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씨어터 수박’의 공연이 사랑받는 이유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

세미 | 기사입력 2007/01/21 [23:20]

‘명랑씨어터 수박’의 공연이 사랑받는 이유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

세미 | 입력 : 2007/01/21 [23:20]
명랑씨어터 수박은 창작뮤지컬 <빨래>로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작사상과 극본상을 타면서 주목 받고 있는 신생 창작집단이다. 덩치가 커진 뮤지컬들이 티켓 값을 올려 부르는 동안 명랑씨어터 수박은 작은 극장에서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만족한 듯 보였고, 비평가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이 모두를 그들의 편으로 만드는 것일까? 수박의 신작 <한밤의 세레나데>를 통해 사랑스러움의 이유를 엿보고 싶었다.

홍대 떼아뜨루 추 소극장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무대를 살펴보았다. 무대중앙 뒤편에는 레코드판이 빼곡히 꽂혀있는 DJ석이 있었고, 무대 왼편에는 허름한 순대국집처럼 보이는, 금방이라도 아저씨들이 들어올 듯한 미닫이문을 배경으로 둥근 탁자가 있었다. 미닫이문에 붙어 있는 엉성한 “순대국” 글자와 먼지 얼룩이 무척 사실적이었다. 간단한 무대였지만 비어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후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배우가 기타를 들고 들어왔다. 요즘은 연출가나 기획이 나와 공연 전 주의사항 및 부탁말씀을 드리는 대신, 배우가 연극의 한 장면처럼 공연 시작을 열어주는 경우가 많다. 이 배우도 공짜 팜플렛으로 관객들의 환심을 한껏 산 뒤 퇴장했다. 유쾌한 웃음과 함께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삼땡” 서른세 살 노처녀가 순대국집을 하는 욕쟁이 엄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둘은 매일 티격태격 싸운다. 엄마는 딸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노래한다고 새벽 2시에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 꼴이 한심하고, 딸은 순대밖에 모르는 억척스런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 게다가 딸이 도넛을 튀긴다는 순하게만 생긴 남자를 애인이라고 데려오니, 두 모녀가 화해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공연은 이들 두 사람이 대화를 시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공연 중간 중간에 관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연신 이어지는 익살스런 분위기와 재치 있는 가사들이 재미를 주었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대사는 탄탄했고, 겉멋 없이 소박한 연기가 매력적이었다. 꿈 장면에서 1970년대에 어울리는 신파조의 능청스런 연기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매끄럽게 진행되어 관객을 무리하게 하지 않는 편안한 공연이었다.

극 전반에 재미를 더하는 재치 있는 장치들이 있다. 한 예로 인터넷 방송을 할 때에는 DJ석 주변 벽에 영상을 쏘아 마치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듯한 효과를 냈는데, 인터넷 방송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극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아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그리고 CJ(cyber jocky)인 지선이 바람 피는 남자친구에 대한 청취자 사연을 읽으며 부르는 노래도 관객 반응이 좋았는데, 가사 속에 세상의 온갖 병들의 이름을 넣어 그 남자친구를 저주하는 게 신랄하면서도 귀여운 지선의 성격을 잘 보여주었다.

이 극의 매력을 하나 뽑으라면 ‘착한 복고’라 하겠다. 주인공이 인터넷 방송 디제이라는 사실만 빼면 공연 전반을 아우르는 분위기는 1970년대 복고풍이다. 시간은 현재라고 해도 배경인 순대국집은 1970년대 그 모습 그대로이고, 주인공의 방이자 DJ석 뒷벽에는 CD가 아닌 LP판들이 빼곡했다. 또한 공연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상 장면에서 통기타와 1970년대 스타일의 포크송, 나팔바지와 일부러 넣은 신성일과 엄앵란 풍의 대사들이 과거의 분위기를 잘 재현했다.

당시에 대한 엄밀한 복제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으로 패러디하려는 것 같았다. 의도대로 복고풍은 편안하고 그리운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실제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그 시대에 나오는 사람들은 악당이라 할지라도 어딘가 순진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이야기가 줄거리 상으로는 완전한 신파였는데도 거부감이 덜한 것도 이런 분위기의 덕이기도 했다.

엄마 역을 맡은 배우는 욕쟁이 할머니보다는 사랑스런 젊은 가수 역할에서 더 빛을 내었다. 젊은 시절의 그녀는 가련하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우리 엄마의 과거도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하고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수박의 공연이 사랑 받는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게 만들고, 적어도 사랑할 용기를 다져보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대사 중간에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다른 뮤지컬과는 달리 노래가 극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점은 좋았으나, 노래 속에 움직임이 부족한 것 같다. 움직임이란, 춤이나 율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리듬감을 살릴 수 있는 동작을 말한다. 배우들이 직접 기타를 치다 보니 대부분의 노래 장면에서 서거나 앉은 정지자세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관객입장에서는 노래가 무대와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아이러니 하게도 공연이 너무나 착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착한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다양한 색깔을 보고 싶었다고 할까. 현실의 농담 같은 악랄함과 남루함 속에서도 사랑과 고귀함을 찾아내는 공연을 보면, 현실을 용서할 수 있는 진한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랑으로 충만한 가슴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나아가는 경우에는 이질감을 느끼게 될 때가 많다. 사랑스러움에 깊이가 더해진다면 극이 주는 감동은 몇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앵콜 공연에서는 더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해본다.

딸에게 엄마는 아주 소중한 존재인가보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공연을 본 많은 딸들에게도 그런 것 같다. 작품 하나를 품어 공연으로 내놓는 것이 적은 공력으로 되는 일이 아닌데, 그걸 통째로 엄마에게 바쳐도 아깝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도 딸을 품어 세상에 내놓는 일에 그보다 더 많은 공력을 들였을 테니 공연 하나쯤 엄마를 위해 한다고 넘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엄마를 기리기만 하는 공연은 아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딸의 이야기다. 딸이 꿈을 꾸거나 말거나 엄마의 삶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딸이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엄마는 여전히 순대국집 욕쟁이 할머니니까 말이다. 한 편 정작 엄마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했던 사람, 그 꿈속 여행이 절실히 필요했던 사람은 딸이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아니라 딸의 얘기였다고 해서 전혀 탓할 필요는 없다. 딸이 엄마를 이해하고 보듬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엄마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인생을 통틀어 애쓰고 노력해야 할 만큼 어려운 도전이다. 하지만 하지 않고서는 마음 한 켠이 항상 먹먹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심한 마음에 동감해주는 착한 작가와 배우들이 만든 착한 연극이 사랑스러운가 보다.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 앵콜 공연은 1월 20일부터 2월 25일까지 문화일보홀에서 관람할 수 있다. (공연문의 02-3701-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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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셋 2007/01/23 [19:15] 수정 | 삭제
  • 근데 엄마와 함께 보게된다면 눈물이 날 지도 모르니까, 혼자 봐야겠어요. ^^
  • 2007/01/23 [16:22] 수정 | 삭제
  • 명랑씨어터 수박의 공연들이 대체로 수준이 높아서 눈에 띄더군요.
    좋은 창작공연이 단관공연 이후 앵콜공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기회를 갖게 되는 걸 보는 게 참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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