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 두 여자의 반짝이는 로맨스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6/10/10 [19:02]

빅토리아 시대 두 여자의 반짝이는 로맨스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김윤은미 | 입력 : 2006/10/10 [19:02]

 

▲ BBC 드라마로 제작된 <핑거스미스>

때로는 소설에도 ‘질감’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문체, 소설에서 그려내는 풍경이 전달하는 분위기, 등장인물의 대사나 얼굴 생김새, 소재 등이 모두 모여 어떤 구체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만 같아서다.

 

물론 논리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읽다 보면 소설 속 세계의 ‘질감’이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뒷골목과 폐허로 변해가는 거대한 저택, 광기어린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서로를 속고 속이며 사랑에 빠진 두 여자의 반짝이는 로맨스가.

어쩌면 이렇게도 흥미를 돋우는 소재들을 탄탄한 플롯으로 잘도 버무려 놓았을까. 우선 주인공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모드와 수 가운데 누가 나의 취향인지 한마디씩 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두 캐릭터는 성격이 다른데다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소매치기와 장물아비들의 소굴에서 살아온 수는 밝고 쾌활하며 건강하게 애정을 표현할 줄 안다. 반면 모드는 나약하고 부서질 것처럼 가녀린 몸을 지닌 ‘순진한’ 얼굴로 수의 동정심을 받지만, 실은 잔인한 삼촌 아래에서 힘겹게 살아온 탓에 매사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며 독한 마음을 품은 채 살아왔다. “착하기도 하지”라는 부드러운 수의 말과 따스한 포옹에 음울한 모드는 당연하게도, 마음을 차차 열어간다.

물론 그 과정을 맛깔스럽게 그려낸 것은 지은이의 몫이다. 어두운 방과 복도를 배경으로, 아씨 모드와 하녀 수는 조금씩 친해진다. 특히 아씨와 하녀 사이라는 둘의 관계가 흥미롭다. 수는 모드의 옷을 입혀주고 벗겨주며 그녀의 몸을 보고, 모드가 악몽을 꾸자 함께 침대에 눕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들의 친밀함은 에로틱한 감정으로 쉽게 발전한다.

 

모드가 입은 페티코트, 캐미솔 등 겹겹이 덮인 빅토리아 숙녀들의 속옷이나 비밀 서랍에 든 어머니의 초상화처럼 여성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가 지닌 매력 또한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들이 처음으로 입을 맞추는 순간 또한 달콤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수는 그 느낌에 대해 “어둠과 키스하는 듯했다. 마치 어둠에 생명이, 형체가, 맛이, 온기가, 부드러움이 있는 듯 했다”라고 느낀다.

▲  사라 워터스 <핑거스미스> (미국판 원서) 표지

모드와 수 커플의 아슬아슬 로맨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미스터리로 처리하여 흥미진진한 플롯은 그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와 결합하여, 더욱 빛을 발휘한다. 빅토리아 시대는 흔히 영국의 부르주아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완성된 시대로, 핵가족의 규범이나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 등이 극도로 보수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호기심이 수많은 포르노 서적들을 통해 팽창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 시대에 발행된 수많은 엽서들, 특히 페도필리아를 연상케 하는 어린아이들의 누드 엽서 등은 성에 대해 엄격하기만 했다는 빅토리아 시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에 대해 표면적으로 눌러놓았던 만큼 현대의 눈으로 보면 매력적일 정도로 기묘한 방향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여성의 몸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여성 간의 사랑은 포르노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면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양면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을, 당대 사회의 온갖 모순이 제대로 결합된 모드의 삼촌 릴리와 그 친구들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낸다.

릴리는 스스로를 사회의 ‘독’이라고 지칭하며 수많은 포르노그래피 서적들을 모은다. 그리고 그 서적들의 연감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과학’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을 논하는 그는 포르노 서적의 독자인 친구들을 불러 모은 가운데 모드에게 낭독을 시킨다.

 

삼촌의 친구들은 모드가 삼촌 때문에 고되게 일하고 있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그 텍스트가 모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기막힐 정도로 관심이 없다. 심지어, 소설 후반부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모드가 삼촌의 낭독회에 왔던 포르노 소설 제작자 호트리를 찾아가 포르노를 써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그는 ‘숙녀’가 포르노를 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모드를 감금시설로 집어넣으려든다.

긴장감 넘치는 전반과 중반에 비해, 결말은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아무튼, 모드와 수는 서로를 속이고 속이면서 결국에는 결합할 운명이니까. 오히려 모드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업이 더욱 흥미롭다. 삼촌과 그 친구들 앞에서 소녀풍의 작은 옷을 입고 ‘낭랑한’ 목소리로 포르노를 읽어야 했던 기구한 인생의 모드. 그녀는 수에 대한 욕망이, 자신이 읽었던 포르노 서적들에 의해 언어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겪으며 지독하게 괴로워한다. 사실 그녀가 당면한 상황은, 이미 이성애자 남성의 언어에 의해 성적 욕망의 표현이 잠식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모드는 ‘이 방면에 소질이 있다’고 웃으며, 수에 대한 욕망을 포르노로 표현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어 뒤통수를 친다. 마치 세상의 수많은 남성용 포르노들이 어떻게 뒤집히는지 당당하게 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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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6/10/20 [17:32] 수정 | 삭제
  • 동성애와 이성애의 가치정도를 따지는 글은 아닌거 같습니다. 페미니즘안에서 '낭만적인 이성애'라는 사랑지상주의는 이성애와 가부장제를 공고히하는 산물로 종종 담론화되어왔습니다. 이성애가 정상가치로 서면 그 정상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것들은 모두 비주류가 되어버리고 애도할 수 없는 상실이 되어버립니다. 정말 기자분이 동성애는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썼다면, 기자분은 다른 성적소수자(트랜스젠더, 양성구유자 등등)의 사랑은 열등하다고 이야기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좀 더 사랑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자 한건 아닐까요. 이미 이성애의 로맨스는 세상의 도처에서 이야기되고 있잖습니까. 괜한 심술로 하향평준화를 지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 이야 2006/10/11 [19:44] 수정 | 삭제
  • 사라 워터스~ 반가워라.
    유명한 소설이 들어오는 군요.
    번역은 잘 되어있는지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사서 볼 거니까요!
  • .... 2006/10/11 [09:41] 수정 | 삭제
  • 저번 기사에는 사랑지상주의에 비난하던데 이번에는 오히려 사랑을 옹호하네요.
    참 이상합니다.

    사랑에 대해 폄하하는 것이라면 이성애, 동성애 모두 폄하하는 걸로 간주할께요.
    사랑이 단지 환상일뿐이라면 이성애든 동성애든 모두 환상일뿐이지요.

    이성애는 별거 아니고 동성애는 대단하다는 식의 글이 아니기를 바라겠습니다.
    어떤 사랑이든 다양한 사연이 있기 마련인데, 단 한면만을 보고 모두 이렇다 판단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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