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금융회사에 입사한지 10년 된 여직원 A씨와 남직원 D씨는 입사동기다. A씨는 그럼에도 입사초기에 D씨에게 “D주임님”이라고 불러야 했다고 말한다. 이유는 여성인 A씨는 고졸이고, 남성인 D씨는 대졸이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이 남자동기를 꼬박 꼬박 “주임님”이라고 부르는 데 비해, 자신은 남자동기로부터 “A씨”라고 불려지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게다가 “주임님”이라고 여러 번 부르다 보면 어떤 때는 “주인님”이라고 발음이 꼬이기도 해서 비참하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인님”이란 발음이 꼭 실언이라고만 볼 수가 없는 까닭은, 같은 사무실에서 A씨는 고객을 직접 대하는 창구업무 외에 상급자들 복사, 팩스 심부름, 회의실 청소, 화분 물주기, 탕비실 정리까지 맡아서 해야 하는데 반해, 동기인 D씨는 자기가 맡은 업무만 열심히 하면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외에도 많은 금융회사와 대기업 사무직들에서, 여성신입사원은 고등학교 최종 졸업자, 남성의 경우 대학교 최종 졸업자를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요즘은 전문대졸 여성을 비정규직으로, 대졸 남성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졸로 입사한 여성은 입사 후 4년이 지나면 대졸로 입사한 남성의 직급인 주임으로 자동 승급하는 것도 아니고, 승급심사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군입대 경력을 호봉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까지 있어 대졸남성과 고졸여성은 실제 6년의 호봉 차이가 나고, 승급 심사에서 탈락되면 10년이 지나도 주임이 되지 못하는 여성들이 허다하다. 고졸 출신 여성들은 회사를 다니는 중에 대학에 가거나, 심지어 대학원을 가더라도 고졸 학력으로 인정될 뿐이다. 입사 시 학력이 퇴사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승진 차별보다도 여성노동자들을 더 힘 빠지게 하는 것은 직장 내에서 강요되는 학력과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한 업무들을 맡게 되는 것이다. 고졸이기 때문에 덜 중요한 업무를 해야 한다는 편견으로 인해 여성들은 대부분 고객 창구 업무를 할당 받고 그 외에 사무실 관리를 암묵적으로 떠맡고 있다. 이렇듯 정규직 내에서의 성차별이 외환위기 이전 양상이었다면, 현재는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남성은 정규직으로 채용함으로써 그 차별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성노동자들은 그간 겪어왔던 차별 외에도 고용불안까지 겪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을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으로 채용해 보조업무를 시키는 것은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관행이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은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항상 능력이 뛰어나고, 남성은 여성보다 중요한 직책과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학력차별과 성차별이 중첩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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