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운동 폄하하는 시각에 ‘제동’

민주노조운동의 재평가 <여공1970>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6/01/31 [01:12]

여성노동운동 폄하하는 시각에 ‘제동’

민주노조운동의 재평가 <여공1970>

김윤은미 | 입력 : 2006/01/31 [01:12]
현 세대는 지나간 세대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1970년대는 흔히 박정희 정권 하에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이루어지는 한편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이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본격적인 노조활동에 눈을 뜬 시대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로 1970년대라는 시대를 정리할 수는 없다. 적어도 <여공1970>의 지은이의 시각에 따르자면 역사는 연속적이고 인과관계가 뚜렷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 아니라, 특정 사건을 둘러싸고 모순적인 여러 담론들과 전략들이 상충하는 공간이다.

여성들의 노동운동은 감정적?

<여공1970>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담론들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지은이가 보기에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지배적 담론에는 여성노동자를 적극적인 노동운동 행위자로 간주하지 않으며,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균열과 모순을 은폐하려는 특정한 사유방식이 존재한다.

예컨대 1980년대 노동운동연구에서는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린 경공업 중심의 여성들이 주도했으므로 어딘가 결핍된 데다, 노동자문화가 없으므로 노동운동의 질적 발전을 저해하는 운동이었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나왔다. 이처럼 여성 주도의 노동운동을 폄하하는 한편, 여성들의 운동이 ‘한’이라는 한국적인 정서가 서린,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것이었다는 성차별적이고 민족주의적 시각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은이는 기존의 분석틀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푸코의 ‘익명적 지식’ 개념을 끌어들인다. ‘익명적 지식’이란 충분히 가공되지 않은 지식, 기존 과학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보통사람들의 지식’을 의미한다. <여공1970>에서는 기존 노동운동 연구뿐 아니라 인터뷰, 신경숙의 <외딴 방>과 같은 자전적인 소설, 신문기사, 공장규율과 같은 다양한 자료들이 사용된다. 또한 역사 속에서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경험을 구현하는 ‘미시사’를 지향하여, 당대 여성노동자들의 관점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서 세상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지은이가 이 책 전반에서 펼쳐내는 논지는 여성노동자들을 노조발전에 저해되는 존재로 이해하거나 ‘순수하고 헌신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모두 역사적 가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에는 단선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았다. 예컨대 도시산업선교회가 1970년대 여성노동자의 의식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며 그 중요성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과 여성노동자들 사이에도 갈등의 요소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체투쟁과 똥물사건으로 유명한 동일방직의 경우, 그 과정에서 문명순이라는 노조활동가를 ‘어용’으로 몰아간 사건이 숨겨져 있었다. 전태일이 있었던 청계피복노조의 경우는 대학생들의 관심이 열렬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경우였으나, 지금은 1970년대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노조로 꼽히고 있다.

민주노조를 만든 ‘노동자문화’

1970년대 여성노조에 대해 언급할 때 빠져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여성노동자에 대해 남성노동자의 폭력과 성차별이 가해졌다는 점이다. 당시 여성노동은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보호되고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됐다. 국가는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를 끌어들여 가족 내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속하는 여성에 대한 착취를 ‘효’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했다.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을 ‘민족을 구한 영웅’으로 부르는 한편, ‘복지’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

심지어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주도한 ‘새마음운동’에서 여성노동자들은 ‘효녀’로 불려졌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래서 남성노동자들은 가족 안에서 그러하듯, 여성노동자들을 쉽게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통제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여성노동자들은 어떻게 민주노조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여성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문화가 존재하기 어려웠다는 시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여성노동자들은 고용주와 자본의 지배적 담론에 공조 혹은 규율화되어 일상을 재생산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욕망과 익명적 지식을 통해 일상에서 저항을 지속”했다.

지은이는 여성노동자들의 문화를 ‘자매애’로 재해석한다. 여성노동자들이 기거하는 공장기숙사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의 외박을 통제하는 등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도록 요구했다. 이에 반해 여성노동자들은 여러 계모임과 기숙사 자치회를 통해 일상적인 투쟁과 협상을 전개했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은 소모임 활동을 통해 ‘여성노동자’로서 자신을 긍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교육에 대한 욕구를 풀었다. 이런 활동들은 민주노조를 만드는 기반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여성노동자’로 정체화하기를 꺼렸다. 이들은 대체로 빈농, 빈민의 딸이었기에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족주의 담론과 ‘여성적이지 못하다’는 남성중심적 담론에 얽매여 자신에 대한 검열과 열등감이 심했다. ‘여공=교양 없음=여성답지 못함’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모임은 한편으로는 여성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리인 동시에, 신분상승과 소시민을 지향하는 의식, 가족에 대한 집착이 공존하는 갈등적인 공간이었다.

이처럼 <여공1970>은 다양한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1970년대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지배적 담론과 노동운동 내의 담론, 그리고 이 주류담론들을 해체시키는 ‘익명의 지식’들을 활용해 1970년대 노동운동의 풍경을 다채롭고 정밀하게 그려낸다. 특정 시기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대신 일상의 다양하고 모순적인 결들을 살려내려고 애쓴다. 책 사이사이 삽입된 1970년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이 시기를 보다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나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나, 이 책을 통해 1970년대를 새롭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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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수 2006/02/01 [03:22] 수정 | 삭제
  • '생산직 여성노동자' 정체성, 문화, 정치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이
    더 풍부하게 나왔으면 좋겠군요.
    '지나치게 담론/연구의 '단위'로 삼는다거나 하는 건 또다른 폭력이아닐까..'
    떄문에, 가끔 여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위험하다는
    염려가 드는 한 편, 이런 시각이라면 출구가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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