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창고에서 일어나는 일들

내가 겪은 군대 이야기①

박강성주 | 기사입력 2007/03/20 [02:10]

군 창고에서 일어나는 일들

내가 겪은 군대 이야기①

박강성주 | 입력 : 2007/03/20 [02:10]
<일다는 육군으로 군생활을 마친 한 예비역 병장의 군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박강성주님은 군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가 공유되어 우리 사회의 징병제와 군대, 그리고 군사주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글을 기고해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 언제부턴가 나는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경험과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었고 남성성, 권력, 폭력 등을 성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군대.

여기에서의 나는? 남성 예비역 병장이다. 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되었다. 혼자서 조금씩 생각만 해왔던 이야기, 이제는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군대 이야기를.

군대가 사람 만든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정이 참 많았다. 춤과 랩에 뛰어난 소질이 있기도 했다. 장기자랑 시간이 있는 날이면 그는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방색 우비에 군용 모자를 눌러쓰고 화려한 춤과 랩을 선보이던 그는, 영락없는 비공인 가수였다. 난 그가 춤추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참동안 넋을 잃었다. ‘와, 대단하다.’ 그렇다. 한마디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침 점호시간이었던가. 그와 절친하던 어떤 선임병이 내무실장에게 끌려가 꾸지람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나를 비롯한 내 동기들에게 창고로 집합을 하라고 했다. 창고.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창고는 보일러실과 함께 군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각종 군수물품이 저장되어 있고, 따뜻한 일상을 보장해주는 공간들이다. 그렇게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있어서는 안 될’ 행위들을 보장해준다. 바로 구타와 가혹행위.

나와 내 동기들은 정해진 시간에 창고로 갔고, 그가 우리들 앞에 섰다. 그의 첫마디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그는 예상했던대로 선임병이 꾸지람을 들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그로 인해 오늘 집합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들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000 병장님이 그 짬밥에 그렇게 망신을 당해야겠냐? 너희들이 좀 잘해야 될 거 아니야!”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난 생각했다. ‘몇 가지 험한 말을 하곤 그만 둘 거야. 그가 우릴 때리지는 않을 거야.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는 좋은 사람이야.’

“퍽!” 그는 내 옆에 있던 동기의 복부를 군화로 힘껏 내쳤다. 내 동기는 뒤로 한참 밀려났다. 난 생각했다. ‘이럴 수가. 그가 우릴 때리다니!’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퍽!” 그의 군화가 또 다시 공기를 가른다. 이번에 맞은 동기는 뒤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퍽!” 그는 오른발 군화로 내 복부를 가격했고 난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한동안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의 군화 세례는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이어졌고, 그 모습을 보며 난 반항심을 느끼기도 했다(사실 그와 싸운다면 이길 자신도 있었다).

그랬다. 난, 아팠다. 군화에 온 힘을 실은 발차기에 난 분명 아픔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내 마음이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도 이렇게 때릴 수 있다니. 그 사실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맞았던 곳을 만져본다. 그 군화가 남긴 물리적인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난 지금도 이렇게 아파하고 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군에 있을 때 유일하게 경험한 물리적 폭력(‘유일하게’란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다). 그 유일한 경험이 그렇게 ‘좋은’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내게 커다란 생채기로 남아있다. 군대란 아무리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군대가 사람 만든다”는 말이 나는 좀 그렇다.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

그는 모범 사병이었다. 일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후임병들을 잘 챙겨줬고, 선임병들에게도 비교적 인정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좋았고 말도 잘 하는 편이었다. 언젠가 내가 어떤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화를 내지 않고 다정한 말투로 다독여주던 게 생각난다. 그에게는 일종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가 내무실장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무실장이라는 책임감에서 그랬을까.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후임병들에게 폭언을 일삼기 시작했고 공포 분위기를 자주 조성했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는 후임병들에게 점점 가혹해져갔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내무실 생활은 각박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드디어 일을 벌이기로 했다. 바로 ‘투서’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건 ‘비겁한’ 일이었다. 뭔가를 일러바친다는 것은 ‘남자들 세계’에서 째째한 일이었다. 또한 그것은 ‘배신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괜히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모두를 배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신고를 한 걸 알게 된다면, 그가 나를 가만히 둘 것인가.

