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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남성병사가 주역으로서 활약하는 잔치도 아니고, 여성은 전쟁의 단순한 피해자도 아니다.” 명지대학교 권인숙(방목 기초교육대학) 교수는 여성이 전쟁과 어떻게 관련을 맺는가에 대해 “주변적 피해자의 한정된 규정 속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못해왔다”고 입을 뗐다.
지난 9월 28일 국가인권배움터에서 “역사와 전쟁 그리고 여성”이라는 제하의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일본군위안부’ 사례를 비롯해 이슬람 여성인권 사례, 오키나와, 버마, 베트남 사례가 차례로 발표됐다. ‘일본군위안부’ 외 조선여성들이 겪은 피해 박정애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일본에 의한 침략전쟁에서 식민지 조선여성이 겪었던 경험에 대해 발표했다. 박 조사관은 “당시 여자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위안부’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협소한 인식을 지적하며, “위안부 외에 전시기 조선 여성이 겪은 성적 공포와 피해 사례에 대해” 이야기했다.“1926년생인 이모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에서 면에서 뽑혀 훈련을 하러 갔다가 군부대에서 후쿠다라는 장교가 집으로 유인해, 차를 끓이고 집 청소를 시키면서 강간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강간을 당해 임신을 했는데, 임신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대에 지원했다. 일본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뼈도 없어 보이고 이상했는데 아마 매독에 감염된 탓인 듯 했다.”(사례1) “1942년 일본 나가사키 방직공장에 동원됨. 방직공장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강제로 군인을 상대해야 했음. 그 뒤 만주로 가서 군대 ‘위안소’에서 위안부 생활을 함.”(사례2) 박정애 조사관은 전시훈련, 공장동원 등에서도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뿐 아니라 전쟁 시에 인신매매 피해, ‘처녀공출’에 대한 공포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가 위안부 피해 외에 전시에 여성이 겪는 성적 피해에 대해 얼마나 피해로서 인식하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출을 피하기 위해 조혼을 하고, 중국 공장으로 동원되는 등 ‘처녀공출’로 인한 공포감이 광범위하게 존재했고 그러한 “공포로 인해 (여성들의) 삶의 선택의 폭이 좁았다”는 것이다. ‘히잡’을 통한 여성 몸에 대한 통제 한편, 이슬람 사례를 발표한 조희선 명지대(아랍지역학과) 교수는 “아랍어에서 ‘명예’를 의미하는 단어 ‘사라프(sharaf)’는 ‘여성의 정조’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이것은 “남성의 명예나 가족 혹은 가문의 명예가 바로 여성의 정절에 달려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슬람 여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적군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도 그것이 전쟁범죄로서 간주되기는커녕 집안의 남성들에 의해 살인을 당할 위협에 놓이는 등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희선 교수는 여성의 ‘히잡(hijab, 가리개)’을 둘러싸고 서구세계와 이슬람세계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해 주목했다. 즉, 서구사회는 이슬람세계의 서구식 개혁을 도입시키기 위해서 이슬람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히잡 벗기기’에 주력하고, 이에 이슬람 사회 안에서는 서구에 대한 저항으로 히잡에 대한 지지와 강요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에 의해 전쟁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는 히잡이 강요되는 현실이 대두되고, 히잡을 착용되지 않은 여성들은 이슬람주의자로부터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조희선 교수는 “서구와 이슬람세계의 분쟁이 지속되는 한 가족, 가문, 부족, 국가의 ‘명예’를 짊어지고 있는 무슬림 여성의 인권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군기지 반대운동 오키나와 사례발표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기노자 에이코씨(오키나와 평화회)는 “우리는 일본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오키나와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부른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오키나와는 원래 비군사의 ‘류큐 왕국’이었는데, 1878년에 일본정부가 무력으로 침입했다고 전했다. 1879년에 ‘오키나와현’이란 이름으로 일본 국가에 편입된 후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말을 쓰면 처벌을 받고 일본어를 쓰도록 했으며, 천황에 충성심을 가지는 일본인이 되도록 강제되었다.”그 후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말기 3개월에 걸쳐 일본-미국군의 지상전에 말려들었고, 이때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 후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기지를 건설하고, 이후 27년 동안 미군 기지가 주둔하고 있다. 