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을 때 ‘탈학교’했습니다. 탈학교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탈학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여겨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연년생인 친동생이 자퇴를 하고 싶다고 지나가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냥 흘려 들을 수도 있었을 것을, 그 때부터 탈학교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다른 학생들과 그다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묵묵히 지내왔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그런 저를 ‘모범생’쯤으로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가만히 앉아있고 수업시간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학생을 모범생으로 여기나 봅니다. 하지만 그런 ‘모범생’의 마음 속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조용히 앉아서 마음 속으론 ‘교사의 강의가 왜 이렇게 따분할까’, ‘교사는 왜 학생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등의 의문을 가지거나, ‘피곤하니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던 저에게 ‘탈학교’라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후로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고등학교를 계속 다니기보다 탈학교해서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에선 대학을 가기 위한 목적 외엔 의미 없는 지식들만을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입시학원처럼 되어버린 학교에선 별다른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한 저로서는 떠나는 것에 대해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탈학교한 지금, 학교에 남아 학교에 산적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수의 멋진 학생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가 도피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빠져 나왔을 뿐 저항할 용기가 없었거든요. 요즘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다 봅니다. 책 속에서 알지 못했던 것을 찾고 필자와 공감할 때마다 큰 즐거움이 뒤따릅니다. 어느 한 주제에 관해서도 필자마다 의견이 제각각 다르므로 그것들을 서로 비교해가며 읽으면 재미있더군요. 그러는 과정에서 나의 가치관도 (아직은 희미하지만) 점점 뚜렷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져봐.’ 라고 조언해 준다면 나는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을 읽어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한다면 의견을 듣고 깊이 생각해 볼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선 이런 일이 교사와 학생 간, 혹은 학생과 학생 간에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19살이다 보니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대학입시 대비교재를 사서 풀고 있습니다. 요즘은 입시 공부도 최대한 즐겁게 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수학공부를 할 때에는 수학의 역사나 수학자들에 관한 책을 찾아 읽음으로써 수학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비로소 수학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학습방법에는 시간이란 제약이 따릅니다. 단기간의 성적향상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지요. 검정고시와 수능을 목전에 두고서 이런 방법을 써도 되는지 갈등이 됩니다. 저는 ‘동기부여’란 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공부를 할 때 동기부여가 이루어진다면 학생은 배우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성’에 의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동기부여의 여부가 학습자의 주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기부여의 정도는 학습자마다 가치관, 성격,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 개성을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합니다. 더군다나 동기부여 한다는 게 고작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라는 말뿐입니다. 그러한 교육에 많은 부작용이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떤 탈학교생은 나에게 탈학교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탈학교한 후에 뚜렷한 목적을 세우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탈학교를 하면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 문제부터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결정할 것들이 많은데, 특정한 목표의식이 없으면 방황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 탈학교하는 것이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탈학교생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아직 너무 차갑습니다. 누군가 ‘어느 학교 다니세요?’ 혹은 ‘몇 학년이세요?’ 라고 물으면, ‘탈학교했어요. 나이는 19살이에요.’ 라고 대답하는데, 그 대답을 들으면 상대방은 으레 당황해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나온 이유를 묻지도 않고 손쉽게 저에 대해 판단하지요. 상대방이 ‘그렇게 안 보이는데…’ 라고 말하면 피식 웃게 됩니다. 이렇게 탈학교를 하게 되면 걸림돌이 많지만, 저의 경우엔 오히려 좀 더 일찍 탈학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학교가 더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걸림돌을 치워내거나 해결해내려고 하지 않고 피해갔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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