하지만 난 결국, 일을 냈다. 쪽지에 그가 후임병들에게 가혹행위를 일삼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그런 내용의 쪽지를 여러 개 만들어 당시 화장실에 있던 서너 개의 투서함(소원수리함)에 모두 넣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시 소대장이 금방 발견할 수 있도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느꼈던 불안감과 긴박함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 같다. 특히 소대장 책상 위에 쪽지를 올려놓을 때는 참으로 많이 떨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먼저 이걸 발견하면 어쩌나 하고.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소대장으로부터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나 역시 내무실로 갔는데 가는 길에 그를 볼 수 있었다. 군장을 맨 채 연병장을 돌고 있는 그를.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내무실로 갔다. 모두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나를 괜찮게 생각해주던 어떤 선임병이 다가왔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주, 너지!”

그것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의 어감이었다. 사실 난 평소 조용하게 지내긴 했지만, 가끔씩 반항기를 보여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때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눈동자가 얼마나 떨렸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그 선임병은 대답없는 나를 다그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나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심하게 떨리던 내 눈동자가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었으니까.

이상하게도 그 뒤에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분명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자답지 못하게’ 일러바쳤던 그 일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투서함에 쪽지를 넣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가, 내가 소대장 책상에 쪽지를 올려놓는 바람에 드러났던 것이다. 뭐랄까, 그 사실을 알고 난 일종의 연대의식을 느끼기도 했고, 나만 힘들어했던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에 마냥 서글퍼지기도 했다.

덧붙여 고백하건대, 그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그의 ‘보복’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는 누가 일러바쳤는지를 집요하게 따지지는 않았지만, 난 그가 제대할 때까지 그 점이 항상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남자답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란 군기를 잡기 위한 일반적인(?) 수단인데, 나만 괜히 민감하게 반응해서 혹은 (군대에서 항상 강조하는)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물론 지금은 그 인내심이 부족했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구타와 가혹행위.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느낀 것은, 군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이야기를 과연 믿어도 되는지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더 이상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한편 ‘군기 잡기’라는 명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최근에 문제가 된 체육대학의 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매우 공교롭게도, 이 글의 초고를 쓴 날 밤 군화로 나를 가격했던 그가 꿈에 나타났다. 그는 어딘가에 앉아있었고 말이 없었다. 표정은 어두웠다. 그가 왜 꿈에 나타났을까.
  • 도배방지 이미지

  • 서전 2007/04/17 [12:31] 수정 | 삭제
  • 군대 경험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일 수 있는데 잘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대학 예비역 문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사진ㅋ 2007/03/26 [19:05] 수정 | 삭제
  • 이 글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듯한 밑에 있는 두번째 사진 나랑은 상관 있는거 같은데~ㅎㅎㅎㅎ

    기자님 본인이 겪은 이야기면 본인과 관련된 사진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아무 상관 없는 사진 쓰지 마시고~

    글 제목은 내가 겪은 군대이야기 이면서 사진이 아닌듯~ㅎㅎ

    ㅎㅎ 지나가다 글 읽다가 웃겨서 글 남깁니다. ^.-피식
  • 권병장 2007/03/26 [10:00] 수정 | 삭제
  • 아직도 올려놓고 있군요..
    같이 군생활했던사람 욕 먹이지말고 빨랑 내리시지요
    내얼굴 올라와있는데... 20년전 사진 올려놓고 요즘 야그 쓰지말고.. 랩은 무슨...
    내리쇼 빨랑..
  • 지나가다 2007/03/26 [03:08] 수정 | 삭제
  • 어느덧 예비군도 끝나고, 민방위가 되었건만 그때의 구타와 모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요즈음도 간혹 군대에 있는 '악몽'을 꾼다. 내가 너무 민감해서일까?? 공감가면서도 이전의 나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기사다
  • 점점 2007/03/24 [17:47] 수정 | 삭제
  • 아래에 군대가 없으면 전쟁이 없다는 .. 황당한 내용을 쓴 분이 계신데...

    예를들어,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을 너무 몰랐다는거죠. 인간의 사유재산에 대한 욕심을 근본적으로 100% 억누르려면 로봇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좋다면서, 모든 인간이 100% 무기를 버리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예를들어 단 한명만 총을 들어도 100명을 제압할수있는 권력을 가지는게 무기죠.
    과연 총과 칼을 다 버리고, 전세계가 천사만이 사는 곳으로 만들수있단말입니까??



    구체적으로 전세계에서 어느날 같은 시간에 모든 군대가 해체하고, 모든 무기공장 무기가 사라진다면...
    전세계 정부가 공식적으로 어떤 식의 군대로 양성하지 않는다면 천국이 될까요??


