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임을 입증하라며 성관계 사진을 요구하는 등 군대 내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던 모 사병의 피해사례가 알려지고, 인권단체들이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18일 군은 해당 사병을 전역 조치했다. 이에 앞서 기자회견 전날인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단을 꾸려 해당 부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열악한 사병처우, 아우팅, 그리고 혐오범죄 그러나 피해 사병은 처음부터 전역을 원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상관과 선임병에 의해 ‘아우팅’(동성애자의 성 정체성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알려지는 것)을 당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사병들에 의한 폭력과 인권침해 때문에 더 이상 군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됐던 것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이경 활동가는 기자회견 이후 언론에서 보도된 기사내용들에 대해 “피해 사병의 전역 문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해당 사병이 처음 신병 교육대의 상관에게 불편을 토로했던 내용은 ‘비좁은 잠자리’나 ‘빠르게 샤워를 마쳐야 하는’ 등과 같은 전반적인 사병처우 및 복지문제였다고 한다. 또한 언론에서 앞다투어 보도한 내용인 ‘성관계 사진을 요구한 것’도 큰 문제였지만, 그보다 피해 사병의 동성애 정체성이 부대 내에서 공공연히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과, 이 때문에 차별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제 에이즈 검사, 성관계 사진 요구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이번 사건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피해 사병 모씨는 상관에게 찾아가 비공개로 동성애자로서 군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고, 다른 병사들도 그의 동성애 정체성을 알게 됐다. 이후 피해 사병은 본인의 동의도 없이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했고, 의무중대장으로부터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동성애자와의 성관계 사진이 필요하다는 요구까지 받았다. 피해 사병은 ‘아우팅’으로 인해 내무반 동료와 간부들에게 수시로 성적모욕을 비롯한 폭언을 견디어내야 했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는 휴가를 나온 후 지난 8일 한 동성애자단체에 메일로 상담을 요청했고, 10일 동인련 활동가와 상담을 한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긴급구제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피해 사병은 군대에서 받은 인권침해로 인해 수면장애, 자기비하감, 불안초조 등 심한 우울증 증상을 앓고 있으며, 이 때문에 향후 군 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정신과 진료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동인련 이경 활동가는 “군대에 있으면 단 1초도 내가 아닌 것 같다”는 피해 사병의 증언을 통해, 이번 사건에서 확인된 것과 같은 인권침해가 동성애자 사병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본인의 동의 없이 에이즈 검사를 받게 한 것은 ‘동성애는 에이즈’라는 잘못된 편견으로 인한 차별이며, 군 생활이 힘들어진 피해 사병에게 전역을 시켜준다면서 동성애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로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한 사진을 요구한 것 역시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이번 사건에서 군대 내 피해 사병에게 성관계 사진을 요구했던 것은 “성폭력”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이번 사건은 군대 내 성폭력과 같은 많은 문제들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사건에 대한 은폐 없이 해당 부대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동성간 성교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인 군형법 제92조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는 국방부령 제556호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군대 내에서 성적소수자들이 차별 받지 않도록 인권 교육 및 인권가이드라인을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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