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게 다뤄진 아랑의 원한

영화 <아랑>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6/07/04 [22:52]

진부하게 다뤄진 아랑의 원한

영화 <아랑>

김윤은미 | 입력 : 2006/07/04 [22:52]
<기사를 보고 영화를 보시면 재미가 덜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아랑 이야기는 수많은 전래 동화나 전설들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다. 아랑이 죽음을 맞은 사연 때문이다. 아랑은 자신을 연모하는 관노의 고백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성폭력을 당한 뒤 억울하게 죽임 당하고 만다. 그 뒤 그 지역에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은 모두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아랑의 한은, 귀신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부사가 부임한 뒤에야 풀어지게 된다. 이처럼 아랑의 사연은 일반적인 설화들에 비해 직접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환기한다. 또한 억울한 자의 원혼은 반드시 풀어져야 한다는 정의감을 피력하고 있다.

아랑의 사연이 공포영화 <아랑>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는 아랑의 원한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변조를 준다. 첫째, 아랑을 구하는 존재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이다. 어렸을 때 성폭력을 당한 기억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는 문소영 형사(송윤아)는 남자들이 연쇄 살해당하는 사건을 담당한다. 피해자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로, 10년 전 바닷가에 놀러 간 경험이 있다. 그는 피해자들이 죽기 직전, 이들의 컴퓨터에 공통적으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소금마을’이라는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단순히 바닷가에 놀러 간 것이 아니었음을 서서히 밝혀낸다. 문소영 형사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영매’처럼 사건에 열중한다.

두 번째 변조는 막판에 벌어지는 반전이다. 이 영화는 보통 공포영화와는 달리 처음부터 귀신이 바로 등장한다. 첫 화면, 비가 으슬으슬 내리는 시골길을 두 여학생이 걷고 있다. 그들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소금창고 근처에 도달한다. 그런데 갑자기 원한에 사로잡힌 듯한 두 명의 귀신이 출현한다. 귀신들은 남성들에게 순차적으로 나타나 복수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공포영화가 귀신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을 서서히 그려내는 반면, <아랑>은 겉으로 드러난 귀신의 정체 이면에 무언가 있다고 주장한다. 억울한 여성귀신의 한을 남자가 아닌, 같은 피해자로서 여자가 풀어준다는 점, 그리고 일반적인 공포영화와는 반대로 ‘진실’에 접근한다는 점, 이 두 가지 변조가 공포영화로서 <아랑>이 내미는 카드다.

그러나 이 카드가 얼마나 성공했는가는 미지수다. 귀신이 처음부터 등장하여 순차적으로 남자들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귀신이 누구를 죽이게 될지 알아버린다. 또 귀신의 형상이나 귀신이 남자들을 죽이는 방식은, 오래 된 귀신이야기의 클리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신은 눈이 시뻘겋고 머리카락이 길며 두 다리 사이에 끊임없이 피를 흘린다. 또 남자들의 뒤를 지나가거나 거울 속에 비치면서 관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그뿐이다. <아랑>이 내민 카드는 분명 일반적인 공포영화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작 공포 어린 분위기를 조성하는 아이템들은 진부하다. 이는 장르적인 관습 자체에 미숙했다는 인상을 준다. 관객들 또한 <아랑>의 공포에 익숙하게 반응한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아랑의 원한이 영화에서는 ‘일탈한 남성들’에 의해 발생한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 정도로 처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이 일상에 하나의 ‘문화’로서 침윤되어 있다는 점이나, 사회적으로 차별적인 권력관계에서 발생하기 쉽다는 구조적인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성폭력은 순수하고 착한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혹은 그들을 ‘선머슴’으로 탈바꿈시켜 복수극을 꿈꾸도록 만든다. 그래서 여성의 고통은 카메라 안에 갇혀있을 뿐 관객들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아랑>은 남성을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과 그렇지 않을 남성으로 선험적으로 구분 짓고, 그 경계에 서 있는 남성들의 존재를 비극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아랑의 원한보다 여성 피해자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지닌 남성의 정신적인 분열과 죄책감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느낌을 받는다. 송윤아가 형사로 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가 하나도 도드라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의 원한. 어쩌면 진부하리만큼 익숙해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이들이 아직도 피해자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자아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랑>이 과연 이 주제를 얼마나 풀어냈는지는 미지수다. 적당한 공포와 적당한 원한, 그리고 가장 극적인 순간에 여성의 원한 대신 남성의 죄책감을 처리해버리는 모순적인 이야기. 어쩌면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폭력은 ‘순수한 여성의 비극’ 정도에 머물러 버리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둘러싼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은 지워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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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니드 2006/07/08 [12:10] 수정 | 삭제
  • 소설 '령' 이라는 작품의 표절로 의심되는 영화..

    작가님이 이 영화사에서 하는 공모전에 출품했으나 채택이 안되었고 그 후 몇달 뒤 시나리오 완성. 영화 제작..

    우리나라는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대책이 너무 안되어 있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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