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교 안에서 벌어진 구타와 취조

잃어버린 자율권을 찾아

박희영 | 기사입력 2006/03/28 [01:06]

[기고] 학교 안에서 벌어진 구타와 취조

잃어버린 자율권을 찾아

박희영 | 입력 : 2006/03/28 [01:06]
1990년대 중반 고등학교 때 일이다. 남녀각반인 공학을 다니던 나는 중상위권 성적에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일으킬 배짱도 없는) 조용한 학창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담임선생님이 빈 과학실로 나를 비롯해 친구 몇을 호출했다. ‘곧 수업이 시작될 텐데 무슨 일인가’ 하면서 영문도 모르고 불려간 우리를 기다린 것은, 서슬 퍼런 눈과 두툼한 손바닥으로 가해지는 무차별적 구타였다.

이유는 남자 반에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과 만날 약속을 했다는 것을 담임선생님이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 친구들과 만나서 무얼 하고 다녔는지를 상세하게 불라”고 했다. 그 애들은 시험이 끝나거나 소풍, 학교 행사 등으로 시간이 생길 때면 가끔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하다못해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 같이 고등학생관람가의 영화를 보거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게 전부였고, 교칙 상 문제될만한 일을 벌인 적도 없었다.

매질에 겁을 먹은 나는 선생님이 묻는 대로 만난 횟수와 장소, 무엇을 했는지도 고분고분 대답했지만 선생님은 계속 무언가를 “더 불라”고 다그쳤다. 정말로 말할 게 없어서 “말할게 없다”고 하면, 손바닥으로 목 뒷덜미를 내리쳤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오길 바랬던 것일까?) 울면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잘못했다”고 빌었고, 담임은 “퇴학시킨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수업 시간 내내 이어진 구타와 ‘취조’는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서야 멈췄다.

나는 순식간에 ‘문제학생’이 됐고 어머니가 호출됐다. 생전 자식 때문에 학교에 와본 적인 없던 어머니는 ‘퇴학’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해져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나 몰래 ‘촌지’를 건네주셨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나를 자르겠다고 씩씩대던 담임의 기세는 물에 젖은 휴지처럼 사그라들었다. 이후 나는 ‘요주의학생’이 되었다. 교실에서 무용시험 연습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도, 그 모습을 본 담임은 마치 내가 춤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무안을 주기도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수업도 못 듣고 한 시간 가까이 두들겨 맞고, 퇴학의 위협을 당하고, 남의 집 일 다니느라 쉴 틈도 없었던 불쌍한 우리 어머니가 죄인처럼 학교로 불려와야 했던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물론 날 때리던 선생님에겐 이유가 있었다. “남학생들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 만남이 실제 ‘교제’건 뭐건 ‘이성교제의 위험성’을 보인 학생들을 두들겨 패는 일은 선생님에겐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그건 ‘공부기계’가 되어야 할 ‘학생’의 본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겪은 일은 특별히 이상한 선생님의 특별히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학교 안에서는 흔한 일이었고, 지금도 비슷한 일들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 안에서는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인지, 누구와는 친구가 되어선 안 되는지, 신발의 모양과 가격은 어떠해야 하는지, 속옷은 어떤 디자인과 색을 선택해야 하는지, 가방 크기는 어느 정도가 좋은지 까지도 ‘학생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올바른 규정’이 제시된다.

교도소에서도 없다는 가혹한 두발제한이 살아 있을 정도로 자율적인 모든 행위들이 억압되는 이유에 대해 학교는 이렇게 말한다. “규제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창조적이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자라 나는 것”에 대한 고려는 쏙 빠져 있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자신을 위한 것’으로 믿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두발 규제와 그로 인한 구타 및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으면 맞아도 당연한 거 아닌가”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두발규제의 대상자인 학생들 중에도 이런 말에 동조하는 경우도 있다. ‘강제로 시키는 것’을 문제 삼는 데 동문서답을 하는 건 “시킨 것은 따른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좋은 성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자율권을 뺏고 체벌을 통한 훈육을 ‘교육’이라고 고집하는 학교에서 12년 동안 뼈 속 깊이 배웠고, 배우고 있으니.

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주면 무법천지가 될 것처럼 걱정한다. 자율적으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날 때렸던 그 선생님은 내가 “남학생들을 만났다”는 사실만 가지고 이미 머리 속에서 온갖 비행을 그려내고 나를 문제학생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그 친구들을 만났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사회에 특별히 해 끼친 일 없는 인간으로 컸다. 모든 건 선생님의 머리 속에서 일어난 망상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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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e 2006/03/29 [16:13] 수정 | 삭제
  • 학생들에게 '취조'하듯이 대하는 선생들 많았던 것 같아요.
    뭘 캐내려고 하고, 뭘 잘못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위압감 주는 경우 많고,
    학생들 기강 잡겠다고 군대식으로 대하는 건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 2006/03/28 [04:45] 수정 | 삭제
  • 나도 친구가 남자애들과 만났다고 학생부 선생님들이 정학 시키겠다고 협박을 하는 것을 본 적 있다. 그 애는 간신히 정학을 면했지만, 일일찻집 같은 데 간 애들은 다 정학을 당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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