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통합하여 여성청소년가족부가 될 모양입니다. 성 평등과 가족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뤄진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의 위상도 우스꽝스러운데, 거기에 청소년까지 더해져 여성청소년가족부가 된다고 하니, 앞으로 누가 이 부처를 여성정책 담당기구라고 볼 것인지 의문입니다.
여성부 출범 이전엔 여성계 내에서 여성정책을 담당할 중앙부처를 만든다며 어느 정도 논의가 이루어졌던 것 같은데, 막상 여성부가 출범한 이후엔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유아 보육업무(아동)를 이관 받아오고,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법률의 갑작스런 출현과 함께 여성‘가족’부가 되고,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통합하여 여성가족‘청소년’부가 되려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어떤 점검도 하지 않은 채 겉잡을 수 없이 내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산 1조원 시대, 부처는 커졌다 2001년 1월 29일 여성부가 출범했을 때 한국여성의 권리신장에 한 획을 긋는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만, 사실 처음부터 여성부는 고유의 사업을 찾지 못해 헤매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여성부는 기존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담당했던 성차별 구제업무와, 보건복지부의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와 성매매 관련 업무를 이관받고, 노동부에서 ‘일하는 여성의 집’ 업무를 이관 받았습니다.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와 같은 대(對)여성폭력 관련 업무과 성차별 피해 구제 업무는 매우 중요한 여성사업이긴 하지만, 이러한 업무는 우리가 당초 여성부에 기대했던 여성정책담당 중앙부처로서의 역할을 대표하거나 포괄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성의 삶과 권리, 그리고 차별문제는 모든 제도와 관련이 있기에, 여성정책 담당부처에 요구되는 역할은 정부 각 부처의 모든 정책과 업무에 대해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국가의 모든 사업에 있어서 ‘성인지적’ 정책이 시행되도록 개입하고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 부처가 서로 협조하지도, 소통하지도 않는 한국 행정기관의 특성 때문인지, 여성부의 역량부족 때문인지, 그러한 역할에 주력하지 않아서인지, 기대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여성부 안에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부처가 힘이 없다, 업무(조직과 예산)를 늘려서 힘을 키워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늘린 업무가 2004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이관 받은 영유아 보육업무입니다. 5백억 원대의 예산을 집행하던 여성부가 보육업무를 이관해오면서 2007년 잡혀 있는 보육예산만 1조원대에 달하게 됐으니, 힘이 많이 커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보육업무를 가장 주된 사업으로 진행하게 된 여성부는 ‘저출산 고령화’가 유행어가 된 2005년에 가족업무를 담당하겠다면서 여성가족부라고 이름까지 바꾸었습니다. 반면 주요한 여성사업이었던 성차별 구제 및 개선업무는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됐습니다. 내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을 보면 보육(1조446억), 가족(433억), 여성권익증진(325억) 순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예산 1조원 시대 개막”됐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지만, 그러한 예산 편성은 “공보육의 강화와 다양한 가족의 복지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부녀자부’ 패러다임 아닌가 이쯤 해서 여성가족부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해볼 필요를 느낍니다. 영유아 보육과 가족 복지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현재의 여성가족부를, 성 평등한 정책을 실현한다면서 출범한 기관(Ministry of Gender Equality)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보육업무와 가족업무는 여성들의 권리와 많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여성들의 현실과 목소리를 많이 반영한 정책을 실시하면 좋겠지요. 그러나 여성들의 권리와 상관관계가 많지 않은 업무도 있나요? 애초에 여성부가 고유의 업무 영역을 찾지 못하고 새롭게 발굴해 내지도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서 다른 부처로부터 업무를 이관해와야만 했다고 한다면 왜 노동, 법무, 환경, 국방, 교육, 외교업무가 아닌 ‘보육’과 ‘가족’업무가 여성부의 고유업무가 되어야 했을까요. 거기에 이젠 ‘청소년’ 업무까지 합하겠다고 하는 것일까요. 국가행정기관은 시민사회와는 다른 ‘생리’를 가지고 있으니, 외부에서 모르는 소리 말라고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부 각 부처가 고유의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려면 커다란 테두리를 이루는 패러다임이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여성청소년가족부가 어떤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가 여성부 신설 당시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에 얼마나 부응하는지 혹은 부응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선 평가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과 보육(아동), 청소년, 가족업무를 담당하는 정부부처의 위상은 성 평등이나 성인지적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기실은 여성을 출산과 양육의 담당자로 간주하거나, 혹은 사회가 아동이나 청소년을 바라보듯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간주하고 정책을 펴는 전근대적인 ‘부녀자부’로서의 패러다임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보면 그러한 우려가 더욱 굳어집니다. 여성가족부와 청소년위원회를 통합하겠다는 배경으로, “자녀의 출산과 양육, 청소년 보호 육성이 생애 발달 주기 과정에서 유기적이고 불가분의 관계이어서 상호 연계하여 정책을 수행할 필요가 크다는 판단 하에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청소년과 여성의 “보호 육성체계”를 가족단위로 통합할 수 있게 되어 좋다는군요. 이처럼 여성을 아동, 청소년과 더불어 가족 안에 엮으면서, 노인 업무는 왜 못 가져왔는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여성청소년가족부에 관한 소식은 2001년 출범한 여성부가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했던 여성정책 주무부처로서의 성격과 위상을 자리잡고 성장시켜 나가기는커녕, ‘성 평등’(Gender Equality)을 떼어버린 다른 위상의 부처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산이 커지고 조직이 확대되는만큼 부처의 힘은 커졌겠지만, 그 기본을 이루고 있어야 할 정체성이 희미해졌다면 힘을 키워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과연 누구를 위해 힘을 키우는 것입니까. 필요한 여성정책들은 많은데… 지금의 상황에선, 우리 사회의 성별 불평등을 시정하고 여성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오히려 여성부 이전에 존재했던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정도의 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물론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다를 바 없는 구성원들로 채워진 여성가족부와는 달리, 최소한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여성정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이를 추진해나갈 인력을 확보한다면 말입니다. 여성정책이란 여성폭력근절, 피해자보호, 성 산업 축소, 여성인력개발 등으로 대표될 수 없으며, 보육이나 가족 복지서비스 혹은 여성자원봉사 업무 등이 여성정책이란 이름으로 주요하게 실시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엄밀히 말해 여성정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라기보다, 모든 정책이 성 평등하게 만들어지고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업무가 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안타깝고 또한 궁금합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2등 시민’으로 대우 받고 있는데, 왜 여성정책 담당 중앙부처가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해 보육, 가족, 청소년 업무로써 몸집을 갖추게 된 것일까요? 일례로, ‘여성’이라는 이름의 계급으로 인해 노동권을 박탈당하거나 침해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정부 어느 기관에서도 이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있는데 말입니다. 만약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가 할 일 아니다’ ‘현실적으로 뾰족한 수가 없다’라는 답변이 나온다면, 이제 여성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기관으로서 여성가족부 혹은 여성청소년가족부가 아닌 다른 위상의 조직 또는 다른 방도를 모색하고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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