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승준씨에 대한 입국금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유씨가 약혼녀의 부친상으로 인해 26일 새벽 입국하게 되면서 이 문제가 더욱 불붙고 있다. 유승준 씨는 지난해 2월 병역기피의혹으로 입국이 금지됐다. 이 문제는 지난 달 유씨가 법무부장관, 병무청장, 국가인권위원회 앞으로 입국을 허가해달라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불거져 나왔다.
25일 밤 방영된 SBS의 <뉴스추적>은 미국에 가서 유승준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젊은이의 선택'이라는 제목의 이번 방송분은 "2003년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병역의 의무는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공정한 병역제도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은 무엇인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SBS의 간판 시사 다큐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무색케 했다. 남자라면 꼭 한번?! 방송은 문신을 통한 고의적인 병역기피혐의자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이어 취재진이 미국에 있는 유승준 씨를 직접 찾아가 나눈 이야기와,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의견을 보여줬다. <뉴스추적>은 입국금지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보도하면서 '객관적인' 입장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자 했다. 그러나 프로그램 후반부로 갈수록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하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진행자는 병역의 의무가 가지는 무거움을 지적하면서 논산훈련소를 찾아간 취재내용을 전달했다. 입소식을 하고 있는 훈련병들에 대해 "(생략)푸른 제복을 입은 이 순간부터 마음만은 하납니다"라고 말하는 기자, "남자라면 (군대를) 꼭 한번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훈련병. 하강레펠 훈련, 도하 훈련, 화생방 훈련 등 여러 훈련들을 소개하고 훈련병들의 소감을 듣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갖게 했다. 기자는 "군 생활의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군대 안 온 친구들한테 씩씩하게 한마디 해봐요"라는 유치한 제안을 해서 "군대에 와봐야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고 무엇이 아쉬운지도 안다"는 답을 얻어냈다. '훈련소의 이별' 장면에선 "아버지 눈에 눈물을 보이게 합니다"라는 멘트를 날렸다. 훈련소 입소에 대해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당연히 치뤄야 할 또 하나의 성인식"이라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또 문신 때문에 해병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22살 강모씨에 대해 소개했다. 반드시 문신을 지워서 해병대에 입대하겠다는 그는 '장한 젊은이'로 부각됐고 카메라는 그런 그의 노력을 치하했다. 이어 강원도 최전선에 있는 부대를 찾은 취재진은 '군의 변화'를 담아내고자 했다. "군생활은 병역의 의무도 다하면서 자기계발도 할 수 있는 1석2조의 기회"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내무반을 찾아간 기자는 이병에게 "신고식, 했던 대로 한번 해보세요"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하기까지 했다. '여자친구에게 한 마디, 어머니에게 한 마디'를 주문하는 기자의 모습은 이 프로그램이 <우정의 무대>나 <신고합니다>가 아닌지 헷갈리게 했다. 취재방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었다. 병역기피혐의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군대 가고 싶어?"라고 반말로 묻는가 하면, 훈련병에게 말을 하다가 "거짓말하지 말고..."라는 발언을 하는 등 언론인으로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행을 보였다. 또 군부대 취재를 가면서 군복을 입고 가, '병영체험' 프로그램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정상적' 남성 기준이 배제하는 것 지금 <뉴스추적>의 시청자 의견 게시판은 본 방송이 유승준씨를 옹호했다면서 이를 비난하는 글들 일색이다. 이들은 유승준씨의 입국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면서 과도하게 흥분하는 '기이한 애국심'을 보이며 한 사람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본 방송에 대해 비판할 점은 그것이 아니다. 이 방송의 목적은 '유승준씨 편들기'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동정의 시선을 보이고 나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다, 요즘 군대는 좋아지고 있으니 젊은이들은 당당히 그 의무를 다해라. 그리고 병무청과 법무부는 병역기피자 단속을 잘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언론에서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수준이 이 정도여도 괜찮은 것일까. <뉴스추적>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고, 모병제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말로 일축했다. 대체복무 방안에 대한 논의들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병역기피 근절에만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본 방송에서는 여전히 '정상적인' 남성들에게만 군대 이야기를 할 자격이 부여됐다. 제목을 통해 군대에 가느냐/안 가느냐를 '선택'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그것을 선택할 권리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을 배제했다. 현역으로 군대 다녀온 사람만 대접 받을만하다는, 방송 전체에 깔린 생각은 '징병의 대상이 아닌'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들을 소외시켰다. 적어도 시사프로그램이 징병제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징병제도 자체를 성찰하고 이를 둘러싸고 진행되어 온 문제제기와 논쟁들에 대해 짚어보는 것은 기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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