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어린이 미래의 종자돈 ‘2만원’

계급과 성별의 벽 허무는 교육운동

송하진 | 기사입력 2006/04/25 [01:34]

네팔어린이 미래의 종자돈 ‘2만원’

계급과 성별의 벽 허무는 교육운동

송하진 | 입력 : 2006/04/25 [01:34]
<필자 송하진님은 네팔어린이노동자 학교보내기 프로젝트 ‘희망의 언덕’ 사업을 돕기 위해 현재 네팔에 5개월째 머물고 있습니다. 네팔은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국왕에 대항해 15일 이상의 장기파업이 벌어지고 있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파업이 장기화 되기 전인 3월과 4월초까지 취재해 송고한 기사입니다. 현재 네팔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고 아이들의 개학일도 무한정 미루어지고 있어, ‘희망의 언덕’ 아이들도 이러한 상황이 종료 된 이후에야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편집자 주>


‘국왕 퇴진요구 총파업’과 민주화 시위가 일지 않았다면, 봄의 따스함을 지나 서서히 여름의 문턱을 넘는 네팔의 4월은 아이들의 신학기가 시작되는 달이다. 현재는 7개의 정당이 주도하는 총파업과 시위에 노동자들을 비롯해, 교육계, 학생, 공무원들까지 모두 파업에 참여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예상되지 않은 지난 3월, 어린이노동자학교보내기 프로젝트 ‘희망의 언덕’은 이번 학기부터 지원할 20명의 어린이를 선정했다. 예정대로라면 이 아이들은 4월부터 실질적인 혜택을 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선정된 아이들에게는 학비 전액은 물론 교복, 학용품, 구두 등 필요한 용품도 지급된다. 이 모든 지원에 필요한 돈은 한 달에 한화 2만 원 정도다. 한국에선 크지 않은 돈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빵만을 좇아 하루하루 삶만을 걱정해야 했던 시름에서 벗어나, 보다 희망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미래를 위한 귀한 종자돈이 아닐 수 없다.

여자아이들의 교육권 확보와 인권 신장

선정된 20명의 아이들 중에 한국으로 이주노동 왔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인 2명의 남자아이를 제외하곤, 18명의 아이들 모두 여자아이들이다. 여아가 많이 선정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네팔의 여자아이들에 대한 성차별 때문이다. 선정된 어린이노동자의 연령은 6세부터 13세 사이고, 이들 어린이노동자들이 하던 일들은 가정부, 돌 찧는 노동일이 대부분이다.

네팔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한 국가 중 하나다. 네팔의 취학률은 여자아이가 74% 남자아이 86%이고, 여기에 학업 중도포기 비율을 더한 실질 취학률은 여자아이 51%, 남자아이 74%다. 조혼풍습에 따라 16세 이하 여아의 결혼률이 34%에 이르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 10~14세 사이 어린이노동자의 경우 여자아이들의 작업시간이 남자아이들의 2배다. 그만큼 여자아이들은 자신들의 교육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서 네팔 내 많은 어린이노동자 구호단체들은 ‘여자아이들을 위한 교육권 확보와 인권신장’을 주요한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

남자아이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어려운 이유도 포함된다. 어린이노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남아의 이동률이 여아의 이동률 보다 훨씬 높다. 여아들의 경우 나이가 들어도 주로 가정일을 돕게 하기 위해 가정에 남게 되는 반면, 남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선정을 위한 조사작업에서 초기 접촉 이후 아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 선정 이후에도 집안형편에 의해 언제든 아이가 도시로 이주노동을 위해 떠날 수 있어 지원의 우선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계급적 상황까지 겹치면 교육권 더 열악

18명의 아이들 중에는 5명의 불가촉천민(Untouchable Caste)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를 달리트(Dalit, 억압 받는 자)라고 부르는 이들 계층의 아이들은 모두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 달리트는 네팔인구의 15%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네팔에서도 극빈계층인 인구의 80%가 달리트다.

달리트 아이들 중 읽고 쓸 줄 아는 아이의 비율은 5퍼센트 이하다. 400만의 달리트의 인구 중에서 12퍼센트만이 읽고 쓸 줄 안다. 이들은 다른 카스트들에게는 접촉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나마 도시로 올수록 상황은 나아지지만, 시골과 산간 지방의 경우 달리트들은 입학이 거부되기도 하고, 학교를 다니더라도 이른바 왕따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딩 지역에서 돌을 깨는 노동을 하고 있는 11살의 사비트리(Shabitry Majhi)는 5명의 달리트 아동 중 한 명이다. 사비트리의 언니는 심장병을 앓고 있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수술은 무료로 받을 수 있었지만 매달 들어가는 약값을 감당하기가 버겁다.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많은 다른 아이들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친구끼리 짝지어 모여 들고, 즐겁게 노는데 이 아이는 멀찌감치 혼자 떨어져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이 이상해서 눈여겨보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신분이 달리트였다. 그렇게 카스트는 아이의 존재를 가까이 해서도 안 되는 사람으로 규정해 놓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떠나는 어린이노동자들

