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받지 않은’ 기억, 군 성폭력

내가 겪은 군대 이야기③

박강성주 | 기사입력 2007/04/02 [21:52]

‘초대 받지 않은’ 기억, 군 성폭력

내가 겪은 군대 이야기③

박강성주 | 입력 : 2007/04/02 [21:52]
<일다는 육군으로 군생활을 마친 한 예비역 병장의 군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박강성주님은 군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가 공유되어 우리 사회의 징병제와 군대, 그리고 군사주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글을 기고해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그리고 과연 나의 경험이 그러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5년 제3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있었고, 난 (말하기가 아닌) 듣기 참여자로 참가 신청을 했다. 당시 ‘남성’은 참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별도의 면접시간을 가져야 했고, 난 그렇게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내가 간 날은 나 외에도 다른 한 명의 남성이 더 있었고 그렇게 두 명이 면접을 받았다. 대회 관계자가 다른 남성과 먼저 대화를 시작했고, 나는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옆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남성이 자신이 군대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말했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또한 기억나더라도 이 글에서 말할 수 없지만, 난 그 말을 듣고 바로 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 그렇다면 나도... 똑같네. 나도 피해를 당한 거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초대 받지 않은’ 기억이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웠고,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내 차례를 맞이했다. 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리 속에 맴돌고 있는 그 말을 해도 될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말했다. “전에는 미처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와서 떠올리게 됐어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눈 감아!”

이등병/일병 시절, 난 비교적 선임병들에게 귀여움을 받은 편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임병들이 날 좋게 봐줬던 것 같다.(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로 인해 분위기가 험악해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내 별명 중 하나는 ‘아닙니다’였다. 선임병들은 가끔씩 나를 데리고 ‘놀았는데’, 그때 장난기 있는 질문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난 긴장된 목소리로 “아닙니다!”를 외쳤고, 그래서 몇몇 선임병들은 나를 ‘아닙니다’로 불렀다.(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장난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공포일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취침 점호시간에 총기상태를 점검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일병이었던 나는 열심히 총기를 손질했고 긴장된 마음으로 점호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고, 간부가 점호를 시작하기 전 내무실장이 간단히 점검을 했다. 그가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였을까.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난 크게 관등성명을 댔다. 그가 다가와 말했다. “총기 상태가 이게 뭐야. 너 총 제대로 안 닦을래. 눈 감아!”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난 그가 나를 때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제 죽었구나.’ 엄청나게 긴장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도 느껴진다. 그때 얼굴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게.

“읍….” 그런데 이상했다. 뭔가 부드러운 물체가 내 입술에 닿은 것 같았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글쎄 그가 나에게 입맞춤을 한 것이었다. 그가 내 앞에서 웃는 모습이 보였고, 내무실 사람들의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안심했던지.(그가 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난 약간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내무실장과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점호는 무사히 끝났다.

그때 난 어떤 기분이었던가. 무엇보다 창피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입맞춤을 당하다니, 정말 창피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마웠다. 고마웠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내무실 최고권력자가 나에게 친밀한 감정을 표시한 것이었고, 이를 내무실 사람들 모두가 공개적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니 다른 선임병들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내무실장에게 사랑 받는 나를, 최고권력자에게 사랑 받는 나를, 감히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

장난과 폭력 사이

그랬다. 나는 내무실장의 행동을 다분히 장난으로 받아들였고, 오히려 기뻐하기까지 했다. 불쾌감도 있었지만, 귀여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훨씬 압도적이었다. 당시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평소 나를 사모(?)해오던 내무실장님이 드디어 나의 입술을 (…) 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성폭력이었는데, 나는 앞으로의 군생활이 편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 행동을 좋게 받아들였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 일이 있은 이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일을 성폭력으로 ‘해석’한 이후, 나는 성폭력이란 성별에 상관없이 권력관계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계급적으로 철저히 약자의 입장에 있었던 나, 그리고 절대적으로 강자의 입장에 있었던 그. 당시 불쾌했던 감정을 내가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었던가. 아니, 당시에 그게 불쾌하다고, 정말 불쾌한 것이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아니었다. 난 그 행동을 철저히 ‘장난’으로 해석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해석을 ‘강요’ 당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력’으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정리를 한 뒤 성폭력에 더욱 민감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상사-부하, 교수-학생) 성폭력은 권력관계가 있는 곳이면 (따라서 거의 모든 곳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아내 강간, 데이트 강간, 운동사회 성폭력, 모두가 예외일 수 없다.(이형모 전 시민의신문 대표 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또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가해자가 꼭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법도 없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당시 내무실장의 행동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는 것 같다. 예컨대, 나는 몇몇 선임병들이 취침시간이 되면 후임병들을 자신의 모포(이불) 안으로 불러들여 곁에 눕게 했던 일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그 모포 안에 들어가야 했던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것은 한마디로 권력관계다. 후임병이었다면 선임병들을 자신의 모포 안으로 불러들여 곁에 눕게 할 수 있었을까?

