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여성에 저금리 장기대출을!

양극화 해소 위한 금융지원의 방향

정희선 | 기사입력 2006/03/20 [23:05]

빈곤여성에 저금리 장기대출을!

양극화 해소 위한 금융지원의 방향

정희선 | 입력 : 2006/03/20 [23:05]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두 딸의 학비와 가족 생활비를 혼자 책임지고 있는 A씨는 얼마 전부터 큰 걱정이 생겼다. 큰 딸이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입학금을 포함한 등록금이 사백만원이 넘고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 방을 빌리는 데도 백만원 정도 들었다. 기간 내 등록을 못할까 싶어 평일엔 무료보육 서비스를 하는 가정의 아이를 업고 은행으로, 아는 사람에게로 돈을 빌리러 다녔고, 주말엔 자취방을 구하러 전주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알아봤지만 가능한 방법은 연 15% 이자의 전세금 담보 대출이었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받는 임금 85만원으론 두 딸의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매달 빠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백만원이라는 목돈을 마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A씨는 이제부터 학비, 생활비와 함께 은행 이자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늘었다. 그러나 앞으로 내야 할 큰딸의 등록금이 일곱번 남았다. 아직 대학에 가지 않은 작은 딸의 학비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한편, 옮기기로 한 회사에서 별 사유 없이 입사를 거부당한 사무직 여성인 L씨는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비정규직이어서 고용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던 L씨는 예상치 못한 실직 기간의 생활비를 카드로 충당했다. 버는 돈이 없는 상태에서 현금서비스로 카드대금을 막기 시작했더니 빚은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서 6개월이 넘자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카드 연체가 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줄 알았던 L씨는 어느 날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온 ‘손쉬운 대출’을 받아 연체를 막기로 했다.

얼마 후 그 대출이 소위 ‘카드깡’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현금서비스보다 싸다는 생각에 빨리 벌어서 갚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재취업의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고, 그 카드깡마저 고스란히 카드 빚이 되어 일년 만에 빚은 세배로 늘었다.

금융지원을 ‘창업’에만 한정시켜선 안돼

노동시장에서 대우 받기엔 나이가 많거나, 부양가족이 있거나, 비정규직인 여성의 경우 한 달 번 돈으로 겨우 한 달을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이 와중에 갑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아프게 되거나, 예상치 못한 실직을 당하게 되거나, 자녀의 상급학교 입학으로 목돈이 필요하게 되면 속수무책이 되기 쉽다.

위 사례들에서 보듯 이런 문제를 겪는 여성들이 택하는 길은 비싼 이자를 무는 대출이나 신용카드다. 그 후에는 이자의 부담과 더불어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여의치 않기 때문에 극복하기 힘든 빈곤층으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여성노동 관련 상담 일을 하면서, 빈곤여성들이 삶의 위기 단계에서 낮은 이자로 길게 나눠서 갚을 수 있는 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20일 재단법인 서울여성이 개최한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정책적 과제’ 포럼 중 ‘마이크로크레딧의 역할과 발전방향’에 관심이 갔다. ‘마이크로크레딧’이란 빈곤층을 대상으로 소액의 대출과 부수적인 지원을 제공하여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체의 활동을 말한다. 기존 금융서비스 수혜자가 주로 남성이었던 현실에서 소액, 무담보 대출로 대표되는 이 제도의 수혜자는 주로 여성들이다. 그러나 이날 이야기된 내용은 한국사회 현실에 비춰볼 때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토론회에서는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딧 시행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의 활동을 사례로 들며 빈곤여성의 지원을 개인, 자활후견기관을 통한 ‘창업지원’으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재산이 없는 여성들에게는 금융기관의 문턱이 높고 별다른 창업 정보도 얻지 못하는 현실에서 창업 자본뿐 아니라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도록 도와주고, 교육하고, 사후관리 및 창업자 네트워크 구축까지 지원해주는 활동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자영업을 하고 싶다는 여성들은 그 이유로(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2005년 조사) ‘나이와 학력, 기술 때문에 노동시장 재진입이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 창업 지원 이전에 성 평등한 노동시장 개혁이 필수적이다. 즉, 창업을 원하는 여성과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여성들을 분리해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창업을 하는 여성들도 경영자로서 자발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빚이 많거나 아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면 장사에 매진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창업 지원과 더불어 ‘생계형 저금리 장기 대출’이 이들 여성에게 꼭 필요한 이유다. 빈곤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이라면, 현재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여성들의 처지와 경험을 수용하고 가장 좋은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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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to 2006/03/22 [16:26] 수정 | 삭제
  • 사회적 일자리 사업과 저금리 대출을 묶어서 지원한다면 좋겠네요..
  • 2006/03/21 [17:14] 수정 | 삭제
  • 요즘은 자활의 조건으로 빚 갚는 일이 중요해졌죠.
    이런 저런 요인으로 자활사업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빈곤층 여성에게 (제대로 선정해서) 저금리 대출이 이뤄지면 도움받는 사람들 많을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 갚아나가고,
    그렇게 지원재단이나 정부 측에서 돈 버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잘 운영하면 말이죠.
    빈곤화든 뭐든 이전단계에서 막는 것이 중요하죠.
    나중에 돈을 퍼부어도 안 되는 상태까지 가는 것보다는요.
  • 상애 2006/03/21 [13:30] 수정 | 삭제
  • 적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서 갑작스럽게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겐 저금리 대출을 지원해주는 것도 실효성이 있는 구제책이 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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