    마치 면역력을 잃게되는 AIDS환자처럼, 아무런 제어도 받지 않는 각종 폭력들로 인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겠죠.
    인간은 천사가 아닙니다.



    심리학의 실험에 의하면, 인간은 [할수 있으면 합니다.]
    내가 차지할수있으면 차지하고, 내가 권력을 휘두를 위치에 있으면 휘두릅니다.



    단 1주일간 교도관과 죄수역할을 맡은 실험인 50명정도가 잇었는데..
    단 3일 정도만에 교도관역할의 실험인이 .. 죄수역할의 실험인을 엄청 학대하고 권력을 휘둘러서,
    1주일이 되기전에 폭력사태가 벌어져서..실험이 중단된 경우가 있습니다.
  • 웃긴건. 2007/03/24 [17:38] 수정 | 삭제
  • 이런 내용이 군대를 겪은 남성들에 대한 연민보다는.. 군대문화를 통해 남자를 비판하는 목적으로 악용된다는 점이죠..
  • 루벤 2007/03/22 [01:31] 수정 | 삭제
  • 군대에 대해서 진짜 이야기,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길 바라는 입장에서, 바람직한 기사라고 생각한다.
  • 박노인 2007/03/21 [18:02] 수정 | 삭제
  • 칡럿 //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저항하는 여러 행동들 또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말씀하시는 '전쟁과 다툼이란 인간의 본성'이라는 내용은, 예로드신 자본주의 체제하에 유포되는 환상들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전쟁에서 이득을 얻는 종자들은 언제나 '전쟁은 인간의 본성이고 필연적이니, 전쟁을 준비하지 않으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전쟁은 일어나고 그렇게 우리는 고통을 받죠. 우리가 자본에 매어 있는것과 마찬가지로요. 이라크 침략을 예로 드셨습니다. 칡럿님의 생활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러시겠습니까? 저는 안그럴겁니다. 그리고 안그럴 사람들 많죠.

    언젠가 그 환상은 해체될 것이고, 좀 더 즐겁고 재미난 세상이 가능할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제가 아는 사람중에 진짜 본성이 의심스러운 개자식은 딱 한 명 밖에 없거든요.

    아무튼, 왠지 군대이야기 나와서 군대가서 축구한 이야기 하는 듯, 민망하여라...^^;;
  • 칡럿 2007/03/21 [12:21] 수정 | 삭제
  • 모두가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합의를 보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자원을 얻는 것보다 빼앗을 때에 적은 비용이 든다면, 주저 않고 빼앗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라크 전의 상황을 보세요.

    물론 노예제는 용납 못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직접 노예제에 반대하거든요. 사실 유산계급(과거의 노예농장주와 같은 경제 주체들)은 (현대에는) 굳이 노예제를 운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속에서 "성공신화"를 몇몇 보여주면서 그 환상속에 노동계급을 가두어 두면 그만이거든요.

    결국 포장은 바뀌더라도 누군가를 착취하는 현상을 계속 남는 것이죠.
  • 찌질아 2007/03/21 [11:34] 수정 | 삭제
  • 단한번 맞은걸 글로 적는다라. 허헛

    난 군대있을때 우리 중대원누구보다 덜맞은 편이였지만
    집합후 빠따질 수도없이 당했다..

    불만있냐고? 아니 전혀없다 물론 그빠따질을 내리진 않았지만
    그게 매우 잘못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빠따질이 없으면 이런 글쓴이 같은 찌질이들이 더 편해지려고 하고
    계급사회가 무너질께 뻔한걸?

    글쓴이 찌질아 조낸 개념없는자식아. 이그 정신차려라 응?
  • 퀵타임 2007/03/21 [11:10] 수정 | 삭제
  • 같은 경험은 아니지만 저도 그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어서 그런 말이 참 마음 아프게 느껴지네요.
    구조적 힘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개인의 무력함, 나약함.

    그러고보면, '조정'되는 성격들도 많습니다.
  • 박노인 2007/03/21 [10:44] 수정 | 삭제
  • 칡럿 // 사람이 사람을 먹는것이 소수라면(네, 사실 대부분이 일종의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배고파서 먹는 경우는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노예제나 신분제는 어떨가요?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삶이란, 반드시 다른 종과의 생존경쟁이고 그것이 본성이며 전쟁이란 그런 본성이 좀 더 넓게 발현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면 문제는 간단할것입니다. 그냥 인정하면 되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모든 착취와 불공정한 경쟁, 도둑질, 우리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용인해야 할 것입니다.

