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아도 유독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의 식량난으로 국경을 넘어 우여곡절 끝에 남한사회에 정착하게 된 탈북자들, 새터민이다. 이번 겨울이 들면서 “북한에 96년, 97년과 같은 식량난이 다시 닥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요즘 탈북자들끼리 식량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애만 태우고 있다.” 춘천에 거주하는 새터민 홍지영(가명, 40대)씨는 가족을 북한에 두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특히 지난해 연말에 “97년도와 같은 대량 아사가 다시 온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다음부터는 밤에 잠이 안온다고 한다. “북한 올해 식량난 다시 온다” 극심한 기아로 그가 식량을 찾아 유랑을 하고, 두만강을 넘은 것이 1997년 이맘때였다. 그때의 기억을 “악몽과 같이 끔찍했던 시절”이라고 말하면서, 두고온 가족들에게 다시 닥칠 재앙을 생각을 하면 무척 괴롭다는 것이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은 “학생들이 소식을 전해듣고는 북에 있는 가족들 걱정으로 연일 무거운 심정을 서로 얘기한다”고 말했다. 연말이라고 분위기가 들뜨기보다 “대량 아사 사태가 다시 예고된 가운데 연일 침통한 분위기”라고 한다. 새터민들의 우려처럼, 현재 각계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식량위기가 매우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2006년 북한 식량상황을 진단하면서 “1990년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난으로 300만명의 아사자를 낳았을 때와 비교해 그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식량부족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북지원단체 ‘좋은벗들’ 법륜 스님은 “현재 북핵 등 정치, 군사적 이슈에 매달려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외면한다면 1995~1998년의 대량아사보다 더한 참사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2006년 북한의 식량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고 나섰다. ‘좋은벗들’의 정보에 따르면, 2006년 북한의 생산량을 잡아보았을 때 280만톤에 그쳐, 중국 등 외부에서 지원하기로 확정된 식량을 합친다 하더라도 “대량 아사를 피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홍수, 가뭄 피해로 생산량 급감 북한의 인구는 현재 약 2천만명으로 추산된다. 필요한 식량을 산출하면 유엔기준의 정상적 생활을 위해서는 640만톤이고, 현재 북한의 ‘정상적인 배급’에 해당되는 유엔기준의 최소량은 520만톤이다. ‘좋은벗들’에 따르면 “30% 정도의 주민에게 영양부족 상태가 나타나지만 그래도 아사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의 평년작 수준인 430만톤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여름에 입은 홍수피해와 가뭄 등의 이유로 흉년이라서 생산량이 많이 떨어졌다.” 따라서 법륜 스님은 430만톤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잡더라도 “대량 아사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150만톤 이상의 외부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계산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1990년대 보다 더 극심한 식량난을 겪을지 모르는 상황에 몰려있지만 주변의 상황은 최악이다. 미사일, 핵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상태다. 또, 북한 식량지원 문제와 북한 주민의 생존권 문제는 철저히 정치화 되어 있어, 최소한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밥’의 문제가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접근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한편 “인도적 위기 상황”이라는 지적이 있다. 국내적으로도 보수층의 여론은 “식량 지원은 우리가 쓸 카드”라며 대북지원에 대해 냉랭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계속되는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 주민들의 역량으로는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1990년대 북한의 기아난이 닥쳤을 때는 30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배고픔으로 죽고, 처절하게 조-중 국경을 넘나드는 탈북자들을 보고 난 다음 뒤늦게서야 남한의 시민사회가 움직였다. 취약계층 및 지역에 식량 지원할 방도 모색해야 그때와 달리 지금은 북한 주민들의 사정과 북한 소식과 정보가 보다 정확하게 남한 시민사회에 바로 전달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처한 실상이 이토록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전달되는 상황에서 남한 시민사회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에 노력할지는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먹는 문제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런 북한주민들을 생각한다면, 대북 식량지원을 둘러싼 정치적인 시선과 오해를 거두고, 북한 주민들의 기아난을 해소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식량이 지원, 분배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좋은벗들’은 “식량지원하면 군량미로 쓴다”는 등의 남한 사회의 오해와 냉소를 불식시키기 위해 북한의 배급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4개의 배급순위가 있는데, 4순위인 일반 주민에까지 지원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식량이 지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북한 당국도 이제까지 꾸준히 제기되어온 “분배 모니터링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규정을 수용해, 북한 사회에서 보다 취약한 계층 및 지역에 식량을 긴급하게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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