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침묵을 깨는 사람들

영화감독 윤종빈과 예비역 중령 피우진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12/27 [06:58]

군대이야기, 침묵을 깨는 사람들

영화감독 윤종빈과 예비역 중령 피우진

조이여울 | 입력 : 2006/12/27 [06:58]
군 내무반의 실상과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가 제작되어 나왔을 때,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수많은 예비역들에 의해 숱하게 떠돌던 군대 이야기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다 아는, 그러나 이제야 드러난 이야기

영화는 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군의 기억, 정확히 말해 징집된 군인들의 내무반 생활에 대한 기억은 사실 그대로 드러나지 못한 일종의 ‘상흔’이고, 국가안보라는 이데올로기와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인간)가 된다’는 식의 소위 남성성(남성다움)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거나 포장되거나 혹은 삭제된 기억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가 어떤 곳인지, 징병제가 어떤 것인지, 남성성이 무엇인지, 나아가 군사주의화 된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이 무엇인지 읽어낼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무엇보다 관객이 이 영화에서 군대에 속한 사람들 개인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영화를 통해 구타와 괴롭힘, 성추행, 인격모독, 폭력적인 위계가 불문율로 통하는 군대에서 그 안에 속한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고, 구조적 피해자이면서 그 구조를 재생산해내는 가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문제가 또한 중요한데, 대부분 망각하거나 사회적 통념에 기대어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렇다면 거대한 조직 앞에 힘없는 개인인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 대학교에서 군대문화와 군사주의에 대한 강연을 했을 때, 누군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 그보다 더 거대한 군사주의 문화에 저항하는 개인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군 의문사와 폭력의 실상을 알리는 것도, 군축운동도, 징병제를 반대하며 모병제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도, 양심적 병역거부도, 일상의 군사주의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도 모두 포함됩니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자>와 같이 영상을 통해 군대 이야기를 하는 방법도 그 하나일 것입니다. 예비역들은 대부분 이 영화를 보고 군대가 실제로 저러했노라고,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다들 아는 이야기라고 소회를 밝힙니다. 윤종빈 감독의 큰 역할은 바로 그,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아는 군대 이야기를 영상기록을 통해 ‘드러냈다’는 데에 있습니다.

피우진, 여군의 목소리를 내다

징병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대 이야기에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에 대해 기록을 통해 ‘드러낸’ 사람이 또 있습니다.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에세이집을 쓴, 지금은 예비역이 된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입니다.

피 중령을 만난 건 9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몇 해 전 유방암 선고를 받고 양쪽 가슴을 절제한 것이 빌미가 되어, 정년을 몇 해 남기지 않은 채 강제전역 위기에 처한 피우진씨는 ‘군에 모든 것을 다 바쳤는데 이대로 쫓겨날 수는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당시 군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유방이 없다는 이유로 여군의 조종사 자격을 해임하는 인사규정보다도, 멀쩡한 사람을 군 병원에 강제 이송해 검사나 치료도 없이 1년여 간 감금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피우진씨는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군 생활을 돌아보는 글을 썼는데, 출판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군대생활에 대한 피우진 중령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에 복귀하는 것이 중령님이 지금 가장 원하는 일이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 때 쓴 글이 중령님의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나 우리 군에 있어서나 더 중요할 것 같네요. 저도 빨리 읽어보고 싶습니다.”

후배 여군들 사이에서 평가 받고 있듯이 피우진 중령은 솔직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 그가 쓴 에세이엔 군대의 ‘소수자’인 여군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이 가감 없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군을 지원한 여성들에게 실제론 ‘치마’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도리어 ‘여자라고 우대 받길 바라지 말라’고 큰 소리치는 우리 군의 성차별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여성’임을 회의하도록 만드는 군의 일상, 여군들을 ‘꽃’으로 바라보면서 위계를 이용해 성희롱을 하는 남군 장교들의 행태,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피우진씨처럼 ‘감히’ 저항하는 여군과, 후배 여군들을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성 상납에 일조하는 여군 장교에 대한 이야기, 떠들썩했던 여군 첫 ‘별’의 영예를 간호병과에 준 것에 대한 실망감 등.