네팔에서 어린이노동은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사항에 가깝다. 어린이노동자는 2백6십만 명으로, 네팔 전체 어린이인구의 41%에 해당한다. 네팔 내 어린이노동은 채석장, 포터, 가정부, 성매매 등 최악의 형태로 지정된 영역까지 확대되어 있다. 어린이노동을 하고 있는 대다수의 어린이들 중 외부의 억압적인 상황 없이 스스로 노동을 선택하고 싶어서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이들을 책상이나 놀이터가 아닌 일터로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상황은 어린이노동, 그 중에서도 어린이 이주노동문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10년 전부터 등장한 마오이스트(마오쩌둥의 사상을 따르는 공산 반군)와 정부군과의 전투로 인해서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이러한 상황은 지방이나 산간 지역으로 갈수록 심해져서 이들 주민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버리고 도시나 구릉, 평야 지대로 이주하고 있다. 이렇게 이동하는 대다수가 산간, 벽지에서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고, 이주를 결심한다 해도 좋은 직업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3D업종에 종사하게 된다. 그러한 업종은 대부분 급여가 적기 때문에, 가족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아동들도 그러한 노동에 함께 종사하게 되는 것이다.

카트만두 인근의 벽돌공장은 주로 이러한 이주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먼 지방에서 브로커의 소개로 한 지역에서 수십 가정씩 함께 이동하여 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주로 마오이스트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으로 경제적으로도 낙후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브로커들은 마오이스트에게 한 가정당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역 사람들을 모아서 오기가 형편이 나은 다른 지역 사람을 데려오기보다 훨씬 손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이 벽돌공장에서도 많은 어린이들이 노동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네팔에는 5월부터 가을까지 긴 우기가 있다. 벽돌을 야외에서 만들기 때문에 우기에는 벽돌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6개월을 일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6 개월의 기간 동안 아이들의 학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아이들은 학업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유급제도가 있는 네팔에서 그런 아이들은 몇 년씩 같은 학년을 다니다가 결국 학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노동 악순환의 고리

어린이노동의 악순환이 가난과 네팔의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돌아가고 셈이다. 반드시 가족이 모두 올라오지 않고 어린이만을 도시로 보내 노동하게 되는 어린이 이주노동의 경우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네팔의 어린이 노동자 인권단체 CWIN의 2004년 보고에 따르면, 조사 당시 6개월간 마오이스트에게 납치당한 어린이의 숫자가 6천689명에 이른다. 무력충돌로 인해 99명의 어린이가 다치고, 54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지방의 어떤 학교들은 마오이스트가 내린 국지적인 파업 조치로 인해 문을 닫기도 한다.

많은 납치가 주로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에서 이루어진다. 네팔에서는 한 시간 이상씩 걸려 학교에 걸어가는 일이 보통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노려 납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학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도시로 유학을 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기에 차라리 돈을 벌기 위해서 도시로 아이를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이주노동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기회 제공과 보호는 어린이노동자 인권단체들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고, 주로 고용주가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 어린이들에게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훨씬 힘든 일이다. 몇몇 NGO 단체들은 이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정규 학교과정은 아니더라도 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공부방 같은 것을 운영하고 있다.

네팔에는 어린이노동과 고용을 금지하는 법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린이노동자들에게 구원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네팔 정부는 2001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어린이 노동자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세워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계획 실행 6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 얼마나 그 비전이 실현되었는지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다.

2005년까지 최악의 형태의 어린이노동을 없애겠다는 처음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2010년까지 모든 종류의 어린이 노동을 없애겠다는 목표 역시 현재로서는 요원한 실정이다. 우리가 네팔 어린이노동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이렇게 위로부터의 법 집행, 계획과 정책의 실패 가운데서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변화의 시도다.

네팔의 교육활동가들

교육을 통해 아이들과 부모들 스스로가 어린이노동에 대한 해악을 인식하고, 노동을 강요하는 가난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손으로 어린이 노동을 종식시키는 일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현재 어린이노동자를 학교로 보내기 위해 교육활동가들은 자신의 삶을 바치고 있다. 그 중에서는 자신이 예전에 어린이 노동자 출신이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어린이의 교육을 포기해야만 하는 가정에 찾아간다. 단 1명의 어린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세번, 네번을 집으로 찾아가 부모에게 부탁하고 사정한다. 그 어린이에게 네팔의 미래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네팔의 어린이노동자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네팔의 어린이들은 그들에게 보장된 기본 권리와 자기 계발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전은 단지 네팔정부, 네팔의 NGO들의 몫만은 아니다. 한국도 같이 이 비전을 이루어가야 할 대상이 된다. 우리의 더 큰 바람은 아이들이 단순히 더 많이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지 않고,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다. 이들이 자라서 카스트와 종족을 넘어, 특별히 자기와 비슷한 처지로 인해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도우며 그 자신이 희망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희망의 언덕 참여 문의: 02-337-1978 (한반도화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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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인형 2006/11/25 [21:20] 수정 | 삭제
  • 2만원..
    크다면 큰 돈이지만, 작다면 작은 돈이 우리나라의 2만원인데..
    2만원이 한명의 네팔어린이를 좀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게 해준다니...
    반성하게 되고..
    참여해야 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 .. 2006/05/01 [15:53] 수정 | 삭제
  • 2만원이 그런 큰 일을 하는군요.
  • 2006/04/26 [01:15] 수정 | 삭제
  • 계속해서 기사로나마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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