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픈 현대사에서 ‘반공’과 ‘경제성장’의 기치아래 군부독재정치가 자행됐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독재’가 남긴 유산이 과거의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이며, 국가권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문화 속에 스며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밀려, ‘독재’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뿌리깊게 자리하지 못했다.
<일다>는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독재’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독재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독재란 과연 무엇이며 현재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개인의 일상을 통해 조명해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주> 세계적으로 독재정권이 국민들의 민주화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취하는 방법으로 ‘3S’ 정책을 편다고 이야기된다. 스포츠(sport), 영화(screen), 섹스(sex)다. 세계정치사를 배우다가 알게 된 것인데, 돌이켜보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대인 1980년대 5공화국 시절 한국이 그러했다. 그 중 영화와 섹스는 당시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던 ‘빨간 비디오’들과 전국적으로 자리잡은 성매매 산업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금도 동계올림픽이라고 해서 매달 수를 세고 있지만, 당시 국제적인 경기들 특히 그 어수선하던 시기에 개최된 88서울올림픽을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했다. 독재정권의 스포츠 육성은 국민들의 건강과는 관련이 없다는 데 그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스포츠는 그 기반이 전혀 조성되지 않았는데 엘리트 스포츠만 육성해서 아주 기형적인 현상들을 많이 드러냈다. 중학교 때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친구에게 그 부모님이 말리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공부는 중간쯤 해도 직장을 구하지만, 운동은 1등이 아니면 굶게 된단다.” 그것은 아이의 자질을 무력하게 만드는 얘기였을 수도 있고, 현실을 바로 직시한 얘기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운동선수가 되려는 아이들을 교실에서 보기란 출석을 확인할 때뿐이다. 다른 어떤 학습도,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도 여의치가 않다. 그렇게 운동만 하면 전문성 있는 자신의 길이 열리는가? 내 주위엔 국가대표로 뛰게 해주겠단 말만 믿고 학업 중단하고 합숙훈련까지 들어갔다가 결국 낙오하고, 남들 대입 시험 치르는 시기에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 친구가 있었다. 프로의 길이든 국가대표 아마추어 선수의 길이든 처음에 운동을 잘 하고, 좋아해서 들어섰다 하더라도 감내해야 하는 희생이 너무 크다. 그 희생은 운동량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창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워야 할 시기에 다른 사회와 단절되는 경험을 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각종 국제대회 등에 내보내기 위해 필요할 때만 쓰고, 아까운 젊음을 투자한 선수들의 미래는 전혀 책임져주지 않고 내팽개치는 일들도 많았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그리고 동계올림픽 시기에 당시 모든 방송사가 하루 종일 경기 중계를 했기 때문에, 자연히 평소엔 보지 않던 스포츠 방송을 많이 보게 됐다.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선수들은 메달을 따게 되면 어디서 누가 가져다 줬는지 태극기를 휘날리며 엉엉 목 놓아 울었다, 화면은 곧바로 그 선수들의 부모들을 비췄다. 그리고 경기 끝날 때마다 각국의 성적표를 잊지 않고 보여줬다. 엘리트 스포츠의 단면이다. 처음엔 TV 속 선수들이 울고 때로 이를 중계하는 사람들도 같이 우니까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감동마저 느꼈던 나도, 점차 외국선수들과 이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이성을 찾게 됐다. 외국선수들 중에 한국선수들만큼 경기장에서 난리 굿을 피우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몇 개 국가의 선수들은 경쟁을 하는 자리에서도 침착한 미소를 잊지 않으며, 아쉽게 졌을 때조차도 이긴 상대방에게 악수를 청하는 실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것은 민족성의 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각 국가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엔 스포츠 정신이란 것이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는 ‘국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사실 메달에 전 국민의 관심과 자신의 사활이 걸린 선수와, 아마추어 스포츠 정신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수가 어떻게 비슷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겠는가. 라면만 먹고 뛰었는데 1등을 했다는 임춘애 선수가 2년 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그에게 쏟아졌던 대단한 양의 비난을 떠올려보면 솔직히 국가대표 선수들은 멋지다기보단 안쓰러운 느낌을 줬다.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외국선수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별도의 ‘직업’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오래도록 공부를 하거나 수련을 해야 하는 전문직종의 사람들도 있었다. 직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국가대표 운동선수로 올림픽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운동을 잘 할 수 있다니? 아니, 저 사람들은 저렇게 뛰어나게 운동을 잘 하는데 왜 직업이 필요한 걸까?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었다. 당시엔 엘리트 스포츠니 생활스포츠니 이런 말도 잘 몰랐지만, 한국의 스포츠 정책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이라면 원래가 운동이 즐거워서 하는 것이고, 하다 보니 실력이 쌓이고, 아무리 경쟁을 한다 해도 그 즐거움까지 버려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수촌에 강제 입소시켜서 사육하듯이 고된 훈련을 시키고 운동 이외엔 어떤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와 사람들의 삶은 가까이 있지 않은데, 극소수의 엘리트 선수들을 짜내듯이 키워서 대회에 내보내고 거기서 얻은 성적이 ‘국가의 성적’이라며 스포츠 강국이라고 선전을 해대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라니,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점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다. 21세기 지금의 한국 스포츠는? 여전히 엘리트 스포츠다. 생활스포츠 쪽으로 방향을 돌린 흔적도 없고, 앞으로 그럴 계획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올림픽 등을 중계하는 방송들도 그 ‘광분’과 ‘청승’의 정도가 조금 수그러들었을 뿐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다. 게다가 월드컵 ‘광분’과 “대~한민국”을 생각해보았을 때 국가주의적 문화 역시 여전한 것 같다. 이것이 독재의 음모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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