사실 그가 기록한 사건들과 군대생활은 여군들 사이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서, 군대 내 성차별에 대해 취재를 하던 시절에도 몇 번이나 접했던 이야기들입니다. 다만, 우리 군과 사회의 보수성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러한 이야기가 직접 여군의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피 중령의 책을 읽으며 통쾌한 기분마저 느꼈습니다.

차별과 인간존엄성의 문제 일깨워

최근 피우진 중령이 제기한 퇴역처분 취소소청이 기각돼 결국 피 중령은 강제퇴역을 당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마 지금 피우진씨가 대항해 싸우고 있는 것은 전역조치만은 아닐 것입니다. 군에서 겪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책이 출간됨에 따라, ‘잡음을 원치 않는’ 군 조직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조차 과거의 일일 뿐인데 왜 군의 치부를 드러내느냐 하는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우진 중령의 군대생활 경험은 ‘과거의 일일 뿐’도 아니거니와, 과거의 일이라 해도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기에 반드시 기록되고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군을 사랑하고 군인이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는 그가 군에 들어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아직 생소한 개념인 ‘군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굳이 양쪽 가슴절개를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일부러 의사에게 유방을 제거해달라고 요청하고, 수술을 받고 나니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여성’임을 거부했던 여군이, 사회적으로 ‘여군’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은 목소리를 낸 장본인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 이를 통해 우리 군과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차별과 억압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으며, 그 속에 속한 개인이 겪는 갈등과 모순, 적응 그리고 저항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군을 인간존엄성의 문제, 차별의 문제, 삶의 문제와 연결시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군 기강을 다잡기 위해 ‘성적 군기문란 방지규정’을 만들거나, 총기사건을 막기 위해 편의시설을 확충하거나, 하루라도 장가를 빨리 보내기 위해 군복무 기간을 단축시키는 등의 발상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군대와 군사주의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이러한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침묵하거나 감추어진 사실을 드러내고, 성찰하며, 논의해나가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 같습니다. 그러나 피우진 중령과 같은 사람이 있기에,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한 군대 이야기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오르고 더는 후퇴하지 않으리란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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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람쥐 2006/12/30 [15:23] 수정 | 삭제
  • 군대와 인권은 극과 극인 것 같아요.

    몇번 더 읽어봐야겠네요.
  • ilda 2006/12/28 [14:13] 수정 | 삭제
  • 기사에서 정정했습니다.
  • 루나 2006/12/28 [03:37] 수정 | 삭제
  • 좋아하는 영화에, 궁금했던 책 얘기여서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음. 그런데요..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찍은 분은 윤종빈 감독 아닌가요..?
    윤종찬 감독은 '소름'을 찍은 감독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헷갈리신 게 아닌지 사실관계 확인 부탁합니다.
  • lab 2006/12/27 [17:13] 수정 | 삭제
  • 그 책 서정적인 표지에 제목도 그랬는데 책의 내용이 예상밖이라서 놀랬다.
    조금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노골적일 줄은 몰랐던 것 같다.

    피우진 중령은 대단한 여장부인 것 같다.
    그런 사람마저 군에서 강제퇴역까지 당하게 되다니 슬프다.
    어디서나 꿋꿋하고 당당하게! 건강하게! 사시길 바란다.
  • 바라 2006/12/27 [13:23] 수정 | 삭제
  • <용서받지 못한 자>를 우연한 기회에 보고서, 머리를 맞은 기분으로

    며칠 동안 주인공들의 입장(그 중 두 사람)이 되어서

    기분이 이상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군대란 곳이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고, 거길 살아나온 사람들도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들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여군의 경험은 더 생소한데 피우진 중령의 글도 읽어보고

    군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