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는 생산성 낮다’ 합리적 근거 못돼

인권위, 외환은행 나이에 따른 역직위 제도는 ‘차별’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4/11 [01:50]

‘고령자는 생산성 낮다’ 합리적 근거 못돼

인권위, 외환은행 나이에 따른 역직위 제도는 ‘차별’

박희정 | 입력 : 2006/04/11 [01:50]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는 지난 달 29일 “근로자의 나이만을 근거로 전보발령하지 않도록 역직위 제도를 개선할 것”을 외환은행장에게 권고했다.

‘나이’ 기준으로 한 인사관행에 제동

2004년 10월 외환은행 전 직원 22명이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역직위 제도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차별시정위원회는 개선권고 이유에 대해 “업무수행능력, 근무성과 등은 고려하지 않고 ‘나이’만을 기준으로 업무내용, 승진, 보수 기타 근로조건에 있어 불이익한 직위인 일반 역직위로 발령하였는바, 이는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결정 내렸다.

외환은행 측은 진정서의 내용에 대해 “역직위 제도는 상위직급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1990년 초부터 이미 관행적으로 시행되어 온 제도”로서, “노동조합과 합의를 거쳐 보임연령기준을 제정하여 시행해오고 있다”며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막대한 자금을 직접 다루는 금융기관 특성상 정년까지 영업점장으로 근무하고 정리절차 없이 바로 퇴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역직위 제도의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차별시정위원회는 외환은행 측의 주장에 대해 “일반역직위 보임기준은 정년 잔여기간과 더불어 ‘업적부진자’만을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발령자 선발 시 제시된 ‘업적 부진자’ 판단 기준을 제출한 바 없고 ▲높은 경영평가를 받은 이들까지도 일반 역직위로 발령했으며 ▲사측이 “정년 잔여기간에 근거한 전원 역직위 발령은 진정인을 포함한 노사 모두 인식, 운영하고 있다”고 언급, 인정한 점을 들어 단지 “나이에 근거하여 일반 역직위 보임을 하였음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나이를 이유로 한 전보, 발령, 해고 등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려면, “피고용인의 나이가 해당 직무의 진정직업자격”이어야 하며 “나이가 해당 직무의 정상적 운영을 위한 필수적 요소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즉, 기준 나이 이상의 모두 혹은 상당수가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만의 사유는 불충분하다

차별시정위원회는 이에 대한 판단의 참고자료로 미국 법원의 연령차별금지법(ADEA)의 진정직업자격에 대한 해석을 제시했다. 연령차별금지법에서는 연령제한의 합리적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특정 연령 이상의 근로자는 모두 또는 대부분 해당 직무수행을 위한 자격, 능력이 부족하다고 믿을 만한 실질적인 근거” 또는 “각 근로자의 직무능력을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것이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점” 중 한 가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법원은 이와 같은 요건을 입증함에 있어서 “단순한 추정이나 예감”이 아닌 “자세한 의학적 증거, 타당성 연구, 전문가의 분석 등”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효율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보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차별시정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외환은행은 53~55세 나이가 영업지점 지점장 등 진정인의 업무수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임을 주장 또는 입증한 바 없고, 단지 ‘경영개선, 상위직급 인사적체 해소, 인력운용상 탄력성 확보’를 위하여 필요한 제도임을 주장”하고 있다며 “헌법 및 국가인권위원회법등 현행 법률에 위반되는 수단을 채택할 경우 이는 용인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즉 외환은행 측이 나이를 근거로 역직위 발령한 것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차별시정위원회는 “나이가 많은 근로자는 생산성이 더 낮을 것이라는 일반적 가정만으로는 진정직업자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외환은행이 제시한 ‘경영개선’ 목적에 대해서도 “나이를 근거로 한 위법한 인사관리가 직원의 업무능률 및 성취동기를 향상시킨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990년 초부터 이미 관행적으로 역직위 제도를 시행해 왔음에도 2004년 8월 기준으로 여전히 상위직급의 심각한 인사적체 상태가 초래됐다는 것. 특히 높은 경영평가를 받은 이들조차 나이만을 이유로 일반 역직위에 발령한 것에 대해 “인건비 절감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 및 경영개선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인지 매우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영업점장으로 근무하고 바로 퇴직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른 바 금융일괄적 구조조정을 유보하는 대신 고용안정장치로 역직위 제도를 도입하였다는 사측 주장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 제31조를 들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시행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피진정인이 입증자료를 제출하거나 주장조차 한 바 없다”며 타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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