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커플링 거짓말 그리고 망각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정인 | 기사입력 2006/03/27 [21:38]

[기고] 커플링 거짓말 그리고 망각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정인 | 입력 : 2006/03/27 [21:38]
지금까지 사귀던 사람들과 커플링을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계속 애인이 있어왔지만 그 동안 사귀던 사람들과는 커플링을 할 상황까지 교제가 계속되지 않았던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이목 때문에 일부러 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있다. ‘친구’처럼 보이는 두 여자가 같은 모양의 반지로 커플링을 하고 다닐 때 고스란히 받게 되는 불쾌한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평소 반지나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하지 않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반짝거리는 반지를 끼었을 때, 부모님이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무슨 반지냐고 물으실 텐데 이런 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물론 보다 능청스럽게 친구들끼리 우정 반지를 했다던가, 그냥 지금부터 나를 꾸며볼 생각이라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렇게까지 이것 저것 숨기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 사귀는 애인과는 (나름의 각오나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하는) 커플링을 하고 싶었다. 동성애 정체성을 인정하고 산 지 어언 7년을 달리고 있는 중이며, 점점 불편한(혹은 불편할) 시선을 견딜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됐다. 또 이런 정도의 ‘거짓말’은 충분히 꾸며낼 수 있을 만큼 호모포비아 사회에서 이미 능숙한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애인과 처음으로 커플링을 하러 쥬얼리 가게를 둘러보러 가게 됐다.

그런데 애인과 둘이 가서 커플링을 고르는 우리를 가게 주인이 어떻게 대할지 좀 걱정이 됐다. 시간대나 날을 달리 해서 따로 반지를 둘러보고 결정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할 지 난감했다. 그래서 우린 조금 인상 좋게 보이는 주인이 있는 가게를 골라 들어갔다. 쭈뼛쭈뼛하며 들어서서 조용히 반지를 보고 있는 나와 애인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커플링 보세요? 요즘은 이게 잘 나가요.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주인은 여자 둘이 와서 커플링을 하려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나 싶었다. 혹시 우리 둘 중 하나가 남자로 보이나 해서 가게 안 거울로 비춰볼 정도였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를 대하는 아주머니가 내겐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반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른 가게도 둘러보기로 했다. 애인과 나는 나오자마자 마주보고 멋쩍게 웃었다. 애인도 나처럼 놀랐나 보다.

조금은 마음 편하게 바로 옆 가게로 들어섰다. 그 가게 주인 역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커플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두 군데 가게를 더 둘러보고서 커플링을 맞췄다. 다른 레즈비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 거리 쥬얼리 가게 주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반지를 판다고 했다. 세상이 좋아지려는 징조일까, 순간 생각했지만 쓴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진심은 그게 아니지만 그저 반지를 팔기 위해 우리를 자연스럽게 대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내쫓기지 않았고 욕을 먹은 것도 아니고 예쁜 커플링을 끼고 있으니 좋았다.

얼마 뒤 애인과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일어난 일이다. 기분 좋게 애인과 함께 있는데 옆에 앉은 또래 여자가 내 손의 반지와 애인 손의 반지를 노골적으로 번갈아 보며 아주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 사람에게서 따가운 눈초리와 비웃음을 느낀 애인은 지하철에서 내리고 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지를 고를 때는 괜찮았는데 정작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 아니 예상했던 일이지만 쥬얼리 가게에서의 예상치 못한 ‘환대’로 잠시 착각과 망각을 했던 모양이다.

잠시 잊었던가.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 내가 사귀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것. 이런 나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나의 정체성과 사회에서의 위치를 깨닫게 될 때마다 정말 서글프다. 이성애자들이 커플링을 서로 자랑하는 것처럼 커플링이 차라리 ‘염장’으로 여겨진다면 나을 텐데, 애인과 나를 ‘변태’ 혹은 ‘우습거나 신기한 존재’로 만든다는 건 정말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몇 년 전 한 음료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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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2008/10/07 [18:26] 수정 | 삭제
  • 읽고나서 좀 훌쩍 했어요. 남일같지가 않아서..
  • 우아~~ 2008/10/07 [17:36] 수정 | 삭제
  • 저는 좋다구 생각해요!! 남의 시선 뭐 어떱니까? 물론 신경쓰이고 무섭죠... 하지만 말이죠.. 그런거 생각해서는 사랑? 못하죠. 누가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해요! 너는 애인하고 커플링 안하냐구? 애인 없다구 하면 이러면 되요!! 너는 결혼하구 결혼반지 안할꺼냣!!!! 저는 했어요. 그 때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밝혔답니다^^ 제 친구들이 착한건지 아님 눈치를 까고 있었던 건지... 그렇게 놀라지는 안더라구요^^ 오히려 화이팅을 외치던....;; 여하튼!! 뭐 어떱니까? 그래서 포기하실 건 아니잖아요? 이미 맞춘거 어때요? 껴요! 일단 끼고 보는 겁니다!! 반대? 그건 연세 있으신 어른들 얘기죠. 겉으로는 뭐라고 해도 속으로는 모두 부러워 하거나 그럼 그렇지.. 하고 넘어간답니다. 물론 저라고 모두 환영한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부러워서 저런다... 라고... 그리고 뭐라고 하면 이래요. 부럽냐? 부러우면 너네도 사겨라~ 프히히... 오히려 제가 날을 세우고 경계하면 저쪽도 계속 신경 쓰면서 날을 세우는데 이렇게 제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다보면 저 쪽도 조금씩 인정해 주더라구요^^ 한번 저처럼 용기를 가지고 해보세요!! 저는 실제로 끼고 다니면서 오히려 자랑합니다. 저쪽에서 먼저 알기전에 먼저 말하고 또 이해를 구하지요. 근데 말이죠~~ 만약 제 주위에서 커플링을 하고 다닌 다면... 커헉.... 염장커플이라고 다굴할껍니다!! 물론 저는 닭살 커플로 이름 날리고 있지만요... 푸흐흐흐....
  • 러브 2006/03/28 [13:48] 수정 | 삭제
  • 사회적으로 차별이 심하니까 둘은 서로 더 아껴주자고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 zzang 2006/03/28 [00:33] 수정 | 삭제
  • 레즈비언들에겐 사랑과 "용기"의 상징이 되죠. 같이 다닐 경우엔 다 아는 사이인 사람들과 있으면 염장이 되겠지만, 아닐 때는 다른 곳에선 괜한 시선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근데 저는 염장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 커플링한 친구들 부러웠던 기억이, 그것도 유행타면 다들 하고 다니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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