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지형을 살펴보고 문제점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해 이야기하자”라는 주제로 ‘페미니즘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두번째로 마련한 토론회 자리로 8월 22일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열렸다.
발제자뿐 아니라 많은 참여자들이 토론에 참여해 난상으로 진행된 이 토론회에서, 여성운동이 당면한 과제들 중 “지역여성운동의 소외”와 “여성단체의 보수화, 관변화”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중심을 이루었다. 소외되어온 지역여성들의 사안 부산지역 여성운동의 고민을 전한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의 주경미 회원은 “지역여성단체가 여성정책 결정과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10년간 지역에서의 의제화 사례를 검토했지만 “보육조례제정 사례를 제외하고 지역 여성문제를 제대로 의제화하지 못했다”는 것. 의제화 부진의 주요인에 대해 주경미씨는 “지역의 여성단체가 아젠다(의제) 설정을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그 원인 중 가장 큰 것으로 여성단체들이 ‘지역-중앙’으로 이루어져 있는 여성운동 구조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보았다. 주경미씨는 “여성운동의 방향설정과 아젠다 선택을 중앙에 있는 여성단체가 주도하고, 지역 여성단체는 이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여성운동이 구조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지역의 여성단체는 중앙에서 결정된 바에 따라서 아젠다를 유통, 소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지역여성문제는 지역에서도 의제화되지 못하는” 등 결과적으로 지역운동이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주경미씨는 또 여성단체간에 정부보조금과 프로젝트 사업 확보를 두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단체가 정부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상호 경쟁자처럼 견제하고 지원 받기 용이한 활동을 선택적으로 전개하면서 개별 여성단체만의 고유한 활동영역을 개척하는 데에 소홀하게 되어 정부 지원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 고리”에 대해 설명을 하며, 우려를 표했다. 여성운동 내 중앙-지역간 위계가 문제 임나혜숙(전 경남여성회 회장)씨 또한 “지역은 없고 지방만 있다”는 말로 서울중심주의를 꼬집었다. 임나혜숙씨는 지역을 ‘마산’, ‘창원’ 등과 같이 특정한 개체성을 가진 개별 지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라는 뭉뚱그린 시선으로 보려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본지 조이여울 편집장도 토론회 자리에 참석해 “지부-중앙, 지방-서울 단체간 위계”와 “한국여성연합을 중심으로 한 연합체 방식”이 풀뿌리 여성운동이 전개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이) 연대하는 방식이 중앙에 있는 조직에 흡수시키거나, 중앙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것. 조이 편집장은 이것은 ‘연대’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여성연합 내에 지역여성운동센터를 두고 지역여성운동을 키우겠다는 방식이 아이러니하다”며, “그런 시스템 자체가 풀뿌리 지역 여성운동을 가로막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여성단체들의 관변화, 보수화에 대한 논쟁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토론회는 저녁 8시까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을 중심으로 한 여성단체들의 ‘관변화’와 ‘보수화’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는 여성연합에서도 이구경숙(여성연합 지역운동센터) 국장이 발제자로 참석했고, 여성단체들의 행보에 대한 그간에 제기된 여성운동진영 안팎의 비판적 목소리에 대해 발제시간을 전체 할애하며 반박을 하는 등 여성연합의 운동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여성연합의 관변화와 보수화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구경숙 국장은 “제도화의 문제는 양면성이 있다”면서 “제도적 서비스를 이용해 주민을 만나는 것도 운동일 수 있다”고 답변했다. 또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주민을 조직화 세력화할 수 있는 것도 여성정치세력화”라고 주장하며, 여성연합의 그간의 활동에 대해서 “양적으로 따지면 많지 않지만 여성의 역할모델 변화에 기여했고 국가정책 내에 성주류화를 용이하게 했다”고 자평했다. 한편으론 계속되는 문제제기에 대해 이구경숙 국장은 “상층으로 들어가는 것과 아래를 바꾸는 것의 불균형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어 “특정 정당과 가깝다는 관념이 고정화되어 그 맥락 속에서 고정된 인식 틀로 왜곡해서 해석되는 문제가 가장 크다”며, 여성연합이 가진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정작 문제는 여성연합의 활동을 “고정된 인식 틀로 왜곡해서” 보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순경(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당사자가 장기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KTX 여승무원들의 문제에 대해 여성연합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따져 물었다. ‘여성미래센터 60억 건물 건립’과 같은 여성연합 문제에 대한 비판에는 즉각적, 조직적으로 집요하게 대응을 하는 것에 반해, 여성 비정규직 현실문제에 대한 여성연합의 태도가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구경숙 국장은 KTX 여승무원 문제와 여성미래센터 문제는 비교할 사안이 아니라고 답했다. 또한 노동문제와 관련된 1차적 대응은 여연 내부의(회원단체인) “한여노협에서 한다”면서 “KTX문제는 (조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 할 수 있는 대응이 한계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디게 가도 제대로 가자” 임나혜숙(전 경남여성회 회장)씨는 여성연합의 반박을 보며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GO(정부기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NGO(비정부기구)나 GO나 여성한테 이로우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권력은 부패하는 속성이 있다”고 일갈했다. 또한 임씨는 “절차적으로 옳은 것인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며 “더디게 가도 제대로 가는 여성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석한 한 단체활동가는 “단체를 보면 오래 있어온 활동가와 적응을 못하는 1, 2년 된 활동가를 보는데 젊은 활동가들이 (단체 내에서) 문제제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끝내 포기하고 나가는 방식이 있다”며, 이를 통해 “조직이 보수화되고 비판에 대해 둔감해지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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