기노자 에이코씨는 “현재 미군 주둔 하의 피해뿐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 일본과 미국의 군대에 의한 폭력 문제에도 눈을 돌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이 자리에서 미군에 의해 성폭력피해를 당한 한 여성의 편지를 보여주며, 오키나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어 외치게 되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2005년 한 미군 병사가 교회에 가는 10세 소녀를 칼로 위협하며 강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 여성이 21년 전 자신의 강간경험을 떠올리며 오키나와 지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21년 전에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미군 병사 3명에 의해 공원에 끌려가 강간당했다. 그는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말하게 된 경위에 대해 ‘내가 그때 경찰에 가서 신고했었으면 모두가 위험을 알고 신경 쓰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초등학생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뒤늦게 증언을 했다. 또한 오키나와 지사에 쓴 편지에서 “하루빨리 기지를 없애달라, 오키나와는 미국과 미군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버마 참가자, “한국기업 버마군부에 투자 말라” 현재는 태국에서 활동 중인 랑라오량원(SWAN) 씨는 버마 사례를 발표하면서, 태국은 인구 54만 명인 국가인데 군부독재 정부에 의해 “지난 10년간 50만 명으로 군대규모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가예산의 40%가 넘는 막대한 액수가 국방에 지원되고 있고, 반면 “GDP의 1%만이 보건과 교육에 투자되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이런 사정으로 버마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50개국 중 하나다. 랑라오량원 씨는 버마 도처에서 군대에 의한 강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증언하고 “어떻게 군부가 아무런 처벌 없이 성범죄를 포함한 인권유린을 계속 저지를 수 있는지” 물음을 던졌다. 이어 “많은 나라들이 버마와의 관계 때문에 인권유린을 간과하고 있는” 데에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버마에서 최대 투자자 중 하나”라며 “한국과 버마는 외교수립 26주년을 맞은 지금 버마 군부와 함께 34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100개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버마에 대한 투자는 군부가 저지르는 인권유린에 직접적인 공범”이라는 것. 모든 투자는 군부와 공동투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고 “군부가 외국투자를 통해 더 많은 외화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무기를 확보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랑라오량원 씨는 특히 버마에서 최대 투자자는 한국의 기업 “대우”라고 언급하면서 “대우는 투자뿐 아니라 무기를 버마 군부에 판매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버마의 민주적인 개혁을 위해서 한국기업이 버마 군부에 대해 투자하지 않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과 한국전쟁 베트남 사례로는 두옹 누 칸 퀸(나와 우리) 활동가가 참석해 미군군과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에 대해 말했다. 그는 베트남 중부에 있는 빈딩성, 꽝남성, 꽝응아이성, 푸옌성, 칸호아 등에서 한국군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고 보고했다.특히 한국의 시민단체 ‘나와우리’가 베트남을 찾아 생존자 증언을 통해서 확보한 두 지역의 사례를 언급하며, 미군과 한국군에 의한 여성들의 피해는 “강간 후 살해”가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강간 후 나무에 매달아 칼로 배와 음부를 찔러 죽이는 경우도 있었고, 임신 8개월 된 여성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고 불에 태운 사례, 여성들을 발가벗겨 한데 묶은 뒤에 우물에 빠트려 죽인 사례, 미성년을 강한 사례 등 한국군에 의해 이뤄진 잔인한 민간인 학살의 행태를 고발했다. 이날 국제심포지엄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죽고, 고통과 피해를 당하는지에 대해 아시아 각국 여성들이 모여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공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권인숙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전쟁이 많은 인명피해와 이산가족 등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서 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보여주는 연구가 거의 전무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전쟁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념과 민족을 경계로 갇혀있는 까닭이다. 권 교수는 “이념에 몰입한 전쟁의 해석에서는 성별차이, 혹은 계급차이에 의해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게 전쟁을 겪었고,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간과하게 된다고 말했다. 50여 년 전에 경험한 전쟁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그 존재가 드러난 적이 없다. 여성들이 어떻게 전쟁을 경험했는지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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