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채식, 고민에서 실천으로
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혁은 | 입력 : 2007/04/06 [04:00]
‘여성주의자’였던 나는 채식은커녕 생태주의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여성주의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벅차고 괴로운 일인데, 언제 알지도 못하는, 나랑 별로 상관도 없는 동물이나 식물들의 존재를 존중한단 말이냐.’
적어도 1년 전까지 나는 이런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살고 있었다. 같은 ‘인간종’들 내에서 발생하는 소수자 문제에는 ‘무관심’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이랬던 내가 채식을 ‘실천’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생태주의와 ‘나의 존재’와의 연관성
“갑자기 생태주의에 관심이 생겼다”고 2006년 5월 31일자의 일기장은 말하고 있다. 그렇게 적었던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일다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가 1970~1980년대 개발세대와 현재의 아토피 세대의 연관성을 지적한 기사를 보았다. 가려움을 참고 약을 바르는 인내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아토피를 가진 나의 몸과 ‘개발지상주의’라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연결고리가 투명에서 반투명으로 바뀌면서 ‘생태주의’와 ‘나의 존재’와의 연관성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바보 같지만 나의 일로 여겨지지 않던 것들이, 혹은 그것까지 생각하기엔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머리로는 동조했지만 심정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던 수많은 환경사안들이 고스란히 ‘나의 존재’와 연결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새만금 기사들을 다시 찾아보고 있다. 날로 죽어가는 새만금의 조개들과 10명중 7명꼴이라는 아토피를 가진 아기들은 결코 다른 존재들이거나, 누가 누구보다 우월하다거나 서로 상관없는 생명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요 며칠 동안 새삼스럽게 머리를 사로잡고 있다. 새만금 조개들의 아픔이 슬프다. 2006년 5월 31일”
무관심했다는 것은 다른 생명과 나와의 연결고리를 미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나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점차 그 연결고리가 드러남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나는 강아지와 돼지와 닭과 조개와 너무 많은 연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곧 수많은 동물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빼앗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만큼, 도로가 더 많이 놓여지는 만큼, 다른 생명체들의 돌아다니는 자유는 제한된다.
작년 6월부터 강아지 ‘멍이’와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는 이런 것들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삶에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쩌다 한번 탁 트인 풀밭에 데려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면 어찌나 좋아하면서 쌩쌩 달리던지.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항상 이런 풀밭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만큼, 내가 자유롭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만큼(비록 개고기는 먹지 않았지만) 멍이는 자동차 때문에, 납치될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산책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 그 동안, 동물들과 실제로 같이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그들과 나는 ‘다르다’라고 단호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내가 울 때 같이 슬퍼하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활짝 웃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고, 갇혀있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고.
단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뿐이었는데, 그 하나로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다를 것’이라고 그들에 대해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집안에 갇혀 살아도, 철조망에 가둬진 채 ‘관람’의 대상으로만 살아도, 인간들의 ‘먹이’가 되려고 죽임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그게 그냥 그들의 운명이라고 너무나 손쉽게 단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길다면 긴 시간 동안의 깨달음과 친구들과의 이야기와 서로간의 북돋움을 통해 나는 (비록 아직은 해물 부분에서는 타협을 했지만) 최근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채식에 대해 ‘공감’하고부터, 그것을 ‘실천’하기까지에도 많은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채식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집에서 나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먹을 것은 내가 결정하고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경우에 그것은 ‘관계’의 문제가 된다. 내가 채식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나의 친한 친구들과 나와의 밥 먹는 관계(자취생은 이 관계가 아주 돈독하다)에 영향을 미치게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실천’은 쉽지 않았다.
한번 더 생각할 기회
‘고민’에서 ‘실천’으로 넘어간 이후부터는 또 다른 문제들에 부딪친다. 다른 문제에는 아주 진보적인 사람들도, 아주 정치적인 사람들도 채식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나 손쉽게 질문한다. “그럼 왜 식물은 먹어?”, “그럼 왜 생선은 먹어?”
그래서 사람들에게 채식을 시작했다고 말을 꺼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쏟아져 나올 한결같은 질문들에 100번 정도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되어 매우 피곤해질뿐더러 나 자신이 ‘완벽한 논리’를 가지고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논리에 ‘설득’이 되어 채식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꼭 ‘완벽한 논리’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꽉 짜여진 완벽한 논리’라는 것을 지나치게 신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채식을 하냐”라고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채식이, 생태주의가 아직 우리에게 ‘정치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을 그저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여전히 매우 많긴 하지만) 적다. 성매매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왜 성매매를 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관심은 곧 비정치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비정치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곧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되어버린다.
채식을 하게 된 순간부터, 조금 더 소수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에게 힘들게 말을 꺼내야 하고, 단체모임에서 다 같이 먹는 음식을 못 먹고, 학교 식당에서 오늘 나올 메뉴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고. 단체로 식사를 하러 갔는데, 메뉴에 고기밖에 나오지 않았을 때의 그 뻘쭘함. 그러나 그것이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다.
나보다 조금 더 채식을 먼저 시작한 친구는 말한다. “예전처럼 무조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전에 항상 이 것이 어떻게 길러졌고,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포장되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와 나의 존재와의 연결성을 느끼면서, 왜 내가 고기의 맛을 ‘맛있다’라고 느끼도록 키워졌는지를 생각하면서. 채식은 나에게 한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아직 채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기사를 통해 만천하에 내가 채식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채식을 오래 한 혹자는 내게 말했다. 평소에 만두를 너무 좋아했는데, 어쩌다 너무 먹고 싶어서 만두를 하나 먹으면 (물론 채식을 하지 않는)친구들로부터 “배신자”라느니, 채식이 “깨졌다”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나도 그런 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조금 더 다르게 말하려고 한다. 채식이 일관적이다/깨졌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이분법적인 것은 아니냐고. 채식이란 것을 단기간이 아닌, 평생 동안의 삶의 과정으로 생각했을 때,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소한 타협을 해가면서 단계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만큼 해 나가야겠다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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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이 2007/04/19 [13:49] 수정 | 삭제
- 미아 2007/04/15 [13:21] 수정 | 삭제
- e 2007/04/15 [00:20] 수정 | 삭제
- 베리 2007/04/10 [03:10] 수정 | 삭제
- 최지 2007/04/09 [10:43] 수정 | 삭제
- 멍이 2007/04/07 [02:53] 수정 | 삭제
- 그렇군요. 2007/04/06 [16:27]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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