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과 회원단체를 비롯한 15개 여성단체가 새로 입주할 ‘여성미래센터’ 건립을 두고 지난 한 주간 말이 많았습니다. 60억 원짜리 건물을 세우는 ‘여성미래센터’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에는 기업인들과 정부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고, 당일 약정 액이 11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몇몇 언론에서 이를 두고 ‘공익단체냐, 이익단체냐’, ‘권력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여성단체가 관변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등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했는데, 여성연합 측은 이에 대해 60억 원이 과도한 금액이 아니며, 건립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정부 인사들이 “전 여성운동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여성미래센터 건립을 둘러싸고, 6억이냐 60억이냐를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여성연합을 비롯한 일부 여성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운동에 대한 가치관과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대해 우려되는 지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단체 출신 정계인사 배출이 여성운동의 성과? 여성연합은 중앙일보 6월 30일자 ‘60억 빌딩 건립 추진위에 정부 고위인사 대거 참여’ 제하의 기사에 대한 입장을 내고 “건립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정부 인사들은 여성운동 활동가 및 대표 등으로 오랫동안 여성운동에 참여해왔던 인사”라며, “여성운동 출신자들의 정부, 각 주요 사회 분야 진출은 오히려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로 해석되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성운동단체에서 활동을 해왔던 사람이 그 활동경력을 통해 정부 요직과 국회에 진출하여 현재 정계 인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한 문제 의식을 갖거나 곤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라고 해석하고 있다면, 과연 해당 단체가 비정부기구(NGO)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인가 의심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인사들이 “정부 인사의 자격이 아니라 전 여성운동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여성연합의 입장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활동 영역을 여성단체에서 정계로 옮겨 그 시스템 안에서 나름의 정치적 행보를 가져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여성단체가 아직도 선을 긋지 못하고 ‘여성운동 선후배’로 공공연히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기금’이나 ‘재단’ 위상이 더 적절해 지난 3월 열린 ‘한국사회포럼2006’에서 여성운동의 미래를 위해서는 여성연합이 연합체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저의 견해에 대해, 여성연합 관계자는 ‘해체 두렵지 않다. 앞으로 논의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60억 상당의 여성미래센터 건립 계획 소식을 접하고 나니, 여성연합 관계자가 당시 밝힌 입장은 립서비스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형 건물을 지어 자산을 늘리면, 오히려 회원단체들의 여성연합 결속력을 높이고 지부와 회원단체 수를 더욱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여성단체가 자산을 늘리고 규모를 확장하는 것 자체를 우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구조는 각 회원단체들이 연합체 역할을 하기 위한 사무국을 두고 있는 형태라기보다 하나의 개별 단체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회원단체들을 아우르는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연합과 회원단체들 간에 사안에 대한 이견이 존재할 뿐 아니라, 여성주의적 관점이나 여성운동의 방향에 있어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연합체라는 구조 때문에 ‘다른 목소리’가 묻히거나 여성운동이 항상 하나로 묶여서 인식되고 있다는 데 커다란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연합은 여성미래센터를 통해 “신생 풀뿌리 여성단체들, 임대료 부담이 어려운 여성단체들에게까지 대상을 확대하여” 저가 임대 사무실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여성단체들의 사무 공간만이 아니라 ‘여성운동 자료 홍보관’, ‘여성까페’, ‘개방형 회의실’ 등도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작업이 여성운동의 미래를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여성미래센터를 건립하는 일에 각 계 인사들을 동원해 돈을 모으고 있다면, 여성연합은 기존의 ‘단체’ 정체성 대신 ‘기금’이나 ‘재단’으로서 그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여성미래센터의 비전과 역할은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이라고 합니다. 과연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의 발판이 될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여성직능단체들을 비롯해 기존에 여성연합이 비판해 왔던 ‘보수적 여성단체’들도 현재 대형 건물을 소유하고 지속적으로 고용을 창출하며 그 연명을 지속시키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은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발굴하고 여성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사회를 변화시켜나갈 급진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조직이 커지고 무거워질수록, 위계와 관료제적인 성격이 굳어질수록 어려운 일입니다. 여성연합은 여성미래센터를 건립해 공간을 함께 사용하며 신생 풀뿌리 여성단체들과 소통하고, “여성운동이 활동가 중심의 운동에서 나아가 대중과 함께 소통하고 문화를 바꾸어가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비전을 세워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여성운동의 흐름과 여성연합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여성미래센터 건립 추진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단체의 회원이나 여성들의 대중적 지지 없이도 기업과 정계 인사들을 통해 얼마든지 조직을 운영해나갈 수 있는 여성연합의 체계와 방식은, 시민들의 지지를 통해 단체의 영향력을 쌓아가는 NGO 본연의 모습과 더욱 멀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연합과 몇 개의 여성단체들은 이번 여성미래센터 건립 추진과정에서, 단체 출신 정관계 인사들이라는 ‘인맥’과, 건물 설립을 위한 자금으로 기존 자산을 포함해 60억 원을 조성하겠다는 기획을 내놓을 만큼의 ‘돈을 끌어 모으는 능력’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여성운동은 현재 어떤 자리에 놓여있는 것일까요. 여성단체들의 규모와 자산이 커졌다고 여성운동이 발전한 것이라고 보아선 안됩니다. 여성의 빈곤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소수 여성들이 정치적 힘과 자본을 획득한 것을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여성운동의 성장이나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 설정은 지금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여성주의적 가치가 사회에 얼만큼 자리잡았는지,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불평등한 상황들이 무엇인지, 평등한 삶을 위해 여성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말입니다. 여성미래센터 건립 추진을 둘러싼 비판과 우려의 시선에 대해 “여성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여 운동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의도”라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현재 여성운동의 당면 과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사회에 어떤 내용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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