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한다’ 아닌 ‘한다’

여성학을 강의하는 한지영

은아 | 기사입력 2006/05/23 [17:37]

‘~해야 한다’ 아닌 ‘한다’

여성학을 강의하는 한지영

은아 | 입력 : 2006/05/23 [17:37]
같은 자치구에 살면서도 서로 일상에 쫓겨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인터뷰를 핑계 삼아 오랜 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지난 겨울 어느 모임에서, 3월부터 대학에서 <여성과 사회>라는 과목을 강의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던 터라 서로 일상의 안부를 묻고는 바로 그 얘기를 꺼냈다. 첫 강의라 소감이 남다를 텐데 어떤지 궁금했다.

첫 강의, 둔해진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

“매너리즘에 빠진다고 하지? 쉼 없이 8년을 법학에서, 법여성학을 공부해오면서 느슨해졌지.”

공부만 쭉 하다가 학생들과 피드백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 가운데 학생들이 서평을 쓴 것을 읽고 학생들의 솔직한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한 학생의 얘기를 해주었다.

그 학생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데, 다른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이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는 남편의 지지와 지원이 컸고, 여성으로서 불편함 내지 차별 같은 것은 느껴보지 못한 터라 이 수업 자체가 처음에는 아주 불편했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행복한 페미니즘>(벨훅스 저)이라는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남성에게 적대적인 어떤 것, 페미니스트는 남성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가 책 첫머리에 페미니즘이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한다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을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학생처럼 수업을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그런 편견을 깨고 여성주의에 대해, 자신에 대해 다시 이해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내 인생의 ‘선생님’

첫 강의를 시작하면서 한다는 두 멘토(먼저 경험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한 분은 “인간적으로 대하라”고 했고, 다른 한 분은 “학생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단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교수와 학생 사이의 학력, 지위 차에 얽매이지 말고 학생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라는 의미였고, 두 번째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무감각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중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미 두 멘토에 대해 한다를 통해서 알고 있던 터지만, 많은 스승이 있을 텐데 왜 그 분들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한다는 이렇게 말한다.

“난 큰 거 안 바래. 솔직하면 돼. 어떤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인간적인 사람, 그런 사람 좋지 않아?”
“그럼 좋지, 하지만 그게 어디 쉽니? 한다, 큰 거 바라는데? (웃음) 아무튼 당신에게 그 분들이 큰 힘이다.”

지난 스승의 날, 한다가 두 분의 멘토에 대해 쓴 글에서도 다시 한 번 두 분의 힘이 느껴졌다. “분명 사회적 관계로는 ‘선생님’으로 만났지만 그 이상의 인간관계를 엮어나가고 싶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싶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감히’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하고 싶어한다 (…) 그들이 있어 내 삶의 단단하고 풍성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면 감히 나는 또 다시 내 인생의 영원한 ‘선생님’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우리의 삶에 그런 스승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그리고 그런 관계를 맺어가는, 맺어갈 수 있다는 것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관계라는 것이 상호적인 만큼.

법여성학을 공부한다는 것

“법학을 전공하면서 막연하게 내가 원하는 게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총여학생회 활동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직관적으로 느낌이 왔지. 취업이고 나발이고 (총여학생회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웃음) 그 때 내가 왜 법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숱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

남들은 취업문제로 하던 활동도 정리할 대학 4학년 때 한다는 총여학생회 활동을 통해서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많은 것을 알았고, 배웠고, 느꼈지. 삶의 전반이 뒤엎어질 정도로 한지영은 ‘한다’로서 거듭났다고 해야 할까? 만약 그 때 기회를 놓쳤다면 어떤 식으로 삶이 진행되었을지, 나 자신도 모르겠어.”

그리고 그 때 법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법여성학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고, 전혀 접하지 않았던 낯선 분야의 길로 발을 딛기로 결심했다.

“법여성학을 공부하는 것은 법과 여성의 삶과 연결 지어 ‘문제화’하고, 새롭게 ‘발견’해 가는 과정이 것 같아. 사적이고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여성 문제들에 대해서 사회가,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의 변화 속에서 법이 중요하게 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법을 이야기하고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해.”

학문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앎=깨우침”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안다고 해서 아는 만큼 통찰력,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비례적으로 배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난 시간 내가 가져왔던 깨우침과 여성주의 감수성이 오히려 반감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한다는 학문영역에서 또 다시 실천영역을 넘나들면서 ‘지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감수성을 다시 되찾고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언젠가 총여학생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은 ‘한다’라는 애칭이 마치 ‘무언가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서 부담스럽다면서,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로 살겠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한다’만큼 애칭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한다의 첫인상은 자신이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해낼 것 같은 다부진 모습이었다. 마치 “한다면 한다!”를 외치면 정말 모든 게 이루어질 것만 같았는데, 그에게도 ‘이름’이 주는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부담감을 한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 어떻게 지낼 것인지에 대해 한다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조급해 하지 않아. 예전에 비해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줄어들었지.”

대부분의 우리들은 내일을 걱정하면서, 해야 할 일들에 쫓겨서 정신 없이 우왕좌왕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부담감에 짓눌려서 내 끼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직관을 믿고 자기 길을 걸어갈 듯싶다. 또, 한다의 삶에 어떤 기회와 터닝 포인트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일다에 하고 싶은 말은 없어?”라는 질문에, 한다는 “일다 기사 잘 보고 있어. 학생들에게도 일다 기사를 많이 추천하고 있어. (웃음) ‘의견’이 들어 있는 글이어서 ‘성찰’하는 데 도움이 돼”라고 말하면서 대안저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사를 모아서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3시간 가량 만나면서 많은 얘기를 했지만,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가 많아서 1/10도 채 못 싣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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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 2006/05/26 [14:26] 수정 | 삭제
  • 인생의 선생님 얘기가 부럽게 와닿았어요.
    저도 그런 분이 한 분 계시긴 한데,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가 어떤 틀을 만들어버린다는 느낌도 받아서 아쉬운 맘도 들 때 있어요.
    나이나 그런 거 떠나서 좋은 인연으로, 그런 관계 만들줄 안다면 자신도 제자와 그런 선생님 이상의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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