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육군으로 군생활을 마친 한 예비역 병장의 군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박강성주님은 군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가 공유되어 우리 사회의 징병제와 군대, 그리고 군사주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글을 기고해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그리고 과연 나의 경험이 그러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5년 제3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있었고, 난 (말하기가 아닌) 듣기 참여자로 참가 신청을 했다. 당시 ‘남성’은 참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별도의 면접시간을 가져야 했고, 난 그렇게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내가 간 날은 나 외에도 다른 한 명의 남성이 더 있었고 그렇게 두 명이 면접을 받았다. 대회 관계자가 다른 남성과 먼저 대화를 시작했고, 나는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옆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남성이 자신이 군대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말했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또한 기억나더라도 이 글에서 말할 수 없지만, 난 그 말을 듣고 바로 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 그렇다면 나도... 똑같네. 나도 피해를 당한 거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초대 받지 않은’ 기억이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웠고,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내 차례를 맞이했다. 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리 속에 맴돌고 있는 그 말을 해도 될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말했다. “전에는 미처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와서 떠올리게 됐어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눈 감아!” 이등병/일병 시절, 난 비교적 선임병들에게 귀여움을 받은 편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임병들이 날 좋게 봐줬던 것 같다.(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로 인해 분위기가 험악해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내 별명 중 하나는 ‘아닙니다’였다. 선임병들은 가끔씩 나를 데리고 ‘놀았는데’, 그때 장난기 있는 질문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난 긴장된 목소리로 “아닙니다!”를 외쳤고, 그래서 몇몇 선임병들은 나를 ‘아닙니다’로 불렀다.(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장난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공포일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취침 점호시간에 총기상태를 점검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일병이었던 나는 열심히 총기를 손질했고 긴장된 마음으로 점호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고, 간부가 점호를 시작하기 전 내무실장이 간단히 점검을 했다. 그가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였을까.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난 크게 관등성명을 댔다. 그가 다가와 말했다. “총기 상태가 이게 뭐야. 너 총 제대로 안 닦을래. 눈 감아!”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난 그가 나를 때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제 죽었구나.’ 엄청나게 긴장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도 느껴진다. 그때 얼굴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게. “읍….” 그런데 이상했다. 뭔가 부드러운 물체가 내 입술에 닿은 것 같았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글쎄 그가 나에게 입맞춤을 한 것이었다. 그가 내 앞에서 웃는 모습이 보였고, 내무실 사람들의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안심했던지.(그가 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난 약간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내무실장과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점호는 무사히 끝났다. 그때 난 어떤 기분이었던가. 무엇보다 창피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입맞춤을 당하다니, 정말 창피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마웠다. 고마웠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내무실 최고권력자가 나에게 친밀한 감정을 표시한 것이었고, 이를 내무실 사람들 모두가 공개적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니 다른 선임병들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내무실장에게 사랑 받는 나를, 최고권력자에게 사랑 받는 나를, 감히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 장난과 폭력 사이 그랬다. 나는 내무실장의 행동을 다분히 장난으로 받아들였고, 오히려 기뻐하기까지 했다. 불쾌감도 있었지만, 귀여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훨씬 압도적이었다. 당시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평소 나를 사모(?)해오던 내무실장님이 드디어 나의 입술을 (…) 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성폭력이었는데, 나는 앞으로의 군생활이 편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 행동을 좋게 받아들였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 일이 있은 이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일을 성폭력으로 ‘해석’한 이후, 나는 성폭력이란 성별에 상관없이 권력관계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계급적으로 철저히 약자의 입장에 있었던 나, 그리고 절대적으로 강자의 입장에 있었던 그. 당시 불쾌했던 감정을 내가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었던가. 아니, 당시에 그게 불쾌하다고, 정말 불쾌한 것이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아니었다. 난 그 행동을 철저히 ‘장난’으로 해석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해석을 ‘강요’ 당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력’으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정리를 한 뒤 성폭력에 더욱 민감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상사-부하, 교수-학생) 성폭력은 권력관계가 있는 곳이면 (따라서 거의 모든 곳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아내 강간, 데이트 강간, 운동사회 성폭력, 모두가 예외일 수 없다.(이형모 전 시민의신문 대표 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또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가해자가 꼭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법도 없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당시 내무실장의 행동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는 것 같다. 예컨대, 나는 몇몇 선임병들이 취침시간이 되면 후임병들을 자신의 모포(이불) 안으로 불러들여 곁에 눕게 했던 일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그 모포 안에 들어가야 했던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것은 한마디로 권력관계다. 후임병이었다면 선임병들을 자신의 모포 안으로 불러들여 곁에 눕게 할 수 있었을까? 또 어떤 병장은 나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당시에는 당연히 장난으로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불편해진다. “끝까지 대주지 않는 너의 엉덩이를 생각할 때마다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해주고 싶은 말은, 고참들이 자주 가지고 논다고 불쾌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고참들의 눈에 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약간 망설여진다. 과연 그 행동을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정도’의 일을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렇게 헷갈리고 망설이게 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전략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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