또 어떤 병장은 나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당시에는 당연히 장난으로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불편해진다. “끝까지 대주지 않는 너의 엉덩이를 생각할 때마다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해주고 싶은 말은, 고참들이 자주 가지고 논다고 불쾌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고참들의 눈에 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약간 망설여진다. 과연 그 행동을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정도’의 일을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렇게 헷갈리고 망설이게 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전략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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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_No_What 2007/04/07 [00:35] 수정 | 삭제
  • 세글자 딱지 하나로 모든 걸 예외인양 없었던 것인 양 만들어버리는 김정욱씨의 놀라운 솜씨.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예비역'이 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서,

    피해자(생존자, 문제제기자)에게 피해의 책임을 돌리고 입을 다물라는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을 보면 너무 불쾌합니다.
  • 2007/04/04 [20:43] 수정 | 삭제
  • 군대 문화의 위계적인 면들이 이런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원인인 것 같기도 하지만, 같은 성별에서 일어나는 성적인 괴롭힘과 폭력은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어서인지 더 위험한 수위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 SY 2007/04/04 [20:32] 수정 | 삭제
  • 난 뭐 여자인데다 군대도 안 갔고 여하튼 잘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군대라고 다 같은 환경은 아닐 것이란 생각에 몇 자 남겨요...

    군대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지만
    아래 김정욱님 글 처럼 절대 군대는 저런 모습이 아닌 군대도 있을 것이고
    박강성주님이 체험한 그런 군대도 있을 것 이다..란 생각이 드는군요.

    김정욱님처럼 군대에서 보낸 시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예비역도 있을 것이고
    박강성주님처럼 부분 부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예비역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수년 전 내 남동생이 해병대에 입대했을 때
    그리고 제대할 때 까지 우리 가족이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새삼 떠오르는데요

    남동생이 제대할 때 까지 우리 가족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군대내의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걱정을 내내 했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쨌든 군대내의 폭력에 의한 어느 병사의 죽음이라든가
    성추행 또는 성폭력에 관한 기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도가 되었고
    우리 가족은 그 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된 게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군대이기 때문에
    절대 폭력이나 성폭력같은 게 있을 수 없다고는 생각지 않았답니다.

    군대도 사람사는 곳인데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어떤 일이든 생길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내 남동생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다 보니 정말 제대 하는 그 날 그 순간 까지 걱정이 끊이질 않았어요.

    김정욱님의 가족분도 박강성주님의 가족분도 두 분이 군대가서 제대하는 그 순간 까지 저희 가족이랑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아마도 비슷한 걱정을 하셨을테고
    몸 건강히 무사히 제대하기만을 바라셨을 거라 여겨요.

    군대를 직접 가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 말 저 말 늘어놓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아뭏튼 두 분의 글을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군요..
  • 김정욱 2007/04/04 [09:35] 수정 | 삭제
  • 이런 글을 군대 안 갔다 오신 분들이 읽으면 군대가 무슨 동성애자들 집합소 같네요
    어떻게 박강성주씨가 다녀온 군대는 폭력과 동성애가 난무한 이상한 곳이네요
    참...같은 예비역으로서 한심합니다
    자기 권리를 지키지 못하고 성추행 당한 일을 마치 군대의 책임인양, 자랑스럽게 글을 올리다니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신 분이라면 그 때 헌병대에 신고하셨어야죠
    지금에와서야 이런 글 쓰는 의도가 도대체 뭡니까? 군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 심기입니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예비역으로서 박강성주씨 같은 사람보면 너무 불쾌합니다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절대 군대는 저런 모습이 아닙니다.. 욕하기도 하고 갈구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곳이 군대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기자에 군대에 대한 선입견 가지지 마세요
  • 지상 2007/04/03 [14:53] 수정 | 삭제
  • 가해-피해 구도가 언제 다른 대상을 만나서 또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더 끔찍합니다.
  • may 2007/04/03 [08:34] 수정 | 삭제
  • 아마도 나에게 초대 받지 않은 기억이라는 의미겠죠?
    문득 드는 어린 시절 성추행의 기억이 저에겐 그랬습니다.
    당시엔 성추행인 줄도 몰랐었는데, 왜 갑자기 그 기억이 찾아왔을까 한참 당황했죠.
    분노도 불쾌감도 지금의 이 시점에서야 느끼지만,
    성추행을 당했던 몸의 기억은 당시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어요.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추행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성추행이 아닌 것처럼 위장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 같군요.
    그래서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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