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설에도 ‘질감’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문체, 소설에서 그려내는 풍경이 전달하는 분위기, 등장인물의 대사나 얼굴 생김새, 소재 등이 모두 모여 어떤 구체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만 같아서다.
물론 논리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읽다 보면 소설 속 세계의 ‘질감’이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뒷골목과 폐허로 변해가는 거대한 저택, 광기어린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서로를 속고 속이며 사랑에 빠진 두 여자의 반짝이는 로맨스가.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소매치기와 장물아비들의 소굴에서 살아온 수는 밝고 쾌활하며 건강하게 애정을 표현할 줄 안다. 반면 모드는 나약하고 부서질 것처럼 가녀린 몸을 지닌 ‘순진한’ 얼굴로 수의 동정심을 받지만, 실은 잔인한 삼촌 아래에서 힘겹게 살아온 탓에 매사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며 독한 마음을 품은 채 살아왔다. “착하기도 하지”라는 부드러운 수의 말과 따스한 포옹에 음울한 모드는 당연하게도, 마음을 차차 열어간다.
모드가 입은 페티코트, 캐미솔 등 겹겹이 덮인 빅토리아 숙녀들의 속옷이나 비밀 서랍에 든 어머니의 초상화처럼 여성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가 지닌 매력 또한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들이 처음으로 입을 맞추는 순간 또한 달콤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수는 그 느낌에 대해 “어둠과 키스하는 듯했다. 마치 어둠에 생명이, 형체가, 맛이, 온기가, 부드러움이 있는 듯 했다”라고 느낀다.
모드와 수 커플의 아슬아슬 로맨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미스터리로 처리하여 흥미진진한 플롯은 그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와 결합하여, 더욱 빛을 발휘한다. 빅토리아 시대는 흔히 영국의 부르주아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완성된 시대로, 핵가족의 규범이나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 등이 극도로 보수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호기심이 수많은 포르노 서적들을 통해 팽창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 시대에 발행된 수많은 엽서들, 특히 페도필리아를 연상케 하는 어린아이들의 누드 엽서 등은 성에 대해 엄격하기만 했다는 빅토리아 시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에 대해 표면적으로 눌러놓았던 만큼 현대의 눈으로 보면 매력적일 정도로 기묘한 방향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삼촌의 친구들은 모드가 삼촌 때문에 고되게 일하고 있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그 텍스트가 모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기막힐 정도로 관심이 없다. 심지어, 소설 후반부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모드가 삼촌의 낭독회에 왔던 포르노 소설 제작자 호트리를 찾아가 포르노를 써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그는 ‘숙녀’가 포르노를 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모드를 감금시설로 집어넣으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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