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에 모성신화까지

언론이 조장한 ‘워드 신드롬’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2/14 [03:50]

아메리칸 드림에 모성신화까지

언론이 조장한 ‘워드 신드롬’

박희정 | 입력 : 2006/02/14 [03:50]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의 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의 슈퍼볼 MVP수상 후, 국내 언론들은 하인스 워드 신드롬을 만들어내기에 몰두하고 있다. ‘언론들이 황우석 교수의 대타를 찾은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그 수위를 넘어선 언론들의 보도행태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의 대상이 된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 또한 한국 사회의 이런 들뜬 분위기가 영 못마땅했는지 최근 기자들을 향해 일갈을 가했다. 12일(현지시간), 김영희씨는 한국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사람들이 흑인이나 혼혈이라면 언제 사람 대접이나 해줬는가”라고 반문하며 “어렵게 혼자 살 때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냉소했다. 그러나 중앙, 조선을 비롯한 많은 국내언론들은 이 발언을 빼고 감격적인 모자상봉의 모습만 보도했다.

‘한국의 혼’으로 달린 하인스 워드?

연합뉴스는 2월 13일자 기자수첩 <어머니도 말리지 못한 워드의 韓人기질>을 통해 하인스 워드의 ‘한국인적 면모’를 보여주려고 했다. 기사는 “미국 프로풋볼 슈퍼볼의 MVP 하인스 워드는 스스로를 ‘반 한국인, 반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고 했다”고 쓰고 있다. 아프리카 계 미국인, 즉 미국 내 흑인을 지칭하는 “African American”을 ‘반(半)한국인, 반(半)미국인’으로 번역한 것에서부터 워드를 어떻게든 한국과 연결 짓고 싶어하는 기사의 의도가 드러난다.

기사는 이어 “워드에게 어머니가 가르치지도 않았던 한국인 기질이 배어 있다”고 말한다. 기사에서 밝히는 한국인 기질이라는 것은 ‘정’, 그리고 ‘은근과 끈기’. 그 근거로 워드가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퍼주기를 좋아했고, 학창시절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을 든다. 기자 스스로도 비약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런 ‘일편단심형 사랑’을 바로 한국인의 천성 때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그에겐 분명 미국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양적인, 어쩌면 한국적인 정서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인의 혼으로 뛰었다”(스포츠 서울 2월 7일자), “워드는 미국인과 다른 정이 있다”(중앙일보 2월 11자) 등 워드의 성공을 한국의 영광으로 연결 지으려는 기사들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부계혈통만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나라에서 어머니가 한국인인 워드에게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한국적인 기질 운운해가며 어떻게 해서든 워드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덧씌우고 싶어하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워드가 ‘미국의 스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슈퍼볼 MVP, 천문학적인 몸값, 2억짜리 자가용, 미 언론의 눈부신 관심, 부시대통령마저도 만나고 싶어한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인 것이다.

워드의 성공은 워드 개인에게 있어서 분명히 영광이고 축하해 줄만한 일이다. 그러나 신드롬으로 표현되는 과도한 열광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에 대한 감동’의 차원이 아닌 미국에서의 성공에 대한 사대주의적 추종을 담고 있기에 문제다. 워드 신드롬이 “혼혈”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말이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혈통주의 자체가 차별을 낳는 근원이며,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이를 부추기고 있는데, 어떻게 혈통주의와 사대주의에 근간한 워드 신드롬이 “혼혈”에 대한 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가.

한국적 가치, 한국 어머니의 승리?

언론들은 워드의 혈관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강조하고, 한국적인 기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인들만의 특별함이 워드의 성공을 길러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데까지 이른다.

경향신문 2월 12일자 ‘워드, 어머니, 한국 전통가치’라는 표제의 칼럼은 “이들의 성공신화는 역경을 뚫고 물질적으로만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 얘기가 아니”라며 “한국 어머니의 몸으로 실천한 자식교육 및 사랑이 아들의 효와 물질적 성취를 함께 이끌어낸 한국 전통가치의 승리”라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헌신, 기사 읽고 울었다"는 중앙일보 2월 8일자 기사는 아예 적극적으로 ‘희생하는 어머니 상’을 되살려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모자(母子)의 그 어려운 환경을 이기게 했다는 사실에 눈물겨웠다”는 40대 남성 네티즌의 발언을 인용하는가 하면, 또 “워드의 어머니는 자신보다 아이한테 투자한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 “한국 어머니는 자식을 통해 사회적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조건 없는 희생을 할 수 있다”는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의 말을 통해 “어머니의 미덕은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아동복지학과, 교육학과 교수의 말을 통해 어머니의 희생과 아들을 성공을 직접 연관시켜 강조하고 있다.

한국 언론들이 황우석 사태에 대해 ‘국익론’으로 이성을 잃고 금 모으기 수준으로 난자 모으기 열풍을 조장하는 등 ‘여성인권’에 반하는 보도를 한 게 엊그제더니, 오늘에 와서는 미국사회의 풋볼 스타인 워드를 통해 ‘한국인의 핏줄과 전통’을 운운하며 한국의 어머니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에게 뻔뻔스럽게 ‘희생과 미덕’을 강요하고 있다. 반성과 성찰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여전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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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루리 2006/02/20 [19:31] 수정 | 삭제
  • 워드군 사건으로 윗분들 말씀대로 우리나라 사대주의 정말 최고! 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 대단해요~
    그 전날에는 비가 미국에서 공연하는데 뉴욕타임즈가 대서특필했다고 1면 톱에 싣더니
    또 한국계라면 좋아가지고 어떻게 좀 띄워볼까 난리더군요
    미국에게 칭찬받기 위해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 2006/02/19 [15:45] 수정 | 삭제
  • “한국 어머니는 자식을 통해 사회적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조건 없는 희생을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어머니를(여자를) 부려먹어야 성에 차겠다는 거냐.
  • la 2006/02/17 [17:27] 수정 | 삭제
  • 내가 그 어머니라도 한국인들 반응이 화나고 한심해보일 것 같아요.
  • 송아지 2006/02/15 [16:20] 수정 | 삭제
  • 미국 풋볼 MVP에게서 한국적인 정서를 찾다 찾다, 영어도 오역하고, '혼'까지 들먹이는군요. ㅠㅠ
  • moon 2006/02/14 [19:51] 수정 | 삭제
  • 어머니는 아들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존재고,
    그래서 어머니가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언론들 이제 좀 꺼져줬으면.

    한국 어머니는 자식을 통해 사회적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조건 없는 희생을 할 수 있고, 그게 미덕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한 연구원의 말 진짜 깬다.
    대리만족도 문제고, 조건 없는 희생을 하는 것도 문제 아닌가?
  • 숙인 2006/02/14 [17:29] 수정 | 삭제
  • 다른 나라 시민권을 가진 미국계 사람이 노벨상을 탔다고 해서, 미국이 떠들썩해지지는 않겠죠. 한국사회의 이 열등감 가득한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저도 역시 지겹습니다.
  • 2006/02/14 [14:25] 수정 | 삭제
  • 황우석 신드롬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언론들은 너무 생각없는 저질적인 보도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워드의 어머니가 한 얘기가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거네요. 그런 말을 듣고도 기자들은 찔리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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