    싫죠...아...싫어요...^^;;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그에 따른 전쟁이라면, 이제 우리는 전쟁을 통하지 않고도 자원을 공정히 배분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진심으로 친구를 사귀고 사람들에게 친절을 배풀 수 있을까요?

    모두가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요. 즐겁고 재미나게요.^^
  • 정승재 2007/03/21 [09:14] 수정 | 삭제
  • 언제적 얘긴데 아직도 이런 소리를 합니까?
    이제 군대에서도 후임에게 아무런 욕설이나 구타가 금지되어
    어길시 영창이나 구속으로 바로 넘어가는데,
    자꾸 군대사기 꺾는 이런 글을 삼가해 주세요.
    이미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은 군대내에서 사라진지 오랩니다.
    다 장단점이 있는 법이지요, 당신같은 사람들이 말로 통제가 안되니
    군대기강이 헤이해지죠, 그런다고 이제는 때리거나 욕도 못하니...
    자신을 먼저 돌아봅시다.
  • 7F 2007/03/21 [08:43] 수정 | 삭제
  • 퇴X원의 7X 혹시 아닙니까? ㅋㅋㅋ
  • 칡럿 2007/03/21 [05:37] 수정 | 삭제
  • 군대를 없애면 전쟁이 없다.

    누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어불성설입니다. 일단 고래로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뒤한 경쟁 나아가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무력충돌까지 있었던 것이구요. 그로 인해 싸움/전쟁이 생기고 전사라는 집단이 생겼겠죠.

    전쟁을 없애자라고라.. 불가능합니다. 작성하신 박노인님께서 사람 잡아먹는 문화를 버렸다고하는데, 이는 상당히 국소적인 문화적 현상이었구요. (어떤 경우에는 죽은 사람을 먹는 것이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지요.) 전쟁 그자체는 삶을 위한 투쟁입니다. 누군가가 마시고 있는 커피도 중남미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얻어낸 것이구요. 어떻게 보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누군가와 생존경쟁을 하는 것이고, 누군가를 착취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전쟁(그리고 이를 위해 만들어진 군대라는 집단)은 이것이 집단화되어 나타난 모습입니다.
  • 박노인 2007/03/20 [22:00] 수정 | 삭제
  • 군대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군대가 존재해야 한다는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군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전쟁도 존재하지 않을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는건 어떨까요. 할 수가 없겠네요. 군대가 없으니. 누구도 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면, 역시 전쟁은 존재하지 않을것이죠. 아무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역시 슬픈 일은 좀 덜 일어나겠죠. 칼을 칼집에 넣고 뽑을 자세를 유지하는게 아니라, 칼을 손에서 놓아버려야 대화는 시작될 수 있을겁니다.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서, 우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문화를 버린 것 처럼, 전쟁 또한 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죠.
  • 혀누 2007/03/20 [20:21] 수정 | 삭제
  • 군대가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이고 시간낭비하는 곳임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일부분들은 군대가 "재밌었다"라고 표현하는 분도 있으시긴 합니다만...
    근데 왜 군대가 그런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묻기위해서는 왜 군대가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군대는 사람(적)을 죽이기위해 있는 곳입니다. 방어하기위해서라고 해도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이게 됨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이고 말도 안됩니다. 그런 전쟁을 대비(또는 방지)하기 위해 있는 곳이 또한 군대입니다. 그리고 군대에 있어 명령하달체계는 절대적입니다. 전시상황하에서 '앞으로 돌격~'하는데 '우리가 왜 돌격해야 하는지 말해주십시요'하는게 '민주적'입니까?
    제 친척중 한분도 군대에서 의문사 당한만큼 저도 '군대의 성격'은 한손톱만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군대의 필요성'은 절대 부인할 수 없지요.
    살짝 걱정이 되는게, 앞으로의 논의가 '군대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성격'을 어떻게 바꿀수 있겠느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 박노인 2007/03/20 [19:51] 수정 | 삭제
  • 가명자 // 특정한 누군가가 위에서 목소리를 높여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민주화가 아닙니다. 구성원들에게 가상의 적 혹은 어떤 적을 상정시켜 그 적대감을 근거로 구성원들간의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죠. 부시가 악의 축을 설정하는 것과 같이요.

