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또 하나의 신분제도, 불법체류자

여수 화재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7/02/13 [01:02]

[논평] 또 하나의 신분제도, 불법체류자

여수 화재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조이여울 | 입력 : 2007/02/13 [01:02]
올 초에 한 단체의 안내로 네팔 어린이노동자의 실태를 둘러보기 위해 네팔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떠났지만, 중간에 홍콩공항에서 항공기를 갈아타고 네팔공항에 도착했을 땐 다음 날 새벽녘이었죠. 공교롭게도 네팔 땅에 발을 딛고 처음 보게 된 장면은, 비행기 짐칸에서 여러 사람들이 관을 실어 나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동행한 사람이 ‘이주노동을 떠났다가 죽어서 돌아왔다’고 혼잣말하듯이 말했을 때, 그럴 것이라고 미리 짐작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새삼 놀랐습니다. 전체 인구의 무려 10% 가량이 타국으로 이주노동을 떠난다는 네팔사회에선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어떤 억울한 일을 겪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국외로 이주노동을 하러 간 사람들이 몇 해 뒤에 노동은 했으되 그에 따른 대가는 받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의 상처만 안고 돌아오거나, 심지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면, 남은 사람들은 분통하고 슬픈 마음을 삭힐 수가 없겠지요.

저임금, 임금체불, 산업재해, 학대와 폭행, 성폭력, 사망, 사회적 멸시, 협박, 체포, 감금, 범죄자 처우와 강제송환 등. 불행히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체류가 허용되지 않는 신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언론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단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시선만 통용될 뿐인 것 같습니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국외로 이주를 할 때 자신이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주한 사회에서 ‘불쌍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으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자, 한국인들의 문제이지요. 중요한 것은 인간이면 누구라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18살에 한국에 이주노동을 왔다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22살에 고국에 돌아간 이주노동자 인권운동가이자 네팔여성인 먼주 타파씨는 한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팔에서 나는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한국에 가서 머리를 버리고 왔다”고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건 ‘머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그런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죠. “일했는데 돈은 안 줘, 우리한테 막 욕해, 때리고 바보 취급 해, 손가락은 잘렸어, 내 인생이 이게 뭔가 했다.”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집단참사 소식을 듣고, 우리 사회의 인권수준과 점검장치, 그리고 구조적 폭력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있는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노동력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을 해왔고, 이들이 생산한 결과들 속에 담긴 땀에까지 국적을 따질 순 없을 것입니다.

세계화의 물살을 타고 자본은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어 환율이 높은 국가에서 낮은 국가로, 값싼 임금을 주고 최대한의 이윤을 내려는 기업들의 욕심과 함께 밀려들고 있는데, 정작 일자리를 찾아 수요를 찾아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해당 국가가 체류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법’이라는 신분을 얻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이유, 이들이 이주노동을 떠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도 거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소비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공공연히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고, 국가기관이 붙들어다 쇠창살에 가두며 안전장치도 되어있지 않은 곳에 감금해두고 강제로 쫓아내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인권의식이란 다른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주노동을 법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가, 허용해야 하는가 등의 논쟁 이전에, 사람의 존재를 앞에 두고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사람으로서의 대우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희생자들의 주검 앞에서조차 명복을 비는 대신 국적을 따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고 착취하는 고용주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수 화재참사를 바라보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슬퍼하며, 그 지인들과 유가족의 분노와 아픔을 잠시나마 함께 느껴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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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VentY 2007/02/16 [04:28] 수정 | 삭제
  •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겠죠.
  • 승경 2007/02/15 [09:17] 수정 | 삭제
  • 사고 순간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정말 슬프고 무섭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사회가 해외에서 일하러 온 외국 사람들을 '모시고 온'것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생계를 위해 외국으로 가는 것,
    그분들은 어쩌면 자신의 삶의 '개척자'였을 텐데요...

    애도를 표합니다.
  • absinthe 2007/02/14 [11:17] 수정 | 삭제
  • 어떤 사람들은 쉽게도 말합니다.
    불법체류자들이 노동시장을 싼값으로 잠식해서 한국인들을 실업으로 내몬다고.
    적개심을 드러내놓고 인종차별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 앞에서 할 말을 잃습니다.
    과거 한국의 취업이민 예나, 역지사지라는 말이나, 인권이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노동의 소외나..
    기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길이 있지만
    내 입술은 굳게 붙어서 어떤 발화도 거부합니다.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한편
    실업문제로 제대로 또하나의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팍팍한 현실이 갑갑해서겠죠.
    나와 너무나 다른 사고방식, 환경을 가진 사람과 논쟁을 하는 게 지쳐서겠죠.
    실제 처지가 바뀌지 않는 한 절대 바뀌지 않을 사람들의 인식구조가 슬퍼서겠죠.
    그렇네요, 분노와 슬픔과 답답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더이상 시달리고 싶지 않은
    제 자신이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언젠가 모두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 보라 2007/02/13 [14:12] 수정 | 삭제
  •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하는 민병대원을
    미국에서 살고 있는 불법체류자 가족과 함께 30일간 살게 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그런 프로가 있더군요.

    9.11 이후에 급격히 우경화된 미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고 있는 모습도 보여주고,..
    법을 지켜야한다면서 불법체류자들을 탄압하는 미국인이
    30일간 스스로 불법체류 신분이 되어서 이들의 생활을 가깝게 지켜보고..
    최저임금도 못미치는 돈 받고 3D 직종일을 하면서 겪는 변화를 보여주더군요.

    거기서, 빈곤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 중에
    몇 명은 "불법"이고 몇 명은 "합법"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더군요.

    인간이 인간에게, 존재함 자체에 대해서 누구를 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수 사건이 마음 아픈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좀이라도 우리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 .. 2007/02/13 [05:47] 수정 | 삭제
  • 사람의 목숨에 값어치를 매길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출입국관리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으로 모두가 부담을 져야한다는 생각에 동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07/02/13 [02:39] 수정 | 삭제
  • 언제부턴가 그런 마음마저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섬짓했습니다.
    제 주위 아이들에게도 슬픔을 나누자고 얘기해봐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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