는 매년 각국의 개발 상황을 진단하고 특히 경제적, 사회적 권리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2005년 최근 보고서에서 177개국에 대한 상세한 지표들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도 북한은 제외되어 있을 정도로 정보가 없는 현실이다. 시민, 정치적 권리에 비해 사회, 경제적 권리는 점진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영역인 만큼, 현실 파악과 개선 노력의 절실함이 결코 덜하지 않다. 이 때, 개발과 인권이 보다 쉽게 결합될 수 있는 부분이 여성과 아동이라고 생각한다. 박정은(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대북 지원단체 역시 북한의 사회경제적 권리 부분에 대한 자료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인권기구에서 나오는 북한 주민들의 사회, 경제적 권리 현황 보고서를 보면 이들도 역시 정보접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대부분 탈북자들 증언에 기초한 보고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민단체간 논의에서 ‘좋은벗들’이 보건, 의료, 교육 부분에 관한 현황을 정리한 적이 있는데,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사회시스템을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부 단체에서는 북한의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같은 사회시스템이 생산성 위기와 사회통제로 인해 유지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인 영농의 확대’와 ‘집단농장제 개혁’, ‘지역간 이동을 제약하는 통행증명서 제도의 폐지’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듯 구체적으로 북한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제안이 그 자체로 타당한지, 실효성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북핵 등 북미갈등이 첨예한 정세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북한 내 차별, 인권문제에 개입 조이여울(일다 편집장): ‘이동의 허가’는 체제 문제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이므로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더 이상 사람들을 먹고 살리지 못하는 집단농장제를 개혁하고 장마당을 개방하라는 주장은 기본적인 생존권에 해당한다. 이것을 자본주의의 단초라고 보려는 시각들도 있겠지만, 거대한 체제변화는 아니다. 배급제시스템 사회에서 배급이 끊겼다면, 주민들이 이동을 해서 물물교환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서도 부보상이 있었고,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품앗이와 같은 형태를 발전시킨 사회주의적 방법론이 도입되기도 한다. 인도주의적 지원, 개발협조가 북한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것이라면 북한 자체 내에서 해결하기 위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방식을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박정은: 요구를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주체가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다. 우리가 볼 때 생존권적 요구이지만,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거대한 체제 전환 요구의 시발점으로 인식될 수 있다. 북한의 헌법을 보면 이동의 허가를 포함해서 다양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가 북 인권문제를 접근할 때, 우리의 환경과 조건에 근거하여 당위적으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북한 법체계 중에서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조항들을 개선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실효성 있다고 생각한다. 이혜영: 북한 사회의 차별의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원조와 개발 모두 취약한 계층을 우선적인 지원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치 체제나 정권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더라도, 그러한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는 진실을 아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배분의 문제가 중요하고, 이에 대한 모니터링이 되어야 한다. 조이여울: 식량지원을 위해 북한에 몇 차례 들어가 본 적이 있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식량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주민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직접 현장을 들어갔을 때 알 수 있는 북한 사회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실태에 대한 유무언의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박정은: 대북지원에 대한 모니터링이 쟁점이 되고 있는데, 국제기구의 입장은 어떤가. 많은 북한 인권단체들은 북한에 지원되는 물품들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고 있다며 전면적인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계획기구 등 국제기구는 예전보다 모니터링이 잘되고 있으며, 배분도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밝힌 적도 있다. 김은강(한반도화해센터 대외협력국장): 모니터링은 현 시기로선 어려울 것이다. 북한 쪽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북한에서 쫓아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단체들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나와 준다면 좋을 것이지만. 이혜영: 이제부터라도 행위자들이 반성과 더불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지원과 개발을 추진하되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것을 의도적으로 프로젝트의 목표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인권단체들과 개발지원단체들이 서로 협력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이미 유엔 산하 기구들이나 월드뱅크와 같은 금융/개발 기구들에서 그러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남북 이해, 소통할 시간 창조할 것인가? 박정은: 대북지원 단체 등 북한 사회를 직접 접하는 단체와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 사이에 역할분담이 필요한 것 같다. 북 인권에 대한 인식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와 경협이 활성화되면서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 대북 경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다. 지금 개성공단을 포함해서 남한 기업의 진출과 관련해서 언제나 강조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싼 노동력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차별, 소외, 편견은 모두 인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향후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사전에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과 인식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책을 내놓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북한이 이러한 시도들에 반응하느냐 일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인권대화를 제안할 경우 과연 북한이 이에 응하겠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우선 북한이 유엔인권위를 포함하여 국제사회 ‘인권유린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한국 시민사회단체들도 북 인권에 대한 비정치적인 평화적 접근 방안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북한의 호응을 요구해야 한다. 여성단체들이 남북여성교류를 하면서 느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이 대안일 수 밖에 없듯이 북한이 어느 정도 호응하느냐에 관계없이 꾸준히 북한과의 접촉면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본다. 김은강: 북한인권을 위한 시민사회적 접근에서 국내적 접근과 국제적 접근에 대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내적 접근은 한반도 전 지역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구체적인 북한인권 변화작업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가장 먼저 남쪽에서는 탈북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시민사회단체는 남쪽에 정착한 북한 사람들을 초청하거나 혹은 각종 모임들을 통해 그들과 교제하는 공간을 넓히면 좋겠다. 한국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시민사회가 남쪽사회의 경험을 통해 주관화 되어 있듯이 북한사람들도 북한사회의 경험을 통해 주관화 되어 있으므로 각자 서로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설득해내는 합리적 정보유통이 일차적 접근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둘째, 재중탈북자 문제 등 확연한 인권침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사례별로 구체적인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 또 더불어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한국뿐 아니라 국제시민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북한내부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대규모의 개발이나 원조를 실시할 경우 북한내부의 인권개선과 연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인권개선 자체가 북한이 대외적으로 교류할 때만이 아니라 대내적으로 북한정부를 안정시키는데 이롭다는 것을 설득시킬 필요가 있을 듯하다. 다음으로 북한인권을 위한 시민사회적 접근에서 무엇보다 객관적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관점은 세계의 시민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도덕률에 기반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인권개념은 한 국가나 한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개념을 근간으로 하는 개념이고, 합리적 개념이다. 그것이 강대국들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것과 무관하게 인권은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 존중되어야 할 가치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 사람들이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주장되어야 한다. 또한 남한 시민사회가 북한인권 문제에 있어서 국내외적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해내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인류보편적 가치에 의한 도덕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의 한반도에 대한 무리한 요구에 대응하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북 인민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 시민사회가 한반도에서 가장 약자인 북한인민의 고통에 정직하게 직면하였을 때만 그 시간은 창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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