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며든 ‘반공주의’ 위력

1980년생의 독재의 기억-2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6/01/30 [22:50]

일상에 스며든 ‘반공주의’ 위력

1980년생의 독재의 기억-2

김윤은미 | 입력 : 2006/01/30 [22:50]
<우리는 아픈 현대사에서 ‘반공’과 ‘경제성장’의 기치아래 군부독재정치가 자행됐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독재’가 남긴 유산이 과거의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이며, 국가권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문화 속에 스며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밀려, ‘독재’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뿌리깊게 자리하지 못했다.
 
<일다>는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독재’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독재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독재란 과연 무엇이며 현재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개인의 일상을 통해 조명해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주>
 
1988년에 제작된 일본애니메이션 <아키라>. 이 영화는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인 1991년 서울 뉴코아 극장에서 상영되어 해방 이후 최초로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일본영화 1호가 됐다. 수입사 측에서 홍콩영화라고 속이고, 제목을 <폭풍소년>이라고 고쳤기 때문에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제목만 고쳐서 될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키라>에는 좌익지하조직에 가담해 있던 주인공의 친구가 무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도시 한복판에 폭탄을 터뜨리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일본의 적군파 운동에서 따온 것이리라. 그런데 한국판 <폭풍소년>에서 ‘좌익지하조직’은 ‘환경주의자’로 번역됐다. ‘좌익지하조직’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알려져선 안 됐기 때문이다.

반공독후감용 도서목록

독재정권시절, 반공주의는 그야말로 일상화된 이념이자 사상이었다. 반공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키라>의 번역처럼 외국작품을 엉뚱하게 검열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았다. 예컨대 반스탈린주의자이자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은 국내에서 반공소설로 소개됐다.

<동물농장>에서는 돼지 나폴레옹이 농장을 지배하며 전체주의적 권력을 휘두르는데, 조지 오웰은 돼지의 독재를 통해 스탈린 정권을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했다. 그런데 반스탈린주의라는 이유만으로 조지 오웰은 졸지에 반공주의자로 알려졌다. <동물농장>은 반공독후감용 도서목록에 올라 있었다.

심지어 1980년대 후반에는 <동물농장Ⅱ>라는 어린이용 도서도 나왔다. 저자 서문에는 오웰의 <동물농장>이 소련 이야기만 다루고 있어 아쉬우므로, 북한 이야기를 다루는 2편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동물농장Ⅱ>에서는 개들(일본)이 동물을 학대하는데, 사자(미군)가 동물들을 구해주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돼지들(북한)이 정권을 잡고 동물들을 괴롭힌다. ‘돼지=북한=김일성’의 등식은 1980년대 어린이 애니매이션의 대표작이었던 <똘이장군>(1978년)에도 나온다. 똘이장군이 독재자 김일성을 태권도로 걷어차면, 김일성은 돼지로 변한다.

이런 책이 존재했다는 자체도 기가 막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 책들이 학교의 권장도서였다는 사실이다. 국민학교에는 매년 반공독후감대회, 반공글짓기대회, 반공포스터대회, 반공웅변대회 등등 수많은 반공행사들이 열렸다. 노골적인 반공서적들이 교과서는 아니었지만, 방학숙제로 처리되는 등 간접적인 학교교재로 봐도 무방했다. 물론 도덕교과서도 반공주의를 담고 있었다. 이처럼 반공주의는 교육과 문화를 통해 ‘세뇌’ 수준으로 학습됐다.

반공주의 논리는 간단하다. ‘공산당=북한=악=빈곤한 나라’인 반면, ‘반공=친미=선진국’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며 공산군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승복의 사연은 공산군의 악행을 대표하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했다. 이승복 이야기는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제목의, 해방 이후 문학계의 거장 김동리의 추천까지 받은 버젓한 도서로 널리 전파됐다. 이승복의 이야기는 소규모 인형극으로 제작되어 동네에서 공연되기도 했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탈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또한 반공주의 교육으로 흡수됐다. 1987년 김만철씨 일가가 한국으로 왔을 때, 막내아들 김광호가 쓴 일기는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힌다는 이유로 역시 반공독후감용 도서목록 1순위에 올랐다.

평범한 사람들의 ‘레드 콤플렉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와 외국에서 북한사람들을 실제로 접한 사례들이 국내에 소개됐다. 당시엔 북한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달린 줄 알았는데 실제 만나보니 아니었다는 둥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많이 나왔다. 아마도 이 시기부터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짐과 동시에 반공주의의 물질적인 기반 역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리라.

2000년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이 때를 분기점으로 하여 위로부터 주입되는 반공주의는 눈에 띄게 약화됐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사회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이제 북한과 중국은 서서히 하나의 시장쯤으로 여겨지게 됐다. 이 같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반공대회들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교과서는 상당부분 수정됐다.

그러나 기반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반공주의는 현재까지도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빨갱이’라는 말은 정치권에서나, 대중들 사이에서나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며, 실질적인 안전이나 안보보다는 반공주의에 가까운 국가보안법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반공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반공주의가 하루아침에 뿌리 뽑힐 리 없을 것이다.

작년 7월 임수경씨는 필리핀에서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임씨는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북한을 방문한 바 있으며 통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아들을 잃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떴을 때, ‘이 정신 나간 년의 아들이 하나 밖에 없나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등 무고한 이의 죽음에 대해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인 악플들이 난무했다. 최근 검찰은 악플을 단 사람들 중 14명에게 모욕죄를 적용해 벌금을 물게 했는데, 악플을 단 이들은 주로 30~50대의 평범한 중장년층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평범함’에 숨겨진 이 뿌리깊은 ‘레드 콤플렉스’는 대체 언제쯤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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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공웅변대회 1등 2006/02/03 [18:58] 수정 | 삭제
  • 이승복 사건이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지금 생각해보면 공산당이고 자유당이고를 떠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 사상(??)을 위해서 죽음을 택했다는것이.. 참.. 끔찍한 일이 아닌가요??
  • 음.. 2006/02/03 [16:52] 수정 | 삭제
  • 이승복 동상은 이제 그만 철거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군요.
  • poor 2006/01/31 [14:34] 수정 | 삭제
  • 검열되는 거 엄청 많았죠.

    사회주의나 반항세력 같은 얘기는 한국에선 못할 소리에 해당했으니까요.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들은 영화며 애니메이션이며 음반이며 할 것 없이 빨간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음 가차없이 잘려나가거나 아예 금지가 돼서, 그저 영화가 보고 싶을 뿐이고 음악이 듣고 싶을 뿐인 나같은 사람들을 황망하게 했죠.
  • 거북이 2006/01/31 [05:58] 수정 | 삭제
  • 아키라가 홍콩영화라고 속여서 들어왔군요?
    어떻게 당시에 개봉을 했을까 싶었는데.
  • 체리 2006/01/31 [02:32] 수정 | 삭제
  • 국민학교에는 이승복 동상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동상들이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다.
    정말 공산당이 싫다고 해서 죽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구국의 영웅인 것처럼 이승복에 대해서 배워야했던 거 지금 생각해보면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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