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용 난자 채취 과정은 황우석 사태의 윤리인권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올해 초 이에 대해 취재하는 도중 생명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한 과학자로부터 “한국국민들이 이 부분에 대한 윤리적인 점검 없이 어떻게 일제의 생체실험의 만행을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들었다.
황우석 사태는 그때 당시 논문조작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나라가 요동치고 있었고, 윤리와 인권의 문제는 뒷전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또 국익론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의 언행과 난치희귀병 치료 등에 대한 찬양으로 장애인과 난치병 환자들이 최전선에 비춰지는 점들을 비춰봤을 때 “일제의 생체실험” 언급과 지적은 과도한 비판으로 비춰질 법했다. 그러나 생명과학기술 관련한 사전지식이 있는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서도 “히틀러 시대와 흡사한 것 같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다. 분명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당시 한국사회를 지배하던 다수의 목소리에 의해 묻히게 된다. ‘천사’ 이미지와 ‘피해자’ 사이 간극 황우석 박사 연구의 윤리성을 조사 심의해야 할 책무가 있었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뒤늦게야 “황우석 교수 연구에 제공된 난자 수급과정의 윤리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나치 전범재판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인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 관련한 인류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규범” 뉘른베르크 강령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떠올라야 할 인권과 윤리적인 문제가 ‘뒷전’이다. 연구용 난자를 제공하고 그 후유증과 부작용으로 심신이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황우석 전 교수가 찬양했던 것처럼 “천사”의 이미지에 갇혀있다. 여성들의 인권문제와 피해는 묻혀있다. 여성단체들이 “황우석 교수팀에 연구용으로 난자를 제공했던 여성들 중에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례”를 찾아 손해배상청구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은 선뜻 나서기 힘들 것이다. “천사”의 이미지와 “피해자”로서의 현실의 간극 차가 너무도 큰 탓이다. 이런 한국적 상황을 진단하는 법학자들은 특히 황우석 사태로 대변되는 생명과학기술 상의 법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 여성에게 많은 권한과 청구권을 보장하는 여성 당파적인 입법” 추진에 대해서도 주문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 여성의 몸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는 얘기다. 생명과학 분야 연구의 재료로서 난자를 제공하려는 여성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은 ‘천사 이미지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난자 채취로 인한 후유증과 부작용에 대한 정보”였다. 또 연구 자체에 대해서도 ‘환상’이나 ‘기대’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어야 했다. 황우석 전 교수 연구팀과 관련자들은 그 의무를 실행하지 않았다. 과학자가 책무와 윤리를 어겼을 때 사회가 그 점을 환기하고 바로잡았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화여대 법과대학 김현철 교수는 “심지어 여성 스스로가 난자를 기증하고자 나선다 하더라도 의사라면 말려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재 난자를 기증하는 여성이 어떤 신체적 손상을 입을지 의학적 규명이 불분명하고,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이유다. 일례로 미혼여성의 경우 난자채취 후 불임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시술임에도 불구하고 난자제공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채 연구용 난자를 취득한 것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조사과정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김현철 교수는 난자기증자에게 “난자를 채취해 기증한다는 것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정도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자발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치료가 아니라 연구용일 뿐 현재 ‘연구.치료 목적 난자기증재단’(이사장 이수영)에 의해 아직도 난자 기증이 계속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최근 난자기증재단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난자 기증문화의 절차와 문제점을 보완, 발전시키기 위해 난자 기증을 했던 여성들의 현황 및 사례 파악”에 나선다며 난자기증 경험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 때의 난자는 “연구 치료 목적”이 아니라 “연구용”이다. 논문을 조작한 것뿐 아니라 연구에 쓰인 난자 개수까지 엄청난 차이로 조작한 지금의 연구단계에서는 “치료 목적 난자 기증”이라는 말은 왜곡된 정보다. 연구자와 의료인이 실험 대상이 되는 여성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했을 때, 사회가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난자기증재단은 이러한 윤리인권에서 최소한의 노력마저 하지 않고 있다. 김현철 교수는 “생명과학기술에 종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자정의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의 입에서 지금 단계에서 사람들에게 섣부른 환상을 심고 현혹시킬 수 있는 “치료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되고, 기초연구라는 것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 그것은 다소 희망적인 얘기이긴 하다. 그러나 법학자가 지적한 “몸에 대한 자기 소유권(Self-ownership)”이 근대적 권리 개념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여성의 몸이 자기 것으로 인정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먼 것 같다. 탈근대가 논의되기도 하는 이 시점에서, 여성들의 몸에 대해선 왜 근대적 개념조차 잡히지 않은 듯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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