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십대인권운동이 교육운동이다

교육운동의 좌표 다시 설정해야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08/23 [08:40]

[논평] 십대인권운동이 교육운동이다

교육운동의 좌표 다시 설정해야

조이여울 | 입력 : 2006/08/23 [08:40]
최근 일다에선 독자모임을 통해 교육문제에 대한 오프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교육현장은 어쩌면 그렇게도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첫 모임에서 학창시절 겪었던 폭력과 차별들, 학교의 권위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또 탈학교생들의 문화와 노동환경, 특수교육과 대안교육 현장 등 다양한 경험들이 제시됐습니다.

학교 안팎을 둘러싼 교육현장의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각자 학생, 탈학교생, 졸업생, 교사, 예비교사, 학부모 등 다양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
들의 현실과 이들의 시선에 더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주는 입장이 아니라, 학생들의 시선을 통해서 보았을 때 교육문제를 해결해나갈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십대인권운동이 미약하게나마 조명을 받고 있는 시기이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교육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십대들이 교육현장을 바꾸는 운동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십대들만이 교육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십대들과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연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6월 30일자 <인권오름> 10호에는 1980년대 고등학생운동사를 연구하고 있는 양돌규님이 기고한 ‘1989년 한해 동안 전개된 중고등학생 투쟁 일지’가 실렸습니다. 한 해 동안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수백 건의 집단적인 학생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학생들은 등교시위, 복도시위, 운동장시위, 가두시위, 일요일 등교농성, 철야농성, 전교생 리본패용, 침묵수업, 수업거부, 시험거부, 방학거부, 궐기대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저항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교 측으로부터 징계를 당하거나 경찰에 연행된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에는 직접적인 학생인권과 관련한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징계교사와 해임교사에 대한 구명운동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시 학교 측과 교육부, 보수언론들은 학생들의 투쟁이 전교조 교사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몰아세웠지만, 기실은 전교조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선동이 더욱 컸고, 학생들은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이 자료를 보면서 몇 일에 걸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이었는데, 크게는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학생들이 부당하게 징계를 당하고 해임을 당하고 연행이 되었던 교사들에게 보여준 ‘연대의식’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교육을 믿습니다’ 같은 구호에서 볼 수 있는 학생들의 ‘신뢰’와 ‘기대’에 관한 것입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줄곧 학교 측으로부터 부당하게 징계를 당하고 강제 전학조치를 당하고, 심지어 퇴학 조치를 당한 학생들 사례를 꾸준히 접해왔습니다. 교사에 대한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집단적으로 행동에 나선 학생들에 비해서,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부당 징계를 당한 학생을 구제하고자 힘을 모으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연대의식’을 보여주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학교에서의 ‘종교 자유’라든지 ‘입시위주 교육반대’와 같이 사회적으로 큰 교육이슈로 부각될 만한 사안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회의적입니다. 교사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싸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일일 찻집에 갔다는 이유로, 화장을 하고 거리를 다니다가 발각되어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이 돌아서, 각종 징계조치를 당하고 학기가 끝남과 동시에 조용히 사라져 간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조용할 수 있었을까요.

학생들에게 있어서 학교는 일상생활의 장인데, 그 공간에서 학교 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인격체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채 참으로 취약하고 외롭고 고립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이 교육의 삼 주체 중 하나라는 말은 그야말로 말일 뿐이고, 교육계를 비롯해 사회는 학생들의 권리를 학부모나 교사들이 대변해주는 양 간주해버리곤 합니다.

학생들이 신뢰한다고 했던 ‘참교육’의 내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교육’의 내용이 비단 교사들의 노조설립 합법화만을 의미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과서 내용을 개편하는 것만을 의미했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어쩌면 교육현장은 그렇게도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제 교육운동의 좌표가 다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새롭게 설정되어야 할 교육운동의 방향은 다름아닌 십대들의 삶과 시선으로부터 제시될 수 있으며, 그것은 교육현장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의 주체는 십대들, 그리고 십대를 지나온 사람들 중 진정한 의미로 십대들과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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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 2006/08/28 [14:04] 수정 | 삭제
  • 많이 깨우침을 주는 글을 읽게 되어 반갑습니다.
    교사들은 교육의 시스템을 바꾸기엔 이미 약자의 위치에서 조금 멀어져 있다는 것을 경고하신 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민수 2006/08/25 [15:09] 수정 | 삭제
  • 일다에서는 십대들 문제를 대하고 보도하는 방식이 다른 곳들과는 뭔지 모르게 많이 다르다고 느껴왔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 jeen 2006/08/24 [21:39] 수정 | 삭제
  • 그렇지만 따뜻한 이야기군요.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학생들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하는데,
    CCTV를 학내에 설치하겠다고 하고 감시와 통제만 생각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죠.
    교사들은 훨씬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 힘도 없는 것마냥 위만 보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으면 해요.
  • 물빛 2006/08/24 [01:11] 수정 | 삭제
  • 인권오름에 실린 그 자료를 보고 학생들의 연대의식에 대해 생각을 하셨군요. 저는 과거를 회상하고 재밌어했는데, 깊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시네요. 학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떠나면 그만이라는 듯 되풀이된다고 하더라구요.
  • 2006/08/23 [16:01] 수정 | 삭제
  • 학생들의 연대의식과 교사들의 연대의식을 비교한 부분.
    이 기사 퍼갈게요.
    제가 아는 친구들과 돌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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