    작은 경비정에서 근무했습니다. 제 경우엔 경비정 기관실이었죠. 졸병 때 거기서 참 많이도 맞았습니다. 고참의 주먹과 좌우주기(엔진)의 콤비네이션이 훌륭했죠. 퍽치면 퍽깡깡(쇠에 머리 부딪치는 소리)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후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때리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안때린다고 고참한테 맞은적도 많죠. 화도 한 번 안냈습니다. 그리고 좀 높은 고참이 되었을 때 우리 경비정엔 구타나 불필요하게 화를 내는 일도 없었죠.(위로도 좀 괜찮은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딱 한번, 어느날, 기관실에서 후임병이 자기보다 후임인 전경에게 기합을 주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전에 경비정을 탈 때(타다가 육상근무하다 다시 다른 경비정으로 왔거든요.) 고참에게 당했던 딱 그 방법으로 그러고 있더군요. 곧 정신을 차리고, '내가 언제 너를 때리거나 이런적이 있더냐?'정도로 마무리 하긴했지만, 굉장히 공포스런 경험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디서 그 방법을 배워온 것일까요?

    그쪽이 보시기엔 적절하지 못한 방법이라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 거기에서 어떤 고민을 시작하는 글에게, 정신똑바로 차리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크게 보자'면, 군대라는 사회 혹은 제도에 관해 이야기 하는게 맞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는 도입부를 보면, 그쪽보다는 좀 더 크게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 가명자 2007/03/20 [15:29] 수정 | 삭제
  • 저도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군대가기전 날 밤에도 군대는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웠던 사람입니다. 00년에 입대해서 02년에 제대했고요.

    지금도 변했다하지만, 지금 입대하는 신병들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불합리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곳이겠지요. 물론 그때도 그랬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역시나 소원수리 하는 병사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군요. 분명히 제가 군복무하던 시절하고 비교해보면 많이 좋아진 군대일텐데, 왜 아직도 소원수리가 계속나올까요. 10년전 군대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이 난무했을텐데,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 군대는 말그대로 "당나라 군대"일텐데 왜 아직도 불만이 터져나올까요. 대답은 각자 생각해보시고,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제가 군복무 할때 생각해보면 소원수리가 터지는 날부터는 부대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였습니다. 싸대기 짝짝 날라다니고, 고개들고 잠들고, 아시죠? 저도 지나친 고참을 보면 저건 너무한거 아닌가 순간순간 욱 하기도 했지만, 제가 생각한건 소원수리가 아니고, 제가 바꿀 수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것이었습니다. 소원수리한다고 군대가 바뀔까요? 투서한사람의 보직이나 찔린 사람의 보직은 바뀌겠죠. 군대는 안바뀝니다.

    저는 그때 부터 하나씩 하나씩 준비를 했습니다. 내가 밥이 되는 날 우리 부대에서 목소리를 높일수있는 날이 오면 제가 할수있는 일을요. 일단, 제대 1주일 남은 말년들 말고는 병장들도 자신의 침구류를 스스로 개개하고 관물대도 스스로 정리하게 했습니다. 빨래도 스스로 하게 하고요. 물론 제가 내무반 실력자가 된 이후얘기죠. 그리고 억울해 하는 후임병들에게는 병사들을 끝까지 챙겨주는 건 병사들끼리라고, 너희들이 조심해야 할상대는 고참도 후임병도 아니고 간부들이라고요.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에게 돌린거죠.

    그때부터 일어난 효과가 내부적으론 강해지고 소원수리가 간부들에게 투서도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저는 민주화 군대를 보고 나왔습니다. 우리 부대 만큼은요. 제가 제대하면서 덕담 한마디씩 해주고 왔는데, 이거였습니다.

    이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뭔가를 배워가는 사람은 그래도 군대 가볼만한곳이었다고 말하면서 제대하는 사람이고, 자기몸 하나 기껏 2년 반 힘들다고 불만과 적개심만 쌓여 나가는 사람은 군대가 비효율적이라느니 어쩌구 평생 불만만 내뱉으며 살게 된다고요.

    원문을 찾아봐도, 글쓴분의 성함은 찾아볼수가 없어서 박강성주기자님이 대필을 하신건지 지어낸건지 끼워맞춘 기산지 알수가 없군요. 글 만드신분, 군대는 원래 비효율적인 곳입니다. 끝까지 책임지고 밀어붙여서 군대를 완전히 바꿀 의지라면 소원수리 해볼만 하지만, 그러지 못할거면 "책임"이란것도 생각해보시고, 자신이 도움이 될수있는건 무엇이 있진 않았나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좀더 세상을 크게 보고 사셨으면 좋겠네요. 정신똑바로 차리시고요.
  • .... 2007/03/20 [12:27] 수정 | 삭제
  •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사람을 (난폭하게) 만든다.. 사람을 (